무라카미 하루키,『노르웨이의 숲』

책을 읽고 느끼는 감상(鑑賞)

by 동글
9788936434120.jpg?type=w966




그건 …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이었다.

그리고 그 멜로디는 늘 그랬듯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여러 가지 이유로 『상실의 시대』라고도 불리는 이 책은 6년간 책꽂이에 그저 꽂혀 있었다. 그리고 오늘 이 책을 처음으로 펼쳤고, 마지막까지 읽었다. 그 많은 책들 중 왜 이 책을 고른 것인지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기억나는 것이라곤 그저, 이 책을 읽는 동안엔 ─ 아주 짧은 시간의 반복이었지만 ─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모든 생각들로부터 해방되어 오롯이 검은색 글자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것, 그것뿐이다.


『노르웨이의 숲』은 관계에 대한 책이다.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또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나'가 '나오코'와 사랑에 빠진 것처럼, 그리고 '미도리'와 사랑에 빠진 것처럼, 무언가 의도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냥 어느 순간 그렇게 되어 있을 뿐이다. 슬픈 것은 사랑, 그리고 관계라는 것은 항상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즈키', '나오코', 그리고 '미도리'까지. 모두 주인공 '나'의 주변에 위치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나'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관계라는 것은 그 천성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존재를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모양이다.


우리는 '관계의 상실' 속에서 늘 방황하고 좌절한다. 상실이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오기에 많이 괴롭다. 하지만 기억해야 하는 것은 관계란 애초에 내 의사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레이코'가 말하듯이, 우리는 늘 괴롭더라도 강해져야 한다. 관계의 결말은 '미도리'처럼 잘 풀릴 수도 있고, 아니면 '나오코'처럼 잘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정하는 것은 '나'의 영역이 아니다.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행복해지는 것' 하나뿐이다.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의식이 턱없이 이완되고, 음지식물의 뿌리처럼 축 늘어졌다.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하고 나는 멍한 머리로 생각했다. 언제까지나 이러고 있을 순 없겠다, 어떻게든 해야겠다. 그리고 나는 "자기 자신을 동정하지 마라."라고 하던 나가사와 선배의 말을 갑자기 떠올렸다. "자신을 동정하는 건 비열한 인간이나 하는 짓이야."


그래요, 나가사와 선배. 당신은 훌륭해요,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한숨을 내쉰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中

이전 04화전주홍 외,『의미, 의학과 미술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