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나인지, 내가 아이인지
"제 친구가 산책하면서 숲활동하러 온 유치원 아이들을 봤는데 어떤 아이가 혼자 울고 있었대요. 인상착의가 왠지 맞는 것 같아서 말씀드려요."
유치원 같은 반친구의 엄마에게 조심스레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많이 쓰렸다. 한편으로는 예상이나 한 것처럼 태연한 마음도 들었다. 아이의 인생이나 내 인생이나 슬픔이 기본값이 되어버린 것처럼. 그 쓰린 마음에도 내성이 생겼었나. 무기력이었나. 알 수 없다. 그 당연한 아픔에도 놀란 마음을 표정으로 숨기지는 못했다. 어쩐지 숲활동 가는 날은 더 울었다. 더 안 가겠다고 떼를 썼다. 그래도 울다 보면 언젠가 이겨낼 거라고 희망을 담아서 보냈다. 유치원도 사회생활인데 싫은 것도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그건,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이었다. 나에게 했던 것처럼 아이에게 요구했다. 나는 힘들어도 해. 나는 아파도 해. 혼자 이겨내야 하는 게 삶의 진리야. 그러니까 너도 눈물정도 나는 거면 충분히 할 수 있으니 해봐. 그게 당연한 거라고 아이에게도 당연하게 했던 것이다. 그다음에는 서글픔은 짝꿍처럼 따라왔다. 불쌍한 내 아이. 그리고 불쌍한 나..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한 달에 한 번은 숲활동을 나갔다. 숲활동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곤충, 식물을 관찰하고 자연 속에서 할 수 있는 놀이를 한다. 흙을 파내며 놀기도 하고 떨어진 나뭇잎을 주워서 작품을 만들어오기도 한다. 흐르는 계곡에 발을 담가 보기도 하고 계곡 속의 생태계를 관찰하기도 한다. 키즈카페처럼 인위적인 공간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자연 속에서 하는 놀이를 하는 것이 숲활동이다. 아이에게 정서적으로도 당연히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보냈던 유치원이었다. 매일 숲에 나가는 유치원은 인기가 많아서 줄을 서서 들어가야 한다던데. 남이 좋다고 꼭 나한테도 좋으라는 법은 없다. 특히 아이에 관한 한.
엄마들에게 좋기로 소문나있는 키즈카페, 놀이터, 학원, 장난감까지도. 나에게는 예외 없이 늘 그랬다. 어딜 가나 탐색해야 하는 시간도 길었고 낯가림도 심했다. 선생님의 큰 목소리나 큰 제스처에도 깜짝 놀랐고 공간이 너무 커도 너무 작아도 싫어했다. 좋은 것보다 싫은 게 훨씬 많은 예민한 아이였다. 남한테 피해주기 싫고 튀기 싫어하는 나였다. 아이가 움츠러들고 해내지 못하면 난 더 눈치를 봐야 했고 아이에게 더 강요했다. 아이는 내가 강요할수록 세상을 더 두려워했다. 엄마를 통해 세상을 바라봐야 했던 나의 아이가 더 불안해져만 갔다.
병원 예약이 어찌나 긴지 한 달을 넘게 기다렸다. 소아정신과 어디를 전화해 봐도 한 달은 기본이었다. 여기나 저기나 한참이니 그래도 동네에서 진료를 많이 보는 병원으로 선택했다. 긴 기다림 끝에 첫 진료를 봤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정확한 진단을 위하여 놀이평가를 권유하셨다. 아이가 너무 어릴 때는 본인 상태에 대한 문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는 방법이다. 선생님과 일정시간 놀이를 하면서 아이에 대해 평가하는 방법이었다. 엄마와의 면담시간도 추가되어 있었다. 치료도 아닌데 검사만 받는 것이 치료보다 몇 배는 더 비쌌다. 누군가 말하길, 3대 불효가 교정, 성장주사, 드림렌즈 라던데. 그 정도는 애교지, 싶었다.
