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했다. 아무 계획도, 목적도 없이.
그저…그 일만 아니라면 뭐든지 괜찮을 것 같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콜센터만 아니면.
진심으로 막노동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땀 흘리는 건 괜찮았다. 욕을 듣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20대는
갑자기 텅 비어버렸다.
매일 오후에 일어났다. 새벽 늦게 잤다. 밤낮이 바뀐 삶은 생각보다 달콤했다.
아니, 정말 행복했다.
놀지 못했던 지난날들이 한처럼 밀려왔다. 나는 그걸 풀듯, 하루하루를 방탕하게 썼다.
그때 나는 자유로웠다. 가벼웠다. 스트레스가 없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속을 태우고 있었다.
지금 나는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그 자유가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알게 된다. 그 자유를 위해 누군가는 밤새 뒤척였겠지.
나를 걱정하며. 나를 믿으며. 또 실망하며.
미안해, 엄마. 진심으로.
하지만 그렇게 놀 수 있는 날도 영원하진 않았다.
현실은 생각보다 빠르게 나를 덮쳤다.
통장 잔고가 바닥을 보이고 내 마음도 덩달아 푹 꺼졌다.
그리고 어느 날, 나에게 다시
'일'이 필요해졌다.
이력서를 써야 했다. 그런데… 갈 곳이 없었다.
대학교도 중퇴. 스펙도 없음. 경력이라고 해봤자, 도망치듯 퇴사한 콜센터 한 줄.
그 이력서 한 장이 나를 설명하고 있었다.
현실은 내 사정을 안쓰럽게 봐주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곳으로,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콜센터로 돌아갔다.
이전과는 다른 회사였지만 하는 일은 똑같았다.
전화.
끊임없는 대화.
감정 노동.
예전보다는 실수가 줄어들었다. 콜센터에서의 경력 덕분에 나는 더 이상 작은 실수들을 반복하지 않았다.
같은 동기들조차 내가 경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모르는 건 자주 물어보기도 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참, 내가 이런 걸 알려줄 때가 오는구나."
우리가 만난 이 작은 변화가 어쩌면 내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나마 예전보다 조금 더 편한 분위기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여유 덕분에 나는 퇴근 후, 동료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 다음 날 아침 8시에 출근하는 일상 속에서도
하루의 보상을 술로 풀어내며 서로를 위로했다.
"내 고객이 더 진상이었어."
"아니, 내 고객이 더 심했어!"
우리는 그렇게 진상 고객 배틀을 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동안 내가 겪었던 고통과 스트레스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느꼈다.
동료들은 나와 같은 마음으로 같은 일을 겪고 있었다.
그들에게 공감을 얻고, 서로를 위로하는 과정에서 내가 회사를 계속 다닐 이유가 생겼다. 누군가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이 그때는 너무 큰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