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뀐 환경에서의 신호 탐지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

Jun 12. 2025

환경을 바꾸면 삶도 달라질 거라 믿었던 적이 있다. 박사 과정 초기, 나는 학교에서 꽤 멀리 살았다. 룸메이트 없이 혼자 사는 것과 자동차를 사는 것 중 전자를 선택했다. 한 번도 혼자 살아본 적이 없어서 박사 시절엔 꼭 해보고 싶었다. 차 없이 매일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학교까지 한 시간 반씩 통근했다. 매일 최소 세 시간씩 통근하면서도 ‘차에서 음악 들으면서 정신 회복하면 되지’ 하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남들이 보기엔 미련하다 할 만큼 고집이 세서 생각을 바꿀 여지가 없었다. 친구들조차 이해가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속으론 ‘너는 부모님이 주신 용돈이랑 차가 있잖아!’ 부러워하면서도 내 상황에 도움 안 되는 부러움은 빨리 접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다 코로나 시절 갑자기 밖에 나갈 일이 없어지자 우리 집이 얼마나 암울했는지 알게 됐다.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는 1층 집에 빛도 거의 들어오지 않았고, 가까운 헬스장이나 수영장도 없었다. 도심과는 거리가 있어 장 보는 것도 배달로 해결해야 했고, 걸어서 커피 한 잔 마실 곳도 찾기 힘들었다. 그래도 한 달에 700불 정도면 뉴욕에서는 룸메이트 없이 살 수 없는 가격이었다. 그런데 2년 동안 살면서 계속 오르던 렌트비가 이제 내년엔 도심과 비슷한 1200불을 넘길 거라는 공식 편지도 받았다. 박사 내내 이사하지 않을 거라 마음먹었지만 더 나은 환경을 찾아야만 했다.

환경을 바꾸지 않으면 내 삶도 바뀌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아파트 헌팅에 나섰다. 생각보다 내 예산에 맞는 아파트를 구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욕심은 많아서, 학교에 걸어서 갈 수 있는 초근접 위치에 집 안 세탁기, 드라이어, 빌딩 안 헬스장까지 원했다. 좋은 아파트는 비싸기만 한 게 아니라 수입이나 통장 잔액이 기준 이상이어야 하고, 세 달치 렌트비를 한꺼번에 내거나 미국 시민권자 보증도 필요했다. 박사생 월급으로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운 좋게도, 한 에이전시의 소개로 새로 지어진 아파트에서 기회를 찾았다. 학교와 걸어서 10분, 내가 원하는 것 이상으로 모던하고 편리한 시설, 소득이 낮은 사람에게 저가 월세 혜택, 게다가 두 달 월세 공짜 계약까지 받아 월세가 정확히 1004불이었다.

어렸을 때 처음 이메일 계정 만들 때 썼던 ‘1004’ 번호가 떠올라 신기했다. 이곳은 나를 위해 준비된 게 아닐까, 아마 우리 할머니가 천사처럼 도와주신 것 같았다. 이사를 도와준 친구들 덕분에 쉽게 새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빛도 잘 들고 베란다도 있는 고층 아파트에 살면서 너무 행복했다. 내가 이렇게 운 좋은 사람인가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모든 시설, 가전제품이 새것이고 고급스러운 게임장, 실내 운동장, 수영장 등 여러 시설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그 아파트에서 처음으로 집 꾸미는 취미를 들였다. 큰 화분을 처음 사보고, 의자, 책상, 책꽂이도 새로 샀다. 내가 ‘모던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를 좋아하는 것도 처음 알았다.

한 2주쯤 지났을까. 그때까지 느꼈던 모든 새로움이 시들해졌다. 다시 우울감에 빠졌다. 하루 종일 책만 보며 혼자 지냈다. 친구들과 수다 떨고 싶은 마음도 없어졌다. 사람을 만나는 게 싫었다. 생소함이 익숙함으로 금방 변하는 걸 보며 ‘아, 그래서 사람들이 더 좋은 집, 더 큰 집을 찾아 헤매는구나. 그렇게 좋아했던 우리 집도 금방 별거 아니게 느껴지는구나.’ 내 삶의 루틴이 되자 감사하는 마음보다 당연하게 여기는 마음이 들었다. 결국 내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자극도 내 속의 공허함을 달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훗날 부자 지인에게서 비슷한 말을 들었다. “난 어린 나이에 밀리어네어가 되어 사고 싶은 건 다 샀어. 여러 채의 집, 럭셔리 자동차, 보트, 여행…. 그런데도 내 마음은 허전했어. 집에 돈으로 물건을 채워도 마음의 공백은 남더라고.” 돈만으로는 행복을 지속할 수 없다는 걸 그때 더 실감했다. 그 후로 돈 이상의 의미를 찾는 것에 더 집중하게 됐다.

