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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 이력서#03] 매일 5시간, 지방대 여행길

이 짓을 4년을 해야 한다고요?

by 다소

신입사원 채용에도 경력이 있는 신입을 찾는 시대, 그런 신입사원을 요즘은 '중고신입'이라고 부릅니다.


전문대학을 자퇴한 후, 저의 두 번째 대학생활이 시작됐습니다.
충청도에 있는 한 지방대학교에서 '중고신입' 1학년 생활을 시작했죠.


새벽 5시.
따르르르릉 울리는 알람 소리에 억지로 눈을 떴고, 밖은 아직 어두웠습니다.

오전 9시, 1교시 수업에 맞추려면 이 시간부터 준비를 해야 했죠.

경기도 집에서 충청도 학교까지 도보와 버스, 지하철을 갈아타고 편도 2시간 30분.
하루 왕복 5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한 달쯤 지나 어머니께 자취를 하고 싶다고 슬쩍 말을 꺼내봤습니다. 하지만 단칼에 거절당했죠.


"엄마가 너를 아는데, 너는 혼자 살게 하면, 더 게을러질 게 뻔해."


재수까지 실패한 저의 모습을 그대로 보신 부모님께 더 이상 조를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묵묵히 5시간 통학을 이어갔죠.

등교 첫날, 너무 길었던 통학시간 내내 보고 있던 핸드폰 배터리가 지하철 안에서 방전되어 당황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충청도 지방대 신입생이라는 현실은 통학보다 더 괴로웠습니다.
한 살 더 먹고 시작한 대학생활. 그것도 소위 '인서울'이 아닌 '지방대'였죠.

입학 첫날,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게으르면 나는 사람도 아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시작했고, 자의 반 타의 반 저의 두 번째 대학생활은 첫 번째 전문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달랐습니다.

그때는 친구도 자연스럽게 금방 사귀었고, 선배들과 어울려 술자리에 참석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재수를 하고 한 살 더 많은 신입생이 된 저는 새로 만나는 동기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동기들이 모여 동아리 활동이나 엠티 이야기를 할 때도 저는 듣고 지나쳤습니다.
술자리에 초대받아도 통학을 핑계로 빠졌습니다.

"왕복 5시간 거리"라고 말하면 아무도 더 권하지 않았죠.

처음에는 통학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통학만이 이유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자연스럽게 친구를 사귀던 예전과 달리 이번에는 스스로 벽을 쌓고 있었던 거죠.

재수했다는 사실, 지방대에 왔다는 현실이 저를 자발적으로 고립시키고 있었습니다.


강의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갔고 공강 시간에는 도서관에 틀어박혔습니다.

점심시간에는 혼자 편의점 김밥을 먹고 캠퍼스의 벚꽃길을 걷는 대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죠.

그래도 작은 성과는 있었습니다.




1학기 말, 생애 처음으로 '성적 장학금'을 받았죠.


스물한 살. 공부를 통해 처음으로 맛본 작은 성취였습니다.

지방대학 특성상 비슷한 성적대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이었죠. 2학기에는 학점을 더 끌어올렸고, 연속으로 성적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그동안 흐릿했던 저에 대한 신뢰가 조금씩 회복되는 모습이 느껴졌죠.

그리고 저 또한, 늦게나마 공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성취감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런 성취감과는 별개로, 마음 한편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이렇게 4년 동안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걸까?"


학교 친구도, 선배도, 친밀한 교수님도 없던 저에게는 이런 고민을 나눌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그렇게 막연한 의문을 품은 채, 앞으로 나아갈 진로나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이 그저 학과 공부에만 몰입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답을 찾지 못한 채 저는 1학년을 마치고 군입대를 하게 됩니다.


[4화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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