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존재

삐뚤빼뚤한 너와 나를 사랑하는 것

by 진서


<이 세상에는 없지만 만들고 싶은 것이 있나요?>


아픈 마음을 깨끗이 낫게 해주는 약




초등학교에서 활동지를 가져왔다. 무수히 그린 그림들과 종이접기 한 것들이 많아서 대충 보고 버리는데 내 눈을 멈추게 종이 한 장이 있었다. 삐뚤빼뚤한 글씨. 지웠다 썼다가 꾹꾹 눌러쓴. 그리고 그 옆에는 많이 봤던 알약그림.


매일 밤 취침 전, 부엌에 숨겨놨던 우울증 약을 몰래 꺼내서 먹었다. 그때마다 아이는 어김없이 나타나 뭘 먹는 건지 묻곤 했다. 비타민이라고 했었다. 그 정도면 충분한 답일 거라고 아이의 마음을 짐작했다.


아이가 상상한 약. 엄마를 위한 약일까. 자신을 위한 약일까. 알 수 없었고 묻고 싶지 않았다. 내 상상에 묻어두기로 했다. 아니, 그 어떤 대답도, 상상 근처도 가고 싶지 않았다. 그게 혹시 나를 위한 약이 아니길 바랐다. 아픈 마음을 깨끗이 낫게 해주는 약. 그런 약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 너도 나도 빨리 낫자. 한 번에. 한알로.


입학 담당 의사 선생님과 놀이 치료 선생님께 놀이치료 종결하는 시기에 대해 종종 여쭤봤다. 이 시기는 좀 지나고 생각해 보자고 하셨다. 그렇지만 그 시기가 지나도 놀이치료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3월이 되어서 또다시 물었다. 놀이치료를 시작한 지는 이미 2년이 다 되어가는 중이었다. 입학을 하고 한두 달 정도 보는 게 더 좋다고 했다. 아이는 그동안 많이 좋아졌다. 유치원 졸업식에서 어떤 상은 아이 몇 명을 대표해서 받기도 했고 발레학원에 다니며 발표회도 꽤 잘했다. 그리고 정말 다행히도 초등학교 1학년에 가장 편하게 생각했던 친구 둘과도 함께 같은 반으로 배정을 받았다. 입학식 첫날에도 짝꿍과 벌써 친해졌다며 즐거워하며 하교하기도 했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께 말을 하지 못했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도움을 받아야 할 일에도 선생님께 요청하지 못했다.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되묻지 못했다. 학교생활의 대부분은 잘했고 일부 치명적인 것은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우울증 약은 먹고 싶지 않아 졌다. 아이도 많이 좋아졌고 무엇보다도 이제는 다시 다양한 감정과 마주하고 싶었다. 힘든 일도, 슬픈 일도, 우울증 약 없이도 이겨내보고 싶었다. 이제는 이겨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선생님과 상의하며 용량을 조금씩 줄여나갔고 결국은 약복용도 중단하게 됐다. 또다시 슬픈 감정에 잠식당할까 봐 많이 두렵기는 했다. 두려움은 나에게 불안함을 가져왔지만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 잘 이겨나갔다.


두 번째 놀이치료 선생님과는 1년이 다 되어갈 즈음이었다. 놀이치료는 아이와 40분의 놀이시간을 갖고 보호자와 10분의 양육상담으로 이루어진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 관한 짧은 책을 추천해 주셨다. 부모의 부모 관계로 연결되는 내용이었다. 양육상담 시에는 치료의 주체는 아이였기에 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선생님과 관계가 편안해졌었던 것 같다. 책을 보고 나의 부모와의 관계에 대해 돌아보게 됐다고 독서평을 하며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놀이치료 선생님께서는 그날도, 그다음 주에도, 다시 그다음 주에도 나에게 상담을 권하셨다. 나를 위한 상담이라고 하셨을 때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의 치료를 빠르게 돕기 위해서는 엄마의 상담이 정말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결정했다. 내 상담을 시작하기로.


첫 상담날부터 말했다. 나는 아이를 위해 상담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그런데 나의 상담 선생님께서는 아이에 대해 묻지 않고 나에 대해 계속 물어보셨다. 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사람처럼 대답이 굉장히 어려웠다. 조금은 괜찮은 부모로 보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대답이 더 어려웠다. 첫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데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물 같지만 그랬다. 그리고 다음 시간부터는 진심을 다했다. 아이를 돕기 위해 엄마로서 최선을 다해보자고. 나는 모르는 뭔가가 있을 거라고 믿고 따라가 보자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왠지 모르게 선생님이 참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우아한 사람이었다. 행동에는 여유가 있었고 눈빛에는 진심이 있었다. 그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선생님의 진심은 비꼬아서 생각하기 어려웠다. 내 속을 다 끄집어내서 말해도 그냥 그대로의 나를 들어주셨다.


상담을 시작하고 한동안은 몸이 아팠다. 울음을 참기 위해 책상 아래에서 팔을 꼬집고 허벅지를 꼬집었다. 그렇게라도 말하고 싶었다. 그래도 나오는 눈물은 막을 수가 없었다. 50분 동안 이야기를 하고 나오면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했다. 진실과 진심을 말한다는 것. 그것은 나에게 엄청난 긴장이었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 그 경직된 몸을 50분 내내 쭉 가져갔다.


내가 상담을 결정하기 어려웠던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말을 해도 이해받지 못하고 나에 대해 평가받고 이후에 이용당하며 괴롭힘을 받을 것만 같았던 두려움이 크게 작용했다. 이건 내 진짜 기억인지, 방어하는 마음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럴 것만 같은 마음에 모든 걸 내 마음속에 묻고 살았다. 기억을 더듬어 본다면 제대로 이해받아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좀 이상하다는 말을 가까운 사람에게 많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나를 그렇게 평가했다. 세상에 나를 이해해 주고 알아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게 살아가는 데 정말 큰 힘이 되는 것이다. 그런 존재가 당연한 게 아닌 것이다. 선택할 수도 노력할 수도 없는 것이다. 없다 하더라도 나 자신의 잘못은 아니다. 그래서 더 서글펐다. 이유를 찾고 찾다가 나의 카르마 때문인 것 같다며 카르마에 관련된 책을 찾아봤지만 큰 해답이 있지는 않았다. 비록 돈으로 산 상담 50분이었지만, 내 선생님이 있어서 정말 좋았다. 내 선생님이 내 엄마면 얼마나 좋으려나 생각했다. 선생님이 점점 더 소중해졌다. 소중해지는 만큼 갑자기 사라져 버릴까 봐 두렵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50분이 아니라 늘 찾아갈 존재가 있으면 얼마나 든든할까. 해결해주지 않아도 되는데. 나를 있는 그대로만 바라봐주기만 하면 되는데.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받아주는 것.

나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고 보듬어 주는 것.

너와 나는 다른 심장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만들어준 심장을 품고 사는 내 아이.

너를 사랑하는 것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것.

나를 사랑하는 것이 바로 너를 사랑하는 것.

너를 사랑하는 것이 어쩌면,

나를 진짜로 사랑해야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정말 어쩌면,

너의 심장이 내 심장을 진짜 뛰게 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