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입학해 버린 대학은 바꿀 수 없지만
군 생활을 하며 느낀 점 중 하나는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진로에 대한 명확한 고민 없이 학과 공부와 학점 관리에만 집중하던 저는, 군 입대를 통해 지금까지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부산 클럽에서 디제이를 하던 후임,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던 선임, 카센터에서 정비사로 일하다 온 동기까지—각기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삶의 방식은 제게 큰 충격이자 신선한 자극이었죠.
그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와 함께 2년간 생활한 동기로, 국내 최상위권 대학에 재학 중이던 친구였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친구와의 만남이 제 군 생활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 대부분을 함께 보내며 그 친구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목표가 뚜렷했고, 이를 위해 얼마나 체계적으로 노력해 왔는지를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줬습니다. 대입 준비과정부터 입학 후의 대외활동, 동아리, 생활습관, 군 생활 내내 꾸준히 읽던 책까지—친구가 쌓아온 것들은 단지 학점만 바라보며 목표 없이 보낸 저의 대학생활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초소에서 야간 근무를 함께 하던 중 부산 출신이었던 그 동기가 제게 조용히 이런 말을 던졌습니다.
ㅣ “니는 하고 싶은 게 없나?”
질문은 짧았지만, 그 한 마디가 제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렸습니다.
그 순간 처음으로,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지금처럼 무작정 학과 공부만 한다고 해서 그게 과연 정답인지를 고민하게 됐죠. 그 질문을 계기로 저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제 삶의 방향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두 번째로 입학한 대학의 전공은 사회복지였습니다. 사실 이 전공을 선택할 때도 사회복지를 ‘꼭 배워야겠다’는 사명감보다는 그저 ‘왠지 나랑 잘 맞을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아마 진로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기회를 갖지 못한 많은 학생들이 그렇듯이 말이죠.
하지만 군 복무 기간 동안, 저는 저의 전공과 진로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고, 예전에 했던 봉사활동을 떠올리며 ‘청소년 복지’라는 보다 구체적인 진로 목표를 생각하게 됩니다. 처음으로 명확한 목표가 생긴 순간이었습니다.
목표가 생기니 자연스럽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뒤따랐습니다. 저는 막연하거나 '스펙'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전공 분야에서 실제로 통할 수 있는 ‘차별화된 경험’을 쌓는 데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저는 원래 학교에 친한 동기들이 거의 없었고, 과 활동에도 적극적이지 않았던 터라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해 조언을 구한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용기를 냈습니다. 어렵게 연락한 몇몇 동기들에게 전공 분야에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관련 정보에 밝은 교수님은 누구인지, 좋은 기관에 취업한 선배들은 어떤 경험을 쌓았는지 등을 하나하나 물어보며 조심스레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죠.
이렇게 알게 된 정보들을 바탕으로 말년 휴가 기간 동안 대외활동을 위한 면접을 보러 다니며, 생애 첫 대외활동도 시작하게 됩니다.
전역 후, 매주 주말마다 경기도 집에서 서울을 오가며 1년간 복지 기관에서 보조교사로 활동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직원분들과 함께 일하며, 학교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었던 실무의 현실과 전문성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 공부만 했다면 절대 경험할 수 없던 귀중한 시간이었죠.
복학 후의 학교생활은 1학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바빠졌습니다. 1학년 동안 부모님께 성실하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드린 덕분에 자취를 허락받을 수 있었고, 매일 5시간 가까이 걸렸던 통학 시간을 온전히 제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죠.
저는 그 시간을 활용해 학점 관리뿐만 아니라 동아리, 대학 봉사단, 주말 보조교사, 공모전, 아르바이트까지, 참여 가능한 모든 활동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였습니다. 학교에 친구도 거의 없던 제가 직접 공모전 팀원을 모집해 전공 분야 관련 공모전에 여러 차례 참여했고, 수상도 여러 번 이뤄냈습니다.
또 제가 다니던 지방대학교 근처의 복지 시설과 연계해, 매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당시 제가 한창 빠져있던 ‘클라이밍’을 주제로 체험 활동을 기획하고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제 취미를 전공과 연결해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 보고자 했던 시도였죠. 이처럼 바쁘게 지냈던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약점을 극복하려면, 지금까지 아깝게 흘려보낸 저의 20년을 극복하려면,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갔고, 어느덧 4학년 2학기. 본격적인 취업 준비의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처음에는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공공기관의 정규직 취업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규모가 크고 처우가 괜찮은 공공기관의 정규직 자리는 갓 졸업한 무경력자가 뚫기엔 너무 높은 벽이었습니다.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계속 정규직만 바라보며 지원할 것인가, 아니면 계약직으로 먼저 경험을 쌓고 정규직 전환의 기회를 노릴 것인가.
결국 저는 후자를 선택하게 됩니다. ‘계약직’이라는 타이틀이 처음엔 부끄럽게 느껴졌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더 빠르고 효율적인 전략이라 판단했습니다. 부모님은 계약직이라는 점을 우려하셨지만, 저는 장기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계속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정규직으로 입사하고 싶던 공공기관의 계약직으로 합격하게 됩니다. 비록 정규직은 아니었지만, 분명한 목표를 품고 시작한 저의 첫 회사생활이었습니다.
[5화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