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 캐피탈]EP07-예언가의 탄생

by 다소


민준의 밤은 요즘 월 300달러짜리 해외 투자 리포트와 함께였다. 그는 희미한 노트북 불빛 아래, 눈이 시릴 정도로 빽빽한 영어로 된 '차세대 비메모리 반도체 소재 시장 분석' 보고서를 해독하고 있었다. 그의 역할은 창조가 아닌 번역과 각색이었다. 그는 복잡한 데이터와 전문 용어를 걷어내고, 대신 그럴듯하고 선동적인 문장들로 내용을 재구성했다. 그의 글을 읽는 '불개미 군단'의 사람들은 대부분 주식 시장의 복잡한 기술적 분석보다는, 신화와 같은 서사를 갈망한다는 사실을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거인이 잠에서 깨어난다. 기존의 실리콘은 한계에 봉착했으며, 새로운 소재가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것이다. 기억하라. 폭풍의 눈은 언제나 가장 작고 조용한 곳에서 시작된다.'


글을 올린 뒤, 그는 며칠간 지옥을 경험했다. 낮에는 정신 없이 해외 리포트를 찾고, 밤에는 반지하 방에서 수십 개의 주식 전문 사이트와 뉴스를 새로고침하며 자신이 뱉어낸 말에 부합하는 기적이 일어나기만을 기도했다. 커뮤니티에는 그의 글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미묘한 의심이 싹트고 있었다. 그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기적은 그가 거의 포기할 무렵인 사흘 뒤에 일어났다.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이름조차 생소한 소형 반도체 소재 기업 '나노테크 솔루션'이 해외 대기업과 질화갈륨(GaN) 신소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는 단독 뉴스 속보가 떴다. 그날 해당 주식은 30% 가격제한폭까지 치솟았고, 다음 날도 폭등을 이어갔다. '불개미 군단'이 상주하고 있는 커뮤니티는 서버가 마비될 정도로 들끓었다.


'성지순례 왔습니다. Buffett 님이 말씀하신 '작고 조용한 곳'이 여기였군요.'

''거인이 깨어난다'는 게 이 계약을 의미한 거였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물론 회의론자도 있었다.


'솔직히 이건 운 좋은 뽀록 아닌가요? 너무 맹신하지 맙시다'라는 댓글이 달린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수십 개의 대댓글이 그를 공격했다.


ㄴ '무식하면 가만히나 있어라. Buffett 님의 통찰력을 네깟 놈이 뭘 안다고.'

ㄴ '배 아파서 그러는 거 다 보인다. ㅉㅉ'

ㄴ '이런 기회를 보고도 못 잡는 너 같은 놈들이 평생 개미로 사는 거다. 난 어제 풀매수했다.'


회의론자는 순식간에 조리돌림을 당하고 글을 삭제했다. 광신도들은 스스로 이단자를 색출하며 믿음을 더욱 공고히 했다. 민준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신도들이 스스로 교리를 만들고 신전을 지키고 있었다.

그의 인스타그램 DM은 간절한 기도들로 가득 찼다. 그는 처음에는 정중히 거절한다는 내용의 공지를 올렸다.


"저는 투자 자문업자가 아닙니다. 개인의 돈을 직접 운용하는 것은 불법의 소지가 있습니다."

이 거절은 오히려 그의 신뢰도를 더욱 높이는 효과를 낳았다. 결국 그는 '선택된 소수'를 위한 다음 단계의 거짓말을 설계했다. 그는 먼저 한소희를 강남의 한 고급 카페로 불러냈다.


"소희 씨, 부탁할 게 하나 있는데… 이건 정말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해야 해요."

그는 최대한 진지하고 신중한 목소리로 운을 띄웠다.


"내가 개인적으로 정말 좋게 보는 스타트업이 생겼어. 초기 단계라, 공식적인 펀드 자금으로 들어갈 수는 없고 엔젤 투자 개념으로 접근해야 해. 근데 이게 우리 회사 포트폴리오랑 미묘하게 이해관계가 겹쳐서, 내 이름으로 직접 투자를 못 해. 우리 회사 컴플라이언스(준법감시)팀이 워낙 엄격해서 말이야. 업계에서는 이런 걸 이해상충이라고 하거든. 그래서 말인데, 소희 씨 이름으로 증권 계좌 하나만 만들어서 잠시 빌려줄 수 있을까? 물론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는 거고, 그냥 감사 대비용으로 절차를 깨끗하게 하려는 것뿐이야."


