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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 이력서#01] 8살 커닝, 20살 자퇴

공부를 안 했고... 또 못했습니다.

by 다소

저는 공부를… 진심으로 싫어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어머니 손에 이끌려 주말마다 영어수업을 들어야 했습니다. 선생님은 큰아버지. 전직 영어 강사셨고, 수업은 사촌들과 단체로 받았죠.

수업마다 영어 단어 시험이 있었고, 틀리면? 손바닥에 한 대씩. 그것도 저보다 어린 사촌들 앞에서요. 단어는 외우기 싫고, 손바닥은 더더욱 내주기 싫었던 어린 저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커닝."


8살 인생 최초의 커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연필로 오늘 시험 볼 단어들을 공책에 진하게 써놓고, 지우개로 깨끗하게 지워버립니다.

흔적만 겨우 남은 상태. 그리고 시험 시간. 저는 그 희미한 자국을 따라 단어를 다시 쓰는 방식으로 위기를 넘겼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큰아버지는 다 알고 계셨을지도요. 모른 척해주신 걸지도 모르죠.



아무튼, 저는 그렇게 일찍부터 공부 대신 ‘도망’을 택하는 DNA를 품고 살았습니다. 물론 이런 태도는 고등학교 내내 이어졌고, 당연히 수능은 망했습니다.

그렇다고 무슨 특별한 끼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운동, 예술, 리더십…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냥 그런 애’였죠.

“어느 반에나 꼭 하나쯤 있는 어중이떠중이.”


미래와 진로 고민은 드라마 주인공이나 하는 줄 알았습니다.


결국 수능 성적표에 맞춰 아무 고민 없이 선택한 전공은… 토목. 그리고 한 전문대에 입학하게 됩니다.

3월, 벚꽃이 흩날리는 캠퍼스. 첫 수업.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앉은 강의실에서 교수님은 말합니다.


ㅣ “오늘은 역학 개념과 응력, 변형률부터 볼게요.”


…네? 방금 뭐라 하셨죠?


수학과 담쌓고 살아온 제가 ‘역학’이니 ‘공학’이니 하는 단어들을 알아들을 리 없습니다.

3시간 동안 외계어 폭격을 맞은 저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멍해졌습니다.

“이건 뭔가 크게 잘못됐다…”


전공 수업은 지옥 같았지만, 수업 밖의 대학생활은 처음 느껴보는 자유 그 자체였습니다.

학교 앞 술집에서 선배들과 처음으로 소맥을 마시며 어른 흉내도 내보고, 캠퍼스 안에서 짝사랑도 해보고, 동기들과 몰려다니며 ‘대학생’ 타이틀을 한껏 누려봤죠. 현실은 애써 외면한 채.


그렇게 20살의 저는, 본질적으로 19살 때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어중이떠중이"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누군가가 제 인생을 보다 못해 신호를 준 걸까요?

어느 날, 늘 그랬듯 신나게 술 마시고 집에 가는 길. 밤늦은 지하철 안, 주변엔 술에 취한 사람들. 그 가운데 앉아있던 저는, 갑자기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 진짜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되는 걸까?”


그 질문이 제 머리를 때렸습니다. 인생 최초의 자각이었죠.

그날 이후,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어중이떠중이 인생에 내려진 첫 번째 ‘주도적인’ 결정.


스무 살의 봄, 저는 자퇴를 했습니다.



[2화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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