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환 기자는 거미줄을 치는 거미처럼 움직였다.
그는 박성철 팀장과의 첫 통화 이후, 이틀 뒤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훨씬 더 부드럽고 개인적인 어조였다.
"팀장님, 최 기자입니다. 바쁘신데 자꾸 죄송합니다. 기사를 쓰다 보니, 김민준 대표의 인간적인 면모가 더 궁금해져서요. 팀장님께서 워낙 후배를 잘 챙기시는 분 같아 보입니다. 요즘도 가끔 만나시나 봐요?"
완전히 경계심을 푼 박성철은 최기환을 자기편이라고 착각했다. 그는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싶어 안달이 난 나머지, 결정적인 정보를 흘리고 말았다.
"아, 그럼요! 안 그래도 이번 주 금요일에 청담동에서 다 같이 보기로 했습니다. 그 녀석이 아주 비싼 데서 한턱 쏜다고 해서요. 옛날 동료들도 다 모일 겁니다."
최기환은 수화기 너머로 미소를 감추며 날짜와 장소를 되물어 확인했다. 사냥의 무대와 시간이 확정되었다.
금요일 저녁, 김민준은 자신이 초대한 지옥으로 걸어 들어갔다.
박성철 팀장이 예약한 장소는 청담동의 한 고급 한정식집의 가장 비싼 별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몇 달 전 그가 주차 요원으로 오해받았던 바로 그 레스토랑의 건너편이었다. 그는 이제 손님이 되어 돌아왔지만, 마음은 그때보다 더 비참했다. 그는 투자금으로 새로 산 파텍 필립 시계를 손목에 차고, 몸에 완벽하게 맞는 제냐 수트를 입고 있었다. 그의 외모는 완벽한 성공 그 자체였지만, 그의 미소는 방금 만든 밀랍 인형처럼 어색하고 차가웠다.
방 안에는 이미 박성철 팀장과 옛 IT 기획팀 동료 대여섯 명이 와 있었다. 그들은 민준을 보자마자 과장된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들의 눈빛에는 순수한 호기심과 함께, 선명한 질투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 식사가 시작되자, 박성철이 술잔을 채우며 의기양양하게 입을 열었다. 그는 이 자리가 온전히 자신 덕분에 성사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크으, 우리 민준 씨! 이 양반이 그때는 말이야, 꼼꼼함은 조금 부족해도, 시키는 건 군말 없이 참 잘했어. 묵묵하게 말이야. 요즘 젊은 친구들 같지 않았지." 그의 말은 칭찬의 형식을 띤 미묘한 깎아내리기였다.
'창의성이나 주도성은 없었지만, 시키는 대로만 하던 수동적인 부하 직원'. 민준과 옛 동료들은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정확히 이해했다. 다른 동료들의 질문은 더욱 순수해서 잔인했다. 한 여자 동료가 웃으며 물었다.
"민준 씨, 진짜 대단하다. 우리 같은 평범한 월급쟁이는 상상도 못 할 세계인데… 나중에 우리한테만 살짝 힌트라도 줄 수 있는 거 아니야? 하하. 다들 부자 되고 싶어 하잖아."
그것은 그의 성공을 인정하면서도, 그 비결을 공유하라는 압박이었다.
민준은 등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감추며, 수십 번 연습한 모범 답안을 내놓았다. 그는 술잔을 우아하게 돌리며, 마치 고고한 철학자처럼 말했다.
"선배님, 저는 시장이라는 거대한 전쟁터에서 수없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거쳐, 저만의 길을 찾았을 뿐입니다."
그의 대답은 너무나 일상적이지 않아서, 오히려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비싼 음식을 입에 넣을 뿐이었다. 그리나, 술이 몇 잔 돌자 억눌려 있던 분위기가 점차 풀리고 사람들의 필터 없는 속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민준과 입사 동기였던 한 동료가 술기운을 빌려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취기와 함께 노골적인 질투가 섞여 있었다.
"야, 김민준. 솔직히 말해봐. 너 저번에 뉴스 나온 거 보니까 뭐… 시냅스? 그런 어려운 말 쓰던데. 우리끼리니까 하는 말인데, 너 사실 로또 맞았지? 아니면 어디서 뭐 코인 같은 거 대박 터뜨렸거나. 우리한테만 살짝 알려주라. '시장에서 독학'했다는 건 솔직히 좀… 우리가 알던 너랑 너무 다르잖아."
순간, 방 안의 모든 대화가 멎었다. 모두가 민준의 입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것은 그의 철학적인 답변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는, 가장 본질적이고 직설적인 질문이었다. 그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바로 그때였다.
우우웅-
그의 주머니에서 묵직한 진동이 울렸다. 그는 마치 구세주를 만난 사람처럼, 최대한 침착하게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액정에는 사무실의 김비서 전화번호가 떠있었다. 민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김비서에게 사소한 내용의 전화 보고를 요청 해놨던 것이다.
그리고 민준은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모두에게 양해를 구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전화를 받았다. 그의 입에서는 몇 개의 영어 단어가 섞인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잠깐만. 지금 IR 자료 숫자 안 맞는다는 게 무슨 말이야? 아니, 밸류에이션은 그대로 가야지. 어쩔 수 없어, 내가 지금 바로 사무실로 들어갈게. 대기하고 있어."
그는 전화를 끊고, 극도의 아쉬움과 위엄이 뒤섞인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말 죄송합니다, 팀장님, 선배님들. 샌프란시스코 쪽 투자 건에 긴급한 문제가 생겨서, 지금 바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식사 비용은 제가 모두 계산해두겠습니다. 조만간 다시 제대로 모시겠습니다."
그는 허리를 굽혀 사과하고, 방을 빠져나왔다. 그의 극적인 퇴장 뒤로, 동료들의 경외와 감탄이 뒤섞인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는 사무실로 돌아가지 않았다.
주차장 한 구석에 있는 차량으로 돌아온 민준은 차 안에서 한참동안 눈을 감고 기다리며 미친 듯 뛰던 그의 심장 박동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방금 전까지 전 직장 동료들 앞에서 보여준 잘나가던 CEO의 가면은 벗겨지고, 차 안에는 땀에 젖어 창백하게 질린 얼굴의 김민준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영혼은 너덜너덜해졌다.
한참 뒤, 그가 탄 차량이 부드럽게 도로로 합류하는 순간 식당 건너편 어두운 골목에 주차되어 있던 평범한 세단 한 대가 조용히 뒤따라붙었다.
차 안에는 최기환 기자와 그의 탐사보도팀 후배가 앉아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그들은 김민준이 레스토랑에 들어가고, 극적으로 빠져나오는 모든 과정을 촬영했다.
최기환은 방금 찍은 사진들을 확인했다. 그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청담동에서 수백만 원짜리 저녁을 살 돈은 있는데, 신문사 인터뷰에 응할 시간은 없다?"
그는 후배 기자에게 말했다.
"내일 아침 일찍, 저 사람들 프로필 전부 파악해서, 가장 말이 많아 보이는 사람부터 순서대로 접촉해. 우린 지금 김민준의 '신화'가 아니라, 그의 '일상'이 필요해. 그가 점심으로 뭘 먹었고, 동료들과 무슨 농담을 했는지. 그런 사소한 것들 전부."
최기환의 차는 민준의 차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조용히 뒤따르고 있었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그에게 가장 치명적인 위협이 바로 자신의 등 뒤에서 조용히 따라붙고 있다는 것을.
[18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