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 캐피탈]EP06-가면의 무게

by 다소


대여한 명품 수트를 반납하러 간 렌탈샵에서, 직원은 무심한 눈으로 옷의 상태를 꼼꼼히 확인했다. 민준은 마치 자신의 몸에 흠집이 있는지 검사받는 기분이었다. 얼룩 하나 없이 완벽하다는 판정을 받고 보증금 일부를 돌려받는 순간, 그는 하룻밤의 왕자에서 다시 누추한 현실로 돌아왔다.

반지하 방의 현관문을 열자, 곰팡이와 눅눅한 먼지가 뒤섞인 공기가 그의 폐를 파고들었다. 아직 그의 몸에 희미하게 남아있던 값비싼 향수와 와인의 잔향이 역겨운 현실의 악취와 뒤섞여 헛구역질이 났다. 수트 렌탈비와 카드값을 계산하던 그는 모니터 앞에서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하룻밤의 신기루를 위해 그는 다시 한 달을 꼬박 굶거나, 백 사장에게 또 한 번 머리를 조아려야 할 처지였다. 모든 것이 허무했다. 바로 그때, 그의 낡은 스마트폰이 책상 위에서 요란하게 울렸다. 발신자는 소희였다.

그는 심호흡을 한 뒤, 다시 어젯밤의 페르소나를 목소리에 덧씌웠다.


"네, 소희 씨. 좋은 아침입니다."

"민준 씨! 어제 진짜 최고였어요! 유 대표님이 민준 씨 ‘젖은 흙내음’ 표현에 완전 반했다니까요. 다른 대표님들도 다들 민준 씨 얘기만 해요."


그녀의 들뜬 목소리에 담긴 순수한 믿음이 비수처럼 날아와 그의 폐부를 찔렀다. 그는 배달 음식 쓰레기가 담긴 비닐봉지를 발로 밀어내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아, 그리고 혹시… 정말 조심스럽게 여쭤볼 게 있는데요." 소희의 목소리가 살짝 낮아졌다.

"제가 가진 여윳돈 일억원 정도가 있는데… 이걸 그냥 은행에 넣어두기엔 너무 아까워서요. 민준 씨 같은 전문가라면 어디에 투자하실 것 같아요?"


일억 원. 그에게는 목숨과도 같은 돈을, 그녀는 너무나 쉽게 그의 손에 맡기려 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나는 사기꾼입니다. 당신이 아는 김민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목구멍에서는 마른 침 넘어가는 소리만 났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 가장 이성적이고 믿음직한 목소리로 답했다.


"소희 씨, 그런 중요한 결정은 신중해야 해요. 지금 시장은 변동성이 커서, 제가 섣불리 종목을 추천하긴 어렵습니다. 남의 말만 듣고 투자하는 것만큼 위험한 건 없으니까요. 하지만… 좋은 기회가 보이면 그때 제가 먼저 알려드릴게요."


거절이었지만, 동시에 더 큰 신뢰와 가능성을 심어주는 교묘한 답변이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백 사장에게서 온 짧은 문자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자… 늦으면 알지?]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는 이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만 했다. 파티에서 얻은 깨달음, 즉 ‘사람들은 진실이 아닌 권위를 믿는다’는 사실을 이용해야 했다.

그는 곧장 익명으로 활동하던 소규모 주식 커뮤니티, 온갖 욕망과 루머가 들끓는 '잡주 갤러리'에 접속했다. 그동안은 해외 기사나 리포트를 간단히 번역해 올리는 정도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는 자신이 뱉을 말에 무게를 싣기 위한 장치를 구상했다. 그는 먼저 프로필 사진을 로고가 없는 검은색으로 바꾸고, 상태 메시지를 이렇게 적었다. ‘진실은 소수의 눈에만 보인다.’ 그리고 최근 모아두었던 자료들을 바탕으로, 가장 그럴듯하면서도 가장 대담한 예측을 담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것은 분석이 아닌, 하나의 시나리오이자 예언이어야 했다.

그는 여러 개의 인터넷 창을 띄웠다. 한쪽에는 월 300달러짜리 해외 투자 리포트의 딱딱한 그래프가, 다른 한쪽에는 자극적인 제목의 IT 블로그가, 또 다른 쪽에는 유명 철학가들의 명언 모음집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이질적인 정보의 조각들을 짜깁기하며, 마른 데이터를 신화적인 서사로 둔갑시키는 작업에 몰두했다.


'질화갈륨(GaN)'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발견한 순간, 그는 이것을 예언의 핵심 제물로 삼기로 했다.

그는 자신이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정말로 시장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거인이 된 것처럼 키보드를 두드렸다. 최대한 모호하지만, 동시에 확신에 찬 문장들을 골랐다. 마치 성경의 구절처럼, 어떻게든 해석될 여지가 있는 문장들로.


[제목: 폭풍 전야의 속삭임]

'모두가 반도체의 겨울을 말할 때, 나는 봄을 준비하는 씨앗을 본다. 거인이 잠에서 깨어난다. 기존의 실리콘은 한계에 봉착했으며, 새로운 성배(聖杯)가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것이다. 기억하라. 폭풍의 눈은 언제나 가장 작고 조용한 곳에서 시작된다. 그곳에서 미래가 잉태된다. 탐욕스러운 자들은 보지 못하고, 오직 순례자만이 성지를 발견할 것이다.'


'엔터' 키를 누르는 순간,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그는 방금, 수많은 사람들의 돈이 걸린 주사위를 던져버렸다. 만약 그의 예언이 틀린다면, 그는 온라인상에서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모든 것을 잃게 될 터였다.

반응은 즉각적이었고, 예상대로 냉소적이었다.


'이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야? 중2병 걸렸나?' (ID: 선동ㄴㄴ)

'그래서 종목이 뭔데? 말만 번지르르하네.' (ID: 단타인생)

'요즘 이런 식으로 약 파는 놈들 많더라. 조심해라.'


비아냥거리는 댓글들 사이로, 마침내 의외의 한 줄의 댓글이 달렸다.


'표현이 익숙해서...혹시 어제 VVIP 와인 시음회에 참석하신 대표님이실까요?'


그 댓글을 시작으로 갤러리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소희와 함께 참석한 모임에 있던 누군가가 이 커뮤니티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헐, 그분 맞아? 한남동 모임 씹어드셨다는 그분?'

'ㄴ 헐, 님 그걸 어떻게 아심? 진짜였네.'

'나는 저런 글이 더 무섭더라. 진짜 고수들은 종목명 안 뿌림. 알아서 찾아 먹으라는 거지.'


민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신은 사소한 질문에 일일이 답하지 않는 법이다. 그의 침묵은 오히려 신비감을 증폭시켰다. 사람들은 그의 글을 '성서'처럼 분석하기 시작했다. '거인이 깨어난다'는 구절과 '작고 조용한 곳'이라는 단서를 가지고, 조건에 맞는 코스닥의 소형 반도체 소재주들을 스스로 찾아 나섰다. 그들은 스스로 답을 찾고, 스스로 믿음을 만들어갔다.


민준은 노트북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그저 돌멩이 하나를 던졌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 파문을 보고 쓰나미가 올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의 글을 추종하는 이들은 냉소적인 기존 유저들과 싸우며 스스로를 '불개미 군단'이라 칭하기 시작했다. 그는 디지털 세상의 의도치 않은 교주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두운 모니터 화면에 비친 것은 초라한 반지하 방의 한 청년이었지만, 그는 화면 속에서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린 예언가의 그림자를 보았다. 이제 남은 것은, 그의 예언이 정말로 실현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뿐이었다. 그는 난생 처음으로, 신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7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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