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차벨을 눌렀는데 소리가 안 난다.

반응의 부재가 가져오는 불안감.

by IDONTKNOWUX

그런데 불은 켜졌다.

손님은 묘하게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 왜 아무 소리도 안 나지?

- 제대로 안 눌린 거라면?

- 기사님이 누른 줄 모르는 거 아냐?


사람들로 북적여 꼼짝 못 하는 가운데,

다른 버튼은 누를 엄두도 안 난다.

곧 내려야 하는데..


수많은 내적 갈등 끝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저 내려요!!" 라고 외치려는 순간- 브레이크가 밟힌다.

천만다행으로, 하차벨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나 보다.


버스는 무사히 정류장에 멈춰 섰고, 손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버스에서 내린다.


여유롭게 걸어가던 손님은 문득 궁금해진다.


'난 대체 왜 불안했을까?'


하차벨이 눌렸는지는 특유의 붉은 불빛으로 판단하는 게 보통이다.

소리가 나든 말든 불이 켜졌으니 안심해야 마땅하지 않나?



회사에 도착하니 불이 꺼져있었다.

버스 손님이자 갓 입사한 막내였던 그는, 자연스레 도어록에 손을 댄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확인 버튼을 누른다.


지이잉-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손잡이를 당겨보니, 덜컹.


문이 잠겨있었다.


'처음부터 열려 있었단 말이야..?'

불이 꺼져 있으니 당연히 잠겨있을 줄 알았는데,

아마 전날 야근하신 분이 잊고 잠그지 않았던 모양이다.


머쓱해진 채 다시 비밀번호를 누르고, 어둑한 사무실로 들어선다.

불을 켜고, 자연스레 자리로 가서 앉는다.


그때, 파티션 너머로 머리카락이 보인다.

알고 보니 대리님이 출근을 하셨던 것이다!


"대리님 안녕하십니까!"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신다.

들어올 때 온갖 요란한 소리를 다 냈었건만..

불도 안 켜고 인사도 안 하시니, 누가 있는지 알 수 있을 리가.


결국 문이 열려있었던 것도 대리님이 계셨기 때문이었고,

그는 또 혼자만 바보가 된 기분을 느낀다.


아침부터 이어졌던 그의 언짢음이 조금 더 깊어진다.


'반응이 아예 없으니 자꾸 착각하게 되네..'


하지만 출근길 버스에서 느낀 그의 기분은, 이것만으론 설명되지 않았다.

하차벨은 적어도 불은 켜 주지 않았는가.



거래처에 메일을 보냈다.

어제 못다 한 일을 오전 중에 끝마치고, 확인 차 전화를 건다.


"메일 송부드렸습니다!"

"네에~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대답을 듣고 나니 그제야 안심이 된다.

편한 마음으로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와 보니, 그를 반기는 건..


<읽지않음>


'아. 그래. 그럴 수 있지.'

바로 확인해 본다고 하긴 했지만, 거래처 사람도 밥은 먹어야 할 것 아닌가.

메일을 보낸 시간이 점심 직전이었으니, 할 일을 하면서 회신을 기다려보기로 한다.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났다.


이 일은 간단한 업무가 아니다.

오늘 안에 끝내는 일이라도, 거래처가 퇴근 시간까지 지체하면 곤란하다.


거래처에서 회신이 오면 그가 마무리 짓는,

한마디로 '추가 시간' 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수신 확인 창으로 들어가 본 그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여전히 <읽지않음> 으로 되어있었던 것이다.


당혹감에 휩싸여 전화를 걸어보았다.


"혹시 메일 아직도 안 읽어보셨나요?!"

"예? 이제 막바지 단계라 곧 보내드릴 거예요."

"아, 정말요..? 오류였나.. 알겠습니다. 오해해서 죄송해요."


뚝-


전화를 끊자마자 검색창을 켠다.

[수신확인 안 되는 메일도 있나요]


거래처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컴퓨터에 기본 제공되는 메일 프로그램이나,

회사 전용 메일을 쓰는 곳에서는 가끔 수신 확인이 작동 안 한단다.


다급하게 걸었던 전화에 얼굴이 화끈해진 그는,

이제는 그리워져버린 고장 난 하차벨을 회상한다.


'하차벨이 소리를 냈다 해도, 불이 안 켜졌다면 더 불안했겠구나.'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그는 비로소 깨닫는다.


하차벨이 왜 소리도 내고 불도 켜주는지.

그리고 왜 그중 하나만 없어도 그토록 불안했는지.



대답도 하고, 행동으로도 보여주는 사람.

우리는 이런 사람을 신뢰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행동이겠지만,

두 반응 모두 공존할 때, 비로소 신뢰는 완성된다.


누군가가 우리로 인해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반응이 부족하진 않았는지 돌아보자.


그리 어렵지 않다.


- 부모님의 문자에 답장해 드리는 것

- 연인의 선물에 감동을 표현하는 것

- 친구의 푸념을 공감해 주는 것


이 모든 것이,

반응이다.








BONUS: 구독 버튼이 사라졌나..?

부끄럽지만, 내가 실제로 했던 비현실적인 의심이다.

좋아요가 열댓 개에서 정체되었을 때는 '글이 쌓이다 보면 생기겠지' 라고 가볍게 생각했으나..


좋아요가 스무 개, 서른 개가 쌓일 때까지도 구독자 수가 0인 것을 보고는 이런 생각들을 했다.


- 세상이 나에게 장난을 치나

- 신인 작가는 며칠 동안 구독이 불가능한가

- 구독을 하려면 돈이 드는 것일까


..아니면 내 글이 자격이 없는 것일까.


여기까지 생각이 닿았던 때가 바로 이전 글,

[기본 맛 붕어빵을 샀는데 슈크림이라면] 을 올리기 직전이었다.


의욕이 생기지 않아 평소보다 훨씬 늦은 시간에 글을 올리고 아무런 기대도 안 하던 찰나,

두 분의 구독자가 찾아와 주셨다.


태어나서 이렇게 놀라고 기뻤던 적이 있었던가.

점점 사그라들던 내 영혼이, 다시금 글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구독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말씀드리고 싶다.


반응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 오늘의 UX }

"합리적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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