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를 건 많은데 찾는 건 없을 때.

과도한 선택지가 가져오는 부작용.

by IDONTKNOWUX

백화점에 도착했다.

오늘은 열심히 살아온 나를 위한 보상 겸,

값비싼 빵을 사 먹는 날.


너무 많이 샀다가는 살이 찔 것 같아서,

욕심 없이 딱 하나만 사기로 했다.


가진 돈은 충분하다.

자신감 있게, 고풍스러운 빵 가게로 들어선다.


구수한 냄새가 코를 찌르며, 빵들이 나를 반긴다.

비슷한 종류끼리 모여, 다채롭게 나열된 나의 사랑스러운 빵들.


가게 안을 천천히 돌며, 내게 선택받을 빵을 찾기 시작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두어번을 돌았는데, 아직도 고르지 못했다.

맛있어 보이는 건 참 많았는데도.


게다가 내 속마음은 자꾸 불평만 한다.


'이거 고를 바엔 아까 그게 나았을지도..'


결국 가게를 나섰다.

고민만 한참 하다 보니, 안 먹어도 상관없는 기분이 되어버린 탓이다.


나쁘지 않다.

돈도 아끼고 건강도 챙겼다.


..근데 솔직히 그냥 대충 집었으면 되었을 것을?


왜 '겨우 하나' 선택하는 일이 이렇게나 어려웠을까.



선택권이 있다는 건 정말 달콤하다.

'주도권' 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원하는 선택지가 없을 때는, 선택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손님은 왕이다'


이 말이 유명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손님은 돈을 내러 왔고, 아쉬운 사람은 가게 주인이지 않은가.


이처럼 손님들은 선택권 덕에 여유롭게 가게에 들어선다.

반대로 말하면, 선택권을 박탈당하는 순간 불쾌감을 느낀다는 의미다.


- 가게에 들어갔는데 제품 종류가 하나밖에 없거나.

- 가게 직원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뭔가 추천하거나.

- 원하는 것이 품절되었을 때.


우리는 불쾌감을 느끼며,

여기까진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아까는 왜..?'

백화점의 빵집은 분명 수많은 선택지를 제공했다.

어째서 손님을 떠나게 만들었을까?


그건 바로, 선택지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선택지가 적어도 문제, 많아도 문제라고?

해결 방법이 없다는 걸까..?



사실, 빵집은 잘못이 없다.

우리의 목적을 기억하는가?


'욕심 없이 딱 하나만 먹기로 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선택지를 바라보게 되면,

원하는 것이 두 개 이상인 순간 쉽사리 결정을 못 내리게 된다.


결국, 가게에 들어선 순간의 '사고 싶었던 마음' 은,

오랜 고민으로 인해 약해져 갔던 것이다.


피해자인 빵집은 잘못은커녕,

오히려 손님의 다양한 입맛을 고려해

여러 종류의 빵을 준비하는 훌륭한 자세를 보였다.


그렇다.

이건 선택지의 질과는 전혀 관계없다.

그저 선택지가 많기만 하면 문제가 되어버리는,


‘가게가 잘할수록 손님은 떠나는’ 상황이다.


결국 선택지가 많으면 좋다는 의미일까?


아니다.

'선택지의 질이' 낮은 경우가 존재한다.

그저 선택지가 많기만 하면 문제가 되어버리는.



'종류' 가 아닌 '맛' 에 집중해 보자.

이해를 돕기 위해 계속 빵집으로 설명하겠다.


먼저, 설명에 도움을 주시는 두 가지 빵집의 '메뉴판'을 살펴보자.



[사이다네 빵집] 딸기 케이크, 초코 크루아상, 소시지 빵.

[고구마네 빵집] 딸기 케이크, 블루베리 케이크, 치즈 케이크.



케이크 전문점이 아닌, '빵집' 임을 생각해보면..


분명 둘은 같은 양의 선택지를 제공했음에도,

고구마네 빵집의 문제가 크다는 걸 대번에 알 수 있다.


맛을 분류하는 데에 너무 신경 썼다가,

처음의 우리 같은 '목적이 분명한 손님'을 놓치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는 선택지를 적당히 줄이면 간단히 해결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종류의 부재' 에 있다.


우리가 빵 가게에 들어갔을 때를 상상해 보자.


목적이 분명한 상황이 아닌 이상,

빵집에 들어선 우리는 '빵의 종류' 부터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달콤한 간식이나,

식사를 대신할 기름진 빵을 찾으러 왔다면?


고구마네 빵집은,


아무 메뉴도 없는 빵집이 되어버린다.



망해가던 고구마네 빵집은 강수를 둔다.

순식간에 '케이크 전문점'으로 가게를 리모델링하며,


[신제품 수요 조사에 참여해 주세요~!]


라는 제목의 이벤트를 열었다.


참여해 주신 분에게 간단한 경품까지 선물하는,

신제품 출시 설문조사 이벤트.


그리고 이 이벤트 덕에,


고구마네 빵집은 완전히 망했다.


이번엔 또 무슨 잘못을 했는지 함께 파헤쳐보자 :)



<설문조사지>

1. 헤이즐넛 케이크

2. 복숭아 케이크

3. 해물짬뽕 케이크


선택하신 제품이 신제품으로 출시됩니다~!



"3번."

더 볼 것도 없이, 우리 모두가 같은 선택지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이 가게는 이미 망해가는 중이라,

손님들은 제품의 품질에 대한 기대조차 없다.


'3번은 안 고를 거지만 사장님 센스 있다 ㅋㅋㅋ'

를 기대한 설문은,


'아 해물짬뽕 케이크 어디 한번 만들어봐 ㅋㅋㅋ'

로 돌아와 버렸다.


딱히 매력적인 선택지가 없었던 손님들은,

재미있는 선택지로 시선을 돌리게 된 것이다.


압도적 표를 받아버린 3번을 외면할 수 없었던 고구마네 빵집은..


괴식의 탄생과 함께 깔끔히 폐업하게 되었다.



'많을수록 좋다'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문장이 존재한다.


'과하면 좋지 않다'

두 문장이 함께 있을 때, 손님의 선택지는 조화를 이룬다.


왕이신 손님에게, 무조건적인 조아림은 옳지 못하다.

왕의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아주는 신하야말로 '충신' 으로 평가받지 않던가.


그러니, 자신에게 맞는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알맞은 공간' 만을 제공해 드리자.


왕께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 오늘의 UX }

"가게는 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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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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