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 주는 불안감.
김이 다 빠진 캔 음료를 상상하며 공포에 휩싸였다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잘 전달되었다는 뜻이다.
나는 평소에 '페트병에 담긴' 음료를 자주 선택한다.
마시다가 언제든 냉장고에 보관할 수 있고,
뚜껑만 꼭 닫으면 김이 빠질 위험도 적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되돌릴 수 있는 선택을 사랑한다.
허리춤에 밧줄을 묶고 미궁을 탐험하듯이, 돌아갈 방법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커다란 안정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묻고 싶다.
선택을 한 후 아무도 취소하지 않았다면, 취소할 방법이 없어도 되는 것일까?
요즈음은 사이버수사대의 존재, 수많은 사건으로 인한 시민의식 덕에 악플은 정말 효과적으로 감소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남은 악플러들도 정말 많다.
아니, 한 명만 남아도 문제다.
사람은 아무리 많은 칭찬을 받아도, 한 번의 비난에 온 신경을 쏟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악플을 근절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대책은 무엇일까?
나는 의외로 간단하고 강력한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삭제 버튼'을 없애는 것이다.
그 중요한 것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책임감이 몸에 감돈다.
악플을 안 쓰는 것은 물론 한 글자 한 글자에 신중을 기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악플 없는 세상이 될 것이고, 모두가 책임감 있게 댓글을 달게 될 것이다.
그렇게 선순환이 이어지며 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런 댓글도 남지 않을 것이다.
삭제 버튼을 없앤 자의 의문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전보다 더 신중하고 예쁜 댓글을 달아주셔야죠."
-> 그렇다. 실제로 생겼던 긍정적인 효과였다.
"저는 악플 다는 사람들만 조용해지게 만든 건데."
-> 아니다. 크나큰 착각을 하는 중이다.
"왜요? 다들 찔리는 거라도 있으신가요?"
-> 이래저래 시끄러우니, 한마디만 하겠다.
"지금부터 녹음을 시작합니다."
"..."
-> 드디어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실수를 두려워한다.
- 캔을 땄다가 다 못 마시면 어떡하지?
- 댓글을 달았다가 잘못된 부분을 발견하면 어떡하지?
- 말 잘못했다가 나중에 불리하게 작용하면 어떡하지?
모두 한목소리로, '취소' 를 요구하고 있다.
아무도 취소를 안 한다 해도, 문제점은 그대로다.
애초에 그들에게 안심을 준 것은,
'실수를 되돌릴 방법이 존재한다는 사실' 이었으니까.
ㅡㅡㅡ
학생의 수준을 파악할 목적으로,
두 명의 선생님이 '문제집 숙제' 를 냈다고 생각해 보자.
A 선생님: 이건 너의 수준을 파악하려는 의도야.
그러니까, 무조건 솔직히 풀어. 그래야 내가 널 잘 가르칠 수 있으니까.
B 선생님: 틀려도 고치면 되니까, 천천히 풀어~
네가 어려워하는 부분을 발견하면 오히려 더 좋은 거니까, 맘 편히 해 알았지?
결과는 이랬다.
A 학생: 92점!
B 학생: 70점.
이 두 학생의 '실제 수준' 은 어땠을까?
의외로, 둘의 수준은 똑같았다.
그럼에도 점수 차이가 발생했던 이유는, 이 시험이 '숙제' 였기 때문이다.
A 학생은, 수준 평가에 강박이 생겨 답안지를 몰래 보았고,
일부러 몇 개를 틀려 의심할 여지도 없앴다.
B 학생은,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찍지 않고 건너뛸 정도로
정직하게 문제를 풀었다.
실패가 자유로웠던 그는, 선생님의 배려 덕에 자신의 수준에 맞는 교육을 듣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시험을 마치고 성적표를 받는 날.
90점이 넘는 점수를 받은 학생은..
B 학생뿐이었다.
자신을 구속하지 않기를.
오히려 구속하지 않을 때, 그들은 신뢰를 통해 더욱 굳건하게 자리를 지킨다.
우리 또한 그렇다.
너무 먼 곳을 바라보느라,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한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이 있다.
오늘은 한 번쯤 실수해도 괜찮다고,
오늘은 한 번쯤 뒤로 가도 괜찮다고 말해주자.
비로소, 우리 마음은 평온을 되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