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 좋은 사람 vs 인성 나쁜 사람?
"일 잘하는 사람 vs 일 못하는 사람"
"인성 좋은 사람 vs 인성 나쁜 사람"
직장에서 흔히 쓰는 이분법적인 표현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구도로 사람들을 나누면 한쪽에는 무조건 나쁜 이미지가 씌워지죠.
이게 과연 합리적일까요?
왜 우리는 항상 중간이란 선택지를 배제할까요?
오늘은 이 불필요한 양극화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직장 생활에서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그 반대는 "일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인성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그 반대편은 무조건 "인성 나쁜 사람"으로 간주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극단적인 두 가지뿐만 아니라 중간도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나는 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말은 단순히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뜻일 뿐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이렇게 받아들입니다.
"아, 저 사람을 싫어하는구나."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 곧 싫어한다는 뜻이 되어버리는 거죠.
이처럼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은 사람들 사이에 불필요한 선입견을 만들고, 그 결과 갈등과 마찰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 사회는 종종 극단적인 선택지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착하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고, 즐겁지 않으면 슬픈 사람이 되는 식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 사이 어딘가에 보통이라는 영역도 존재합니다.
한 직원이 업무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면?
이 사람은 "일 잘하는 사람"도, "일 못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보통의 성실한 직원입니다.
하지만 "성과가 부족하다"라는 이유로 이 사람을 무조건 "일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찍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봅시다.
모든 사람이 뛰어난 성과를 내지는 못하더라도, 조직에는 이런 보통의 사람들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양극화된 사고방식이 만들어내는 가장 큰 문제는 노력할 공간을 없앤다는 것입니다.
"너는 착하지 않으니까 나쁜 사람이다."
"너는 일 잘하지 못하니까 일 못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딱 잘라서 평가하면, 상대방은 개선하려는 동기를 잃게 됩니다.
"보통"이나 "중간"이라는 선택지가 있다면, 그 사람은 더 나아지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릅니다.
양극화된 표현은 사람들에게 선입견을 씌우고, 그 선입견은 갈등과 스트레스를 유발합니다.
직장 생활에서는 '보통'이나 '중간'이란 개념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착하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다." → 착하지 않아도 평범하거나 무난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즐겁지 않으면 슬픈 사람이다." → 즐겁지 않아도 그저 평범한 상태일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성향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한 가지 기준으로 나누는 것은 불합리합니다.
중간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더 이상 중간을 '우유부단한 사람'이란 이상한 논리로 몰아가면 안 됩니다.
중간을 인정하면 사람들에게 여유와 기회를 줄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완벽하진 않지만, 더 나아질 수 있다."
"지금은 보통이지만, 노력하면 잘할 수 있다."
이렇게 스스로를 발전시키려는 의지가 생길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양극화된 평가 속에서는 "어차피 나는 못하는 사람이야"라며 포기해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직장 생활에서 사람들을 "좋다"와 "나쁘다"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갈등과 오해를 만듭니다.
이제는 '보통'이나 '중간'이라는 선택지를 인정하고, 더 여유 있는 사고방식을 가져야 합니다.
다음부터는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착하지 않으면 나쁘다" → 아니, 그냥 무난한 사람이 있을 수 있지.
"일 잘하지 않으면 못한다" → 아니, 보통 수준도 충분히 괜찮아.
'보통'과 '중간'이란 선택지가 인정받을 때, 직장내 대인관계는 더 건전해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