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올 줄 몰랐던 게 우리 잘못인가.

일관되고 예상되는 결과가 가져오는 편견.

by IDONTKNOWUX

분명 비가 그쳤었는데.

창밖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와보니, 장대비가 옷을 적신다.


'좀 더 확실히 보고 나올걸 그랬나..?'


황급히 다시 집으로 들어가며, 미묘한 자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평소 확인하던 체크리스트가 전부 막혔기 때문이다.


- 밖엔 우산을 썼는지 확인할 사람도 없었고

- 물웅덩이는 확인하기엔 너무 멀었고

- 하늘은 먹구름이라기엔 회색빛이었다.


결정적으로, 오늘의 날씨는 '구름 많음' 이었다.

즉, 내가 집을 나오는 타이밍에 딱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봐도 내 잘못이 아닌 것 같아서, 자책감을 살포시 접었다.

서서히, 짜증이 밀려온다.


"내가 비를 맞은 건, 너 때문이야."


하늘을 향해 단호히 말했다.

감정적인 분노가 아닌, 이성적인 지적으로.


물론, 합당한 이유도 준비되어 있다.

이유가 부당하면 소나기를 내려 복수할 것만 같은 하늘을 두고,


하늘이 뭘 잘못했는지 설명해 보겠다.



하늘의 잘못 제 1호.

나에게 수도 없이 거짓말을 했다.


양치기 소년이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장난꾸러기 양치기 소년은, 늑대가 나타났다고 허구헌 날 소리쳐댔다.

실제로는 늑대가 오지 않았음에도, 위험한 장난은 계속되었다.


결국 세 번째 외침, 진짜 늑대가 왔을 때는,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았다.


'거짓말을 반복하면 진실도 믿지 않는다'

확실한 교훈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이야기이지만,

나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관찰해보고 싶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에서, 소년만이 알고 있는 정보가 있었다.

바로, 마지막 외침은 거짓말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즉, 양치기 소년에게도 수습할 방법이 있었다는 뜻이다.


- 장난쳤던 때와 다른 느낌으로 외치든,

- 찾아온 늑대의 외형을 설명해 현실감을 더하든.


뭔가 '새로운 신호' 를 주었다면 어른들도 왔을 것이다.


상황이 달라졌음에도 같은 신호를 보낸 것이,

수습할 수 있었던 상황을 망친 그의 결정적인 실책이 아니었을까.


하늘도 마찬가지다.

분명 나가기 전 내게 보낸 신호들은, '구름 많음' 일 때 보내온 지겨운 신호들이었다.

이번엔 '우르릉..' 하든가, 좀 더 까만 구름을 보여주든가.


왜 '누가 봐도 비가 안 올 것 같은' 신호만을 주어서

날 착각하게 했을까.



하늘의 잘못 제 2호.

비가 안 와야 정상이었다.


현대의 날씨 예보는 너무나도 발전했다.


사람들은 특히 일상에 피해를 주는 '비 예보' 에 불만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오히려 예측이 정확한 날이 50%가 넘는다는 게 더 경이롭다.


여러 가지 데이터를 통해서,

훨씬 미래의 날씨까지 나름 비슷하게 예측하지 않는가?


맞을 때는 칭찬 안 하고, 피해를 볼 때만 욕한다..?


피해를 보았다는 부정적인 감정에 집중해,

기상청의 '판단 성공률' 에는 별 관심을 안 가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쯤 되면 기상청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의 변덕스러움은 100% 예측할 수 없다'

라고 보는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하늘은 '눈치 없었다.'


언뜻 보면 하늘의 1호 잘못과 비슷해 보이지만,


'비가 올 것인데도 평소와 똑같은 신호를 보낸 것' 과,

'비가 오지 않아야 했는데 비가 내린 것' 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양치기 소년은 늑대를 막을 힘이 없었지만,

비는 하늘이 직접 내리는 것이 아닌가.


하늘이 자기 맘대로 일을 벌인 탓에, 우리는

'기상청이 구름 많다고 하면 오히려 비가 내린다' 라는 잘못된 학습을 해버린다.


다시 말하지만, 예상치 못한 비의 원인은 '날씨의 변덕' 이다.


즉, 이 현상은 기상청과 전혀 관련 없음에도..


우리는 '기상청이 거짓말했다' 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하늘의 잘못 제 3호.

내가 잘못한 줄 알게 했다.


난 최선을 다했다.

평소 확실히 맞아떨어졌던 체크리스트를 다 검토했고,

실제로 당장 비가 안 왔기에 이건 정답이었다.


그럼에도 비겁하게 비를 뿌려 마치 '내가 제대로 확인 안 한 것' 처럼 만들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시스템에 악의가 없는 경우,

당한 사람이 방심했다고 질책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정말 '그 사람 잘못이 맞는지' 확인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객관적으로 아닐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분명 나처럼 최선을 다했고, 변수만 없다면 성공이 분명했을 텐데.

아무도 예상치 못한 변수 발생 때문에,

모든 변수를 다 고려해야 했다는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다.


이런 요구가 당연하다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주자.


"손이 안 닿는 곳이 가려워서 짜증이 난다면,

평소 효자손을 가지고 다니지 않은 당신 잘못이다."



어느새 맑은 하늘이 되었다.

아무 생각도 의도도 없는 자연에 대고 무슨 말을 해왔는지 조금 머쓱해진다.


하지만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주인 없는 시스템인 '환경' 속에서,

탓할 사람이 없어 자신이나 무고한 사람을 탓하고 있진 않았는지.


모두가 알다시피, 반성문에는 변명이 없어야 한다.

잘못이 합리화되어 흐려져선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규칙은 때론 불합리해 보인다.

누구에게나 피치 못할 사정은 있지 않은가.


그러니 반성문을 쓰라고 하기 전에,

진짜 '본인 잘못이 맞는지' 부터 확인해야 한다.


우리, 종이 낭비하지 말자.








{ 오늘의 UX }

"결과는 착각의 결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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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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