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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제 신호, 그리고 전환

전환의 뇌과학

by 정누리

억제는 두려움이 아닌 선택


많은 사람들은 ‘억제’라는 단어에서 부정적인 느낌을 받는다. 마치 나를 통제하고 제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억제 신호는 우리 뇌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다. 잘만 활용하면, 상황을 읽고 선택할 줄 아는 최고의 리더가 될 수 있는 무기가 된다.


뇌에서 억제 신호는 억제성 뉴런의 대표적인 억제성 신경전달물질 GABA(Gamma-aminobutyric acid)라는 녀석으로 나타난다. 사람들에게 ‘억제하러 가바~’ 말해주고 싶다. 최근에는 MRS(수소(1H) 자기공명분광법, magnetic resonance spectroscopy)라는 특별 MRI 기술로 살아있는 사람의 뇌에서도 GABA 양을 직접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연구와 임상 진단에서도 폭넓게 사용되는 이 기술 덕분에 우리는 억제 신호가 단순히 억압이 아니라 ‘정교한 선택’의 수단이라는 사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한 연구에서는 GABA가 증가하면 감각을 더 세밀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밝혀냈다. 반면, GABA가 감소하면 유연하게 새로운 정보를 학습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즉, GABA는 감각을 예리하게 만들 수도 있고, 기존 방식을 내려놓고 새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처럼 억제 신호는 상황에 따라 전략적으로 높이거나 낮춰야 할 스위치와 같다. 미래의 리더는 바로 이 억제 신호의 가변성을 이해하고, 필요에 따라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우리 뇌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시각 작업을 매일 처리하고 있다. 복잡한 행사장에서 친구를 찾을 때도, 비슷한 제품 두 개 중 더 좋은 것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다. 그 순간 뇌는 지금 당장 필요한 정보는 확대하고, 필요 없는 정보는 과감히 무시한다. 이때 작동하는 것이 바로 억제 신호다.


억제 신호는 마치 스위치처럼, 어떤 감각을 강조하고 어떤 감각은 꺼버린다. 이는 ‘감지력’과 ‘분별력’을 동시에 조절하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과제에 따라 달리 쓰이는 억제 신호는 뇌 실험에서 확인됐다. 복잡한 환경에서 목표를 찾아야 하는 과제에서는 GABA 수치가 감소할 때 학습 속도가 더 빨라졌고, 반대로 두 자극의 미세한 차이를 구분해야 하는 과제에서는 GABA 수치가 증가할 때 더 빠른 학습 효과가 나타났다.


이런 학습도 반복 훈련을 통해 더 정교해질 수 있다. 같은 동작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피겨의 여왕’ 김연아의 연기를 생각해 보자. 그녀는 복잡한 동작을 일관된 타이밍과 자세로 수없이 반복해 왔다. 얼마나 피나는 훈련을 했는지, 어려운 동작도 쉬워 보이게 만든다. 그 혹독한 훈련 과정 속에서 그녀의 뇌는 불필요한 신호는 차단하고, 필요한 신호만을 강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여러 번 학습하면서 일관된 동작으로 고정시키는데도 억제 신호가 작용한다. 시각적 패턴을 탐지하는 실험에서, 학습 초기에는 GABA 수치가 흥분성 신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 새로운 자극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상태였다. 그러나 학습이 반복될수록,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뇌 영역에서 억제 신호가 증가했다. 그 결과 해당 기억은 다른 시각 정보의 간섭으로부터 더 견고하게 보호되었다. 즉, 처음에는 유연성, 나중에는 안정성으로 전환되는 전략적 억제가 일어난 것이다.


이런 억제는 감정과 생각에도 작용하다. 한 연구에서는, 해마 내 GABA 농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원치 않는 생각을 억제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밝혀졌다. 이는, 부정적 생각을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잊는’ 인지적 억제에도 억제 신호가 직접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일러준다. 뇌는 단순히 기억을 저장하는 장치가 아니라, 필요 없는 정보는 무시하는 전략적 관리자이기도 하다.


억제 신호는 기억을 억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 뇌는 필요한 기억을 ‘끄집어낼 때’는 억제 신호를 잠시 꺼버린다. 어제 나에게 보상을 줬던 단서에 대한 기억을 회상할 때처럼, 기억 회상 과정에서도 억제 신호는 정교하게 작동된다. 원하는 기억을 불러낼 때, 해마의 억제성이 감소하면서 상대적으로 흥분성을 높인다. 억제성이 잠시 감소되는 현상은 그 순간 흥분성을 되살림으로써 중요 기억이 활성화될 수 있게 도와준다. 내가 참여했던 쥐 실험과 비슷한 결과가 인간에서도 확인된 셈이다. 억제 신호의 조절이 기억 형성과 회상에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처럼 억제 신호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연하게 조절된다. 그 조절을 통해 뇌는 상황에 맞춰 감각을 선별하고, 전략을 전환하며, 무엇에 집중할 것인지 결정한다. 감각을 미세하게 분별해야 하는 상황에선 GABA가 증가하여 회로를 정교화하고, 창의적 사고가 필요할 때는 GABA를 줄여 새로운 연결을 시도한다. 즉, 우리의 뇌는 상황에 따라 ‘집중 모드’와 ‘탐색 모드’를 스스로 바꾸는 셈이다.

전략적 리더는 이 원리를 그대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단순히 정보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조절하고 사고를 전환하며 집중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이런 전략적 억제를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미래의 리더다.


나는 이것을 Triple-S시퀀스, Scan-Switch-Stabilize라는 세 가지 전략 루틴으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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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캔(Scan): 억제 신호가 가장 약한 상태로, 외부 환경을 넓게 바라보며,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하는 단계이다. 리더의 호기심, 개방성, 주변 감각을 깨우는 시점이다.

2. 스위치(Switch): 억제가 유동적인 상태로, 탐색과 집중 사이를 넘나들며, 전략적 판단을 위한 전환이 일어난다. 실험과 선택이 동시에 존재하는 순간이다.

3. 스테블라이즈(Stabilize): 억제 신호가 최고조인 상태로, 목표에 몰입하고 실행력을 발휘하는 단계이다. 리더가 선택한 전략을 고정하고 추진하는 힘이다.

뇌는 이처럼 유연하게 작동되는 억제 신호를 통해 우리 생활의 여러 과제를 처리한다. 단일한 작용이 아닌 스캔-전환-고정이라는 전략적 순환 사이클을 구성한다. 리더가 이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다면, 의사결정과 실행력의 수준은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리더를 위한 Triple-S 실천 팁

Scan

새로운 자극, 이상한 기분, 감정의 찌그러짐을 그냥 넘기지 말자.

오늘 하루 가장 낯선 장면이나 감각을 메모해 보자.

Switch

반복적인 일정, 매너리즘이 느껴질 때 질문을 바꿔보자.

“지금 말고 다른 길이 있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Stabilize

전략을 정한 후엔, 그걸 고정하는 행동 루틴을 만든다.

하루 한 번 ‘이 전략을 밀어붙일 행동’을 정하고 실행해 보자 (예: 방해되는 알림 차단, 해당 행동에 25분 타이머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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