'컴플라이언스', '엔젤 투자', '이해상충' 같은 전문 용어들은 소희의 의심을 마비시켰다. 그녀는 자신이 그의 비밀스럽고 중요한 세계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에 오히려 들떴다. 그녀는 기꺼이 자신의 명의를 빌려주었다.

민준은 그 대포통장 계좌를 이용해 커뮤니티에 비밀스러운 공지를 올렸다.


'뜻을 함께하는 소수의 초기 멤버들과 함께 비공개 투자 클럽을 결성하고자 합니다. 큰돈은 사양합니다.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는 분들만 함께하겠습니다.'

그날 밤, 그의 스마트폰 알림이 미친 듯이 울렸다. '[OO은행] OOO님께서 5,000,000원을 입금하셨습니다.' 첫 입금이었다.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잠시 후, 또 알림이 울렸다. 1천만 원, 700만 원… 며칠 만에 그의 통장에는 30억 원에 가까운 돈이 쌓였다.


그 돈으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성전'을 짓는 것이었다. 그는 강남 테헤란로의 최고급 공유 오피스 '워크플렉스'를 찾아갔다. 트렌디한 인테리어와 자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을 두드리는 진짜 스타트업 대표들 사이에서, 그는 자신이 이물질처럼 느껴졌다. 그는 회의실을 제공하는 공유 오피스 계약을 했고,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하지만 위험은 가장 먼저 성공의 증거를 요구했다.

초기 투자자 중, 그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였던 '아빠는강하다'라는 아이디의 회원이 정중한 메시지를 보냈다.


'Buffett 님,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아들 유학 첫 학기 등록금을 보내야 해서, 투자했던 원금 1천만 원과 수익금을 이제는 좀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Buffett 님 덕분에 정말 큰 고비를 넘깁니다. 언제쯤 가능할까요?'


민준은 메시지를 읽고 화장실로 달려가 구역질을 했다. 수익금? 그는 그 돈을 투자한 적이 없었다. 돈의 일부는 명품 수트 렌탈비와 백 사장의 이자를 갚는 데 썼고, 나머지는 통장에 그대로 있었다. 그는 방 안을 미친 듯이 서성였다. 이 돈을 들고 잠적할까? 아니, 백 사장이 그를 찾아내 뼈까지 발라 먹을 것이다. 모든 것을 자백할까? 눈물 흘리는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결국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위험한 방법을 선택했다.


그는 투자 받은 다른 사람의 돈에서 1,500만 원을 꺼내, '아빠는강하다'에게 보내주었다. 원금 1천만 원에, 그가 막연하게 약속했던 '50%의 수익금'까지 얹어서. 스마트폰으로 이체 버튼을 누르는 그의 손가락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클릭 소리와 함께, 그는 사기꾼에서 폰지 사기범이 되었다.


잠시 후, '불개미 군단' 커뮤니티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수익 인증] 말로만 듣던 Buffett 님의 실력, 제가 직접 경험했습니다. 사진 보세요. 한 달 만에 원금 1천만 원이 1,500만 원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이분은 진짜입니다! 모두 경배하십시오!!'


성공적인 출금 후기는 그 어떤 예언보다 강력한 믿음의 증거가 되었다. 그 게시글을 본 수백 명의 새로운 투자자들이 새롭게 돈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그날 밤, 민준은 자신의 반지하 방에서 노트북을 열고 새로운 엑셀 파일을 만들었다. 파일 이름은 '멤버 관리'. 그는 A열에 '입금자명', B열에 '입금액', C열에 '입금 날짜'를 적어 넣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우발적인 사기꾼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막 돌아가기 시작한 거대한 사기극의 냉정한 관리자이자, 첫 번째 노예가 되었다.


[8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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