놀이평가와 현 상황에 대해 인터넷에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나는 내 세계에서만 살았던 것이다. 이 세계에서는 내 아이의 상황이 가벼워 보일 정도였다. 이곳에 대해 무지할 수 있다면 어쩌면 그것이 축복일지도 모르겠다. 부모님들은 모두 참 간절해 보였다. 나 같은 부모님들. 부모님들 같은 나. 소아정신과에서 보는 진료 항목은 어찌나 많고 증상도 다양하던지. 증상이 다양하니까 비슷하지만 결국 아니겠거니 했다. 내 아이가 소아정신과에 간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증상이 묘하게 비슷했다. 아니길 바랐지만 또 맞을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진료 전에는 의심에 머물며 제발 아니길 바랐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치료에 힘쓰게 됐다. 모든 부모님들은 어떤 치료는 약이든, 식이든 가리지 않고 참 열심히 했다. 나이 질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는 마음이었다. 나도 그랬다. 그 세계에 가보면 누구한테 배운 것도 아닌데 누구나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병원에 다니면서 대기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지극히 평범해 보였다. 문제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도대체 왜 왔는지 이해가 안 됐다. 인터넷에서 봤던 그 아이들 같지도 않아 보이는데 말이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이 말이 여기서도 쓰이나 보다. 다른 엄마들도 내 아이를 보며 같은 생각을 했으려나. 나도 그렇게 보이나요. 저랑 같은 마음인가요!!!! 고통의 깊이가 다르기에 섣불리 다가갈 수 없고 물을 수 없다. 그래도 나한테 한번 물어봐주면 열린 마음으로 동지니까 우리 의지하면서 잘 지내보자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놀이평가의 결과를 받아보면 치료만 받으면 될 줄 알았다.
감기에 걸리면 며칠 항생제 먹으면 깨끗이 나으니까.
그래서 나는 병원에 왔으니까.
놀이평가 결과는 한참 후에나 나왔다. 2-3주 정도 기다렸다. 결과는 불안 기질 자체가 높은 아이라고 하셨다. 기질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라고 한다. 성격은 바꿀 수 있지만 기질은 바꿀 수 없다고 한다. 불안 기질이 높게 태어났는데 환경적으로도 완화되지 않고 강화됐을 거라고 했다. 그리하여 현재 아이가 불안을 아주 많이 느끼고 있고 엄마 또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불안함이 매우 높은 상황이라고 하셨다. 엄마아빠의 좋은 점만 닮아서 태어나길 바랐는데 내 불안도 닮아서 태어나다니. 기도를 그리 많이 했는데... 아이를 통해 나를 만난다. 더 알아가게 된다.
놀이평가의 결과에 대한 처방은 놀이치료였다. 놀이 시간을 통해 아이의 불안을 낮추고 부모 상담 시간을 통해 양육코치받기를 권하셨다. 그 당시 권유하시기로는 놀이치료를 1년에서 1년 반정도로 기간을 길고 여유 있게 잡아보자고 하셨다. 놀이치료 비용은 회기당 8만 원이었다. 이렇게 돈 써보려고 일했나 보다. 멋지게 써보자고 다짐했다. 1년에서 1년 반 금방 간다!!! 초등학교 가기 전에만 좋아지면 되지!!!!
그랬으면 참 좋았을 텐데. 훗.
놀이치료는 아이 놀이시간 40분과 부모 상담 시간 10분, 총 50분이다. 놀이치료가 시작되고 1년 동안 나는 늘 놀이실에 같이 들어갔다. 나랑 떨어지지를 않았다. 껌딱지면 떼어내기라도 하면 되지. 내 아이는 온 힘을 다해 나와 붙어 있었다. 선생님이랑 놀면 얼마나 재미있겠냐고 감언이설로 설득도 해봤고 멀리 있지 않다고 안심시키며 문 앞에서 앉아 있어보려고도 해 봤다. 떨어지려고 하면 할수록 더 붙어있었다. 분리가 되질 않으니 선생님이 나랑 놀이를 하는 건지. 내가 아이랑 놀이를 하러 들어온 건지. 참 헷갈리는 시간이었다. 선생님도 무던히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력하셨다. 내가 봐도 안쓰러워서 붙어있는 아이를 옆에 두고 앉은 채, 자는 척 눈을 감고 있기도 했었다. 야속하게도 시간은 지나고 지나 1년을 채웠다. 내가 큰돈을 쓰면서도 참을성 있게 기다려줄 수 있는 사람인 걸 처음 깨달았다.
그렇게 7살 여름이 되었다.
알쏭달쏭한 시간이 흐르고 흘렀다.
아이가 좋아진 건지. 나빠진 건지.
아마도 나빠졌다면 그건 바로 나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