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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돈'의 가치

뇌과학으로 보는 투자

by 정누리

얼굴 본 지 꽤 오래된 친구와 만났다. 한 벤처 캐피털(VC) 그룹에서 거의 유일하게 여성으로 당당하게 일하는 친구가 참 멋있어 보였다. 물론, 인생이 그렇듯 좋아 보인다고 다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요즘 고민거리는 남성 투자가들 간에 생기는 조용한 긴장감 속에서 이상하게 본인이 소통의 다리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 신경 쓰인다는 것이다. 특히, 투자를 지원한 회사 리스트를 검토하는 회의에서 나타나는 패턴에 불만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이 사람들이 면전에는 조용하면서 미팅 끝나고 꼭 구시렁거린단 말이야. 왜 이렇게 시간 낭비하면서 회의하는지 모르겠어. 처음부터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그냥 대놓고 말을 하지 그래."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에 토를 달면서 결국 결론 없이 끝나는 토론을 한다거나, 오히려 의미 있는 우려 사항은 회의 끝나고서야 그나마 잘 들어주는 여성 친구에게 털어놓기 일쑤였다. 투자할 돈은 정해져 있고, 괜히 나섰다가 자신이 실패의 원인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이 침묵의 이유로 추정되었다. 보통 투자가라면 샤크 탱크(Shark Tank)에 나오는 목성 좋고, 자신감이 차고 넘치는 사람들만 보아와서 그런지 이런 상황이 있다는 것이 내심 놀라웠다. 역시나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내가 생각한 "투자가"의 선입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이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최근에 본 연구가 떠올랐다. 십 년 넘게 투자를 해온 베테랑 투자가들이 익명화된 특정 기업 정보를 보는 동안 나타나는 뇌 속 변화만으로도 그 기업이 1년 뒤 주식시장에서 성공할지, 실패할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결과였다. 해당 업종의 수익률 평균을 능가하는 회사들의 데이터를 읽는 동안, 측좌핵(Nucleus accumbens) 활동이 우연 수준 이상으로 증가했다. 실시간 뇌 영상 촬영을 할 수만 있다면 이론적으로는 토론할 필요 없이 특정 회사의 성과율을 일기예보처럼 확인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투자가들이 기본적으로 중요시하는 데이터 종류(기업 프로필, 가격 그래프 등)가 비슷하며, 대부분 동일한 결론에 이른다는 점을 보여준다. 실험 특성상, 결과적으로 성공이나 실패하는 기업의 과거(1999-2011 년도) 데이터가 확연히 차이 나는 것을 골라 실험 대상으로 써서 그럴 수도 있다. 그래도 뇌과학이 투자받는 입장에는 희망과 안도감을, 투자하는 입장에는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만하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도구만 존재한다면, 불확실성에 반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우리가 누군들 써보고 싶지 않을까 생각한다. 돈과 직결되는 계획은 더 그렇다. 아니나 다를까 요즘 금융 활동 관련 뇌과학 연구가 뜨고 있다. 뉴로 파이낸스(Neurofinance)라는 말도 생겨난 지 불과 십 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새내기 분야다. 인간 행동의 특성을 마냥 주관적인 '감'이 아니라, 보다 객관적으로 풀이한 뇌과학적 설명이 주목받는 것 같다. 평소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는 동물이라 생각하기에, 나는 개인적인 성향 외에 사람과 사람 관계를 다루는 연구가 흥미롭게 느껴진다.


소비자들이 상품 가격에 따라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실험한 뇌 연구 중, 인간 관계성을 고려한 것이 눈에 띈다. 최근의 한 실험에서는 사랑하는 연인 사이와 친구 사이에서 가격 민감도를 측정했다. 배우자나 연인을 위한 선물은 고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살 확률이 높았고, 동시에 만족감을 나타내는 뇌 부위도 더 활성화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무리 비싸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선물에 기뻐할 것을 생각하며 기분 좋게 돈을 지불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친구를 위한 선물이라면 가격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고가에 살 확률이 현저하게 감소했다. 럭셔리 상품의 마케팅 부장은 애정 시장에 더욱 적극적으로 홍보하라는 결론이다.


주위에 "내가 이 사람이랑 사귀는 사이인지 아직도 확실지 않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은 연구이다. 앞으로 데이팅 앱에서 당신을 향한 상대의 마음을 이렇게라도 알아가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만일 뇌 실험이 필요할 만큼 마음이 불분명하고 소통이 안 되는 자와 연애를 한다면 죄송하지만 오래가지는 않을 것 같다. 뇌 영상 결과가 법정에서 책임을 묻는 것에 쓰이는 것에 도덕적 논란이 많다. 그만큼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불륜이나 외도 확률을 측정하는 자극적인 기계가 출시된다면 적어도 호기심은 끌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한들, 과거 데이터만 가지고 미래를 예측하는 분석법에 딴지를 걸고 싶을 때가 많다. 과거 데이터가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게 아니라, 변수에 무감각한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많이 없는 것 같아서 그렇다. 기존 데이터가 미리 마음속으로 찍어둔 것을 '증명'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종종 보기에 더욱 그렇다. 사실 데이터를 이용하는 데 필요한 설명, 분석, 간단한 예측 등은 AI 기술로도 가능해졌다.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기술은 단순히 어떤 기술을 빨리 배우고 쓰는 기술을 넘어, 어떤 질문을 던짐으로써 방향성을 어떻게 달리할 것인가의 사고의 기술이다. 뭐가 중요한 지에는 정답이 없다.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어떤 질문을 만들어내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길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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