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R(심폐소생술 거부)

삶의 끝에서 마주하는 선택

by 니나노



DNR(Do Not Resuscitate)

심폐소생술(CPR)을 포함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는다는 의료적 동의서


사람의 생명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신성한 가치가 있지만, 때로는 의학적 개입이 더 이상 환자의 고통을 완화하거나 삶의 질을 향상시키지 못하는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DNR(심폐소생술 거부) 동의서를 받게 된다.


일부 보호자들은 의료진의 편의를 위해 DNR동의서를 요구한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동의서의 진정한 존재 이유는 바로 환자의 존엄성을 지키고 편안한 임종을 맞이 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때로는 DNR동의서가 있었다면 환자분이 마지막 순간을 더욱 평온하게 보냈을 거라는 안타까운 생각을 하곤한다. 의료인으로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큰 보람이지만, 회복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의 연명치료는 환자 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의료진에게도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50대 후반의 한 암환자분이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일반적으로 암 환자들은 대학병원에서 적극적인 항암 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지만, 이 환자분은 초기 암임에도 불구하고 항암치료를 받지 않았다. 게다가 복잡한 개인적인 가정사로 인해 보호자와의 연락조차 쉽지 않았다. 그렇게 별다른 일 없이 5개월이 흘렀다. 처음에는 혼자서 화장실도 다니고 식사도 잘 하였으며, 가끔은 산책도 즐기던 분이였다. 하지만 암이 진행되면서 통증의 빈도가 잦아지고 우울증 증세까지 보였다. 암의 진행 정도나 전이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검사는 요양병원에서는 불가능하기에, 보호자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다. 계속 전화를 받지 않다가 3일 만에야 보호자와 연락이 닿았다. 의사는 보호자에게 환자의 상태와 전원여부, DNR동의서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보호자는 "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 치료는 다해주세요."라고 말하며, "제가 사는 것이 너무 바빠서 전화하지 마시고 알아서 다 해주세요. 혹시 돌아가시면 그때 전화주세요."라며 전화를 끊었다.


우리가 환자한테 해 줄 수 있는 것은 정해진 시간에 맞춰 들어가는 진통제 투여량을 늘리는 것 뿐이였다. 요양병원에서는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처럼 적극적인 치료를 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다 결국 환자의 상태가 점점 악화되어 스스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되었고, 식사조차 하기 힘들어졌다. 갑작스러운 혈압저하와 산소포화도 감소도 보였다. 응급상황이였다. 우리는 보호자에게 다시 연락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급박한 상황이 지속되었고 DNR 동의가 되어 있지 않았기에, 우리는 규정에 따라 심폐소생을 시행할 수 밖에 없었다. 며칠 후, 이 환자는 세번의 심폐소생술을 받고 돌아가셨다. 보호자는 진짜 "사망하셨다"는 문자를 받고 나서야 연락이 되었다.


이러한 사건들을 겪으며 사람은 자신의 탄생뿐만 아니라 죽음조차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존재인 것 같아 머리가 아파왔다. 그리고 만약 보호자가 DNR동의를 해줬더라면, 환자의 마지막 순간은 조금 더 평안하게 맞이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깊은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이런 안타까운 경험들은 몇번 되풀이가 되면서 부모님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래. 안그래도 지난주에 아빠랑 손잡고 보건소에 가서 연명치료 거부서를 작성하고 왔어"

어머니의 말을 듣는 순간, 딸로서 서운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나라에서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언젠가 찾아올 마지막 순간이 부디 편안하길 나의 의사가 온전히 반영될 수 있길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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