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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살짝 쿵?!(손톱)

손톱

by 필경 송현준

손톱, 삶의 날카로운 흔적과 겸허한 사라짐


나는 '손톱'이다. 겉으로 보기엔 무딘 듯, 별다른 감각 없는 평범한 조각 같지만, 내게도 한때는 모든 것을 할퀴고 긁어낼 수 있었던 날카로운 칼날의 시절이 있었다. 젊음의 혈기와 뜨거운 욕망으로 가득했던 그때는, 세상의 모든 것을 베어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면의 날카로움을 갈고닦으며, 세상의 경계선을 넘나들던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예리함과 도도함. 타인의 시선은 중요치 않았고, 오직 내 안의 꿈틀거리는 야망만이 나를 지배하던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삶은 늘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로 가득하다. 때로는 원치 않는 순간에 툭 하고 잘려 나간다. 처음에는 아프다. 감각이 없는 줄 알았는데, 존재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상실감에 쓰라린 통증이 밀려온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그 고통은 아물고 조용히 다시 자라난다. 특별한 노력이나 의지 없이도, 그저 익숙한 자리에서 묵묵히 제 모양을 찾아가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상처가 아물고 다시 돋아나는 과정 속에서, 나는 말없이 회복탄력성이라는 단어를 배운다.


남들은 나를 귀찮아한다. 필요할 때나 한 번 돌아볼 뿐, 거추장스럽거나 보기 싫을 때는 언젠가 툭 하고 부러뜨려 없애버린다. 타인의 필요에 의해 쉽게 부서지는 존재.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두면, 나는 이내 어딘가에 걸려 스스로 금이 가고 만다. 외부의 힘이 아니라 나 자신의 내재된 취약성 때문에. 온전히 나 스스로 설 수 없는 한계.


'잉여'라 불리는 것조차 이제는 익숙하다. 무용하고, 필요치 않은 존재. 삶의 풍경 속에 남아있지만, 그 어떤 기능이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잔여물. 하지만 이 '잉여'의 자리에서도, 가끔은 나의 미미한 변화가 삶의 작지만 확실한 흔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내가 조금씩 길어진다는 것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나도 모르게 '살아 있음'의 증거를 남기고 있다는 깨달음. 비록 보잘것없어 보여도, 끊임없이 존재하며 변화하는 그 자체가 생명의 경이로운 흐름인 것이다.


혹시 몰라. 비록 나를 스스로 귀하게 여기지 않을지라도, 누군가에겐 아주 작은 조각이라도 필요할지도. 타인의 빛나는 존재를 받쳐주는, 눈에 띄지 않는 조연의 역할이라도. 그러한 쓰임새를 희미하게나마 감지할 때면, 나는 더 이상 아프지 않다. 가장 단정하고 깔끔한 순간, 과거의 날카로움도 미래의 불안감도 없이, 그저 조용히 잘려 나간다. 나는 그렇게 비워내고, 내려놓는 겸허함을 배운다. 그리고 그렇게, 삶의 순환 속에서 나는 사라짐을, 모든 존재가 결국 겪어야 할 소멸의 과정을 천천히 배워 나간다. 사라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또 다른 형태의 준비임을 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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