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닮은 너에게

언젠가 이 글을 네가 읽는다면

by 진서

아이와 나는 이제 집에서 헤어지고 집에서 만난다.

아이는 친구와 등교를 하고 하교도 친구와 한다. 얼마 전, 하교하던 친구가 여행을 가는 바람에 아이 혼자 집에 왔다. 아이는 미리 걱정하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는다. 반대로 변한 아이의 모습에 내가 약간의 눈치를 본다. 눈치보다는 약간의 두려움이 섞여있는, 예민하게 살펴보려는 엄마의 마음정도랄까. 처음은 놓쳤지만 두 번째는 놓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욕심이랄까.


아이의 놀이치료 선생님과 나의 상담 선생님은 모두 마지막 치료일에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용기를 주셨다. 특히 나는 나의 선생님과는 우리의 관계가 다시 필요하다면 그땐, 나의 이야기로 찾아오기로 했다. 선생님께서는 내게 다음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미래가 희망적으로 들리기도, 관계의 절단이 절망적으로 들리기도 했다. 선생님의 진심 어린 속마음은 내가 정말 잘 살았으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상담은 인생에서 짧은 기간이었다. 그곳과 그 상황은 지루하기도 했지만 안정감이 있었다. 상담을 하며 몇 번이나 보았던 선생님의 붉어진 눈을 마지막 날에도 보았다. 그날은 어쩐지 좀 달랐다. 나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눈빛을 안고 나는 떠났다. 마지막은 아니길. 마지막이길. 어느 쪽에도 무게를 더 실을 수 없는 저울질을 해본다. 결론을 꼭 내지 않는 것도 결론일 수 있다. 결말을 보지 않는 것이 결말일 수도 있다. 예전처럼 다시 깊은 우울감을 만나면 나는 인식할 수 있다. 지금도 간혹 오기는 한다. 깊은 내면과도 마주할 수 있다. 우울감에 닿더라도 다시 내 힘으로 걸어 나올 수 있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 방법이 있다.


평균의 삶을 쫓아왔었다. 내가 쫓던 평균은 어디에나 늘 따라왔다. 옷차림까지도 평균을 찾았다. 평균치를 찾는 것은 어려웠고 불만을 갖게 했고 불평을 하게 했다. 평균의 삶을 따라다닌 결과는 결국 스스로를 비난하게 했다. 난 평균도 안 되는 인간이라고 평가했다. 튀지 않으려다 보니 나 자신이 더 특이해 보였고 별나보였다. 그 점이 내 전부 같았고 없애고 싶은 결점이 되었었다. 하지만 그것도 나인 것을. 지울 수 없고 버릴 수 없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이제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 그 평범이라 함은 나다운 평범함이라고 할까. 나만의 평범함이라고 할까. 인간의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 인간의 인생사를 어떤 기준으로도 재단할 수 없는 것이다. 미리 걱정하나, 닥쳐서 걱정하나 비슷하단다. 어차피 비슷하다면 마음 편한 쪽을 선택해 보기로 했다. 조금은 효율적인 인간으로 거듭나보려고 한다. 오랫동안 바라온 그 행복도 좇지 않기로 했다. 그것보다 지금 당장, 이 순간의 건강한 웃음과 안락함을 추구하며 살아보기로 결심하고 행동한다. 계획은 늘 틀어지지만, 다시 다짐하면 그만이다.


물론 내 다짐과는 다르게 모든 것이 다 나아진 것은 아니다. 반대로 꼭 나아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나와 내 아이는 주어진 대로 주어진 만큼 해나갈 것이다. 살다 보면 욕심나는 날이 분명 있을 것이다. 욕심이라는 걸 알아채기만 하기로 했다. 작은 욕심정도는 과분하지 않을 테니.


내가 결혼식을 한지는 벌써 10년이 지났다. 까마득한 그날이, 가끔은 어제 일처럼 느껴진다. 시간만큼은 인간에게 평등하다고 했는데 평균치보다 좀 더 많은 시간이 지난 것만 같은 분들이 계시다. 나의 막내 작은 아빠와 엄마. 그리고 그들의 딸이 있다. 10년 전, 나의 결혼식에 와달라고 얼굴이라도 보자고 연락했던 내 사촌동생 윤서. 윤서의 답장은 언제나 없었다.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이제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날 닮았다고 어른들이 이야기하면 쑥스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 상황과 분위기는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우리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너무 흐릿해져 버렸다. 이제는 길에서 마주치면 서로를 알아볼 수는 있을까...


날 닮은 너에게 편지를 보낸다.

윤서야. 얼마 전에 네 동생이 결혼했어. 널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말을 건넬지, 무수히 생각했는데 말이야. 내 고민이 무색하게 끝내 오지 않았어. 어쩌면 당연했는데 기대했나 봐. 윤서야. 어떤 말로도 널 위로할 수 없고, 어떤 마음으로도 널 이해하기는 어려울 수 있어. 섣부른 짐작으로 상처 주고 싶지 않아.

그런데 우리가 닮은 게, 혹시 어쩌면, 외로움은 아닐까. 아니길 바라면서도 왠지 모르게 조금 걱정이 돼. 언니가 느낀 외로움은 통증이었거든. 무뎌지지 않더라. 계속 아프게 하고 낫지 않더라. 세상이 무너지더라도 내 편이 돼줄 누군가가 있다는 게 살아가면서 얼마나 힘이 되는지. 어쩌면 그 사실을 알기에 더 아프지는 않을지. 혹시 아직 모른다면, 알기 전에 나를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윤서야, 언니 요리도 이제 꽤 잘한다! 집밥정도 금방 내어줄 수 있어. 아무 말하지 않고 밥만 먹어도 돼. 하고 싶었던 말이 많으면 다 쏟아내고 돼. 눈물이 나면 울어도 돼. 네가 어떤 모습이어도, 어떤 속이어도 다 괜찮아. 네 자체로 충분해. 윤서 하나면 충분해. 너의 부모님 걱정이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야. 그런데 언니는 널 생각하면 더 아파. 어린 네가, 아직도 어릴 네가, 혼자 아파할 네가. 이 글을 본다면 아무 생각하지 말고 연락 줘. 그 뒤는 언니가 할게.


윤서,

날 닮은 너에게 닿기를 바라며.

내 첫 연재 글 마지막에 작은 욕심을 부려본다.

약간의 희망을 담아본다.

조금 더 담아본다.


너와 나의 세상에,

희망도 실망도 무거워지지 않을 정도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