신호 탐지 훈련

억제 신호는 우리에게 탐색과 집중 사이에서 유연하게 전환하는 능력을 선사한다. 언제 전환하고, 언제 고수하는 판단하기 힘들 때가 있다. 이를 위해, 신호탐지이론(Signal Detection Theory)에서 본 개념을 빌려 적어보려 한다.

세상이 주는 모든 자극이 도움 되는 정보이며 단서일 수는 없다. 불확실한 사회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미래의 리더는 데이터를 분별력 있게 처리한다. 위 도표는 신호와 노이즈(잡음) 사이에서 대처하는 자세를 매트릭스로 나타낸 것이다. 내가 반응해야 할 중요한 신호에 올바르게 반응을 하면 Hit이며, 감지력과 실행력이 둘 다 높은 상태다. 고객의 피드백에 감사를 표하고 수정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만일, 불필요한 자극에 굳이 반응을 하면 오경보(False Alarm) 상태가 된다. 누가 한 말에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불필요한 자극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상태이다. 반대로, 중요한 신호에도 무감각하고 적절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위기인식이 부족한 상태인 Miss라고 표현할 수 있다. 베스트바이가 초기 넷플릭스 성장에 크게 위기를 느끼지 않았던 때를 예로 들 수 있다. 이와 달리, 절제된 냉철함(Correct Rejection)은 반응하지 않아도 될 신호를 무시하는 집중력을 나타낸다. 잘못된 지시나 조언에 크게 감정 소비를 하지 않는 성숙함이라 볼 수 있다. 리더로서 감지력과 실행력을 유연하게 조절하려면 필요한 것이 바로 절제력 혹은 억제 신호이다.

뇌에서도 유연하게 처리되는 전환

전전두피질과 해마 사이의 연관성은 작업 기억 능력과 이것이 유연한 사고력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하여 오랫동안 연구되어 왔다. 우리 실험실에서 나온 새로운 연구 결과를 소개하겠다. 나의 논문에도 선보인 가상현실 상 와이자(Y) 모양으로 된 트랙의 생쥐 실험이다. 쥐가 기다란 통로를 지나가다 본 보상 관련된 단서가 나온 쪽으로 통로 끝에서 방향을 틀면 보상을 받는다. 이때, 처음에 나왔던 단서가 나중에 나온 단서와 엇갈릴 수 있다. 처음 단서는 왼쪽으로 가라고 했지만, 이제 오른쪽으로 가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쥐는 이 새로운 단서가 나옴과 동시에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 이때, 유연한 사고에 중요한 전전두피질과 해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업데이트가 필요하다는 단서가 나왔을 때, 해마 뉴런이 과거의 목표 지점과 새롭게 바뀐 목표 지점 둘 다 대표하여 활성화된 것을 확인했다. 해마가 미래를 예측하면서 택할 수 있는 모든 선택지를 ‘떠올려보는’ 모습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내가 한 목적지를 정해두고 갈 때 갈 수 있는 모든 길을 고려해 보면서 어느 길이 가장 나을지 선택하는 것이다. 재밌는 사실은, 쥐가 더 크게, 더 극적으로 방향을 틀어야 할수록 (현재 상황과 새 목표의 격차가 클수록) 해마 속에서 새로운 목적지가 더 강하게 표출되었다. 마치 지금 내가 더 분발해야 한다는 것을 더 강하게 각인시키는 것 같다. 이와 달리, 전전두피질의 뉴런이 대표하는 것이 과거에서 새로운 목표 지점으로 바뀐 것을 발견했다. 이 변화도 쥐의 실제 행동과 관련되었다. 쥐가 만일 새로운 단서에도 행동을 바꾸지 않는다면, 전전두피질의 반응도 수정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