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아는 것을 상대방도 안다고 착각할 때.
- 한국어도 잘 모르는데 외국인이 말을 걸어왔을 때.
- 동네 어르신이 모르는 사자성어를 사용하실 때.
- 입사 첫날 업무 회의가 난해한 전문용어투성이일 때.
우리는 한없이 작아져, 먼지로 흩어지고 싶어진다.
"평소에 내가 공부 좀 해뒀으면.."
매번 자아 성찰을 하고, 잊어먹기를 반복하다가,
부끄러움과 억울함에 변명거리가 생각나기 시작한다.
나는 이렇게 알아가기 힘겨운데, 아는 쪽에서 다가와주면 안 될까?
어디 가서 말하면 혼날 것 같은 이 생각은,
공부하기 귀찮은 사람의 철없는 투정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의외로, 아주 합당한 생각이다.
번역기나 계산기 같은 현대 문물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꾸준한 노력과 끈기가 필요함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우리는 당장 지식이 필요하다.
- 외국인에게 길을 알려줘야 하며,
- 어르신에게는 대답을 해드려야 하고,
- 회의 시간에는 뭐라도 발언해야 한다.
너무나도 급해서, 잠깐 망설일 시간조차 아깝다.
정녕 방법이 없는 것일까.
그때, 누군가 조용히 옆으로 다가와..
세상에서 제일 달콤한 말을 속삭여준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뜻이냐면요.."
그는 목소리가 또렷한 청년이었는데, 말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어려웠던 단어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다듬어,
이해하기 쉬운 말로 조리한 뒤 친절하게 떠 먹여준다.
드디어 상대방의 말들이 완벽하게 이해되었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당장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이번엔 운이 좋았다는 사실을.
매번 이런 친절한 사람이 와주면 좋겠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바쁘게 살고 있을 것이다.
방해해선 안 된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역시 안되겠다.
저렇게 똑똑한 비결이 뭔지, 가서 직접 물어봐야겠다.
절대 '또 도움받고 싶어서' 쫄래쫄래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고 자기합리화하며 그의 뒤를 밟던 도중,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생김새가 초등학생 정도 되는 것으로 보이는,
코흘리개 아이와 함께 이야기 중이던 그.
무슨 대화를 나누나 귀 기울여 보니..
무려 군대 이야기를 해 주고 있었다.
심지어 아이는 그걸 즐거워하고 있었다!
아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군대 정문을 지키는 군인들이 높으신 분을 만나 봉변을 당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단지 군대가 화려한 왕국으로 변했을 뿐,
의미는 완벽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청년은 '아이의 눈높이' 로 이야기 중이었다.
그제야 깨닫는다.
우리가 얼마나 우리 생각만 하며 대화했는지를.
이 청년이 대단한 것은 사실이지만,
보통 사람들도 아이에게는 이해하기 쉽게 말해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우리들의 지식은 완벽한가?
모두가 자신들만의 특별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가?
동시에, 자신이 다소 어려워하는 분야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는..
상대방이 내 말을 '당연히' 알아들을 거라 확신했을까?
누가 더 똑똑하냐를 가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환경, 전공, 직책, 나이 등에 따라, 사람들이 아는 것은 천차만별이다.
단지 듣는 사람이 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다고 '단정' 지어버린 것이다.
분명 멋진 일이지만,
남에게 그대로 전달했다간 심리적인 거리를 두게 만든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없다 한들, 최소한 내 말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면,
'상대방의 언어' 로 다가가라.
조금은 느리더라도, 조금은 번거롭더라도.
상대가 반드시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차근차근 풀어나가다 보면.
비로소,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