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우울은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by 진서

첫 번째 놀이치료 선생님과는 끝이 났다.


놀이치료를 매주 한 번씩 갔었고 한 달에 한 번씩은 의사 선생님과 만났다. 진료시간에는 먼저 아이에게 질문을 하셨다.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를 대신하여 현재 아이 근황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진료의 마지막에는 놀이치료를 열심히 받고 한 달 후에 다시 보자고 하셨다. 1년이 흘렀다.


첫 번째 놀이치료 선생님과 마지막 날은 5월 마지막 주의 놀이치료 시간이었다. 나는 동네 공원에서 아이와 놀고 있었다. 일부러 가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분명 습관처럼 오며 갔는데 그날엔 무슨 일인지 원래 다니지 않았던 것처럼 기억에 없었다. 그때, 오지 않느냐고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고 많이 놀랐다. 내 기억도, 치료비도 다 날아갔다. 죄송하다고 전화를 끊고는 회의감이 몰려왔다. 아이도 나도 선생님도 괴로운 놀이치료. 이거 계속 받아야 하는 건가. 차라리 아이와 그 시간에, 그 돈으로 1분이라도 더 웃을 수 있는 무언가를 하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병원에 전화를 걸어 이제 놀이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놀이치료 선생님과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너무 쉽게 인사도 없이 끝나버렸다. 속이 시원하기도 했고 서운하기도 했다. 마무리되지 않은 미지근함이 찝찝하게 느껴져서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때마침, 운전연수를 마쳤다. 유치원-샵-유치원-집을 떠나 남편에게 부탁하지 않고 내 손과 발로 자유롭게 다녀보고 싶었다. 놀이치료의 해방과 함께 나는 잠시 아이와 자유에 몸을 맡겼다. 아이의 입맛에 맞춰 맛집도 다녔고 한적한 공원에도 가봤다. 초대형 키즈카페도 가고 놀이공원에도 갔다. 아이의 얼굴에는 꽃이 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꽃을 닮은 나도 있었다.


한 달에 한번 진료는 계속해서 나갔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놀이치료를 진료 볼 때마다 권유하셨다. 만 6세가 되었을 때 내가 웩슬러 검사(종합인지검사)를 받고 싶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자폐검사도 추가하셨다. 말도 표현도 안 하고 있으니 추가할 만도 했다. 그런데 나에게도 검사를 권유했다. 흔쾌히 승낙했다. 부모 성향을 알아보는 거라고 하셨다. mbti 테스트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검사지를 받아보니 우울척도검사지도 간단히 포함되어 있었다. 이게 뭐람. 날 테스트하겠다고? 자신 있게 검사받았다.


검사결과를 듣기 위해 진료실로 갔다. 아이의 검사결과가 궁금해서 밤잠도 설쳤다. 크게 달라질 것도 없는 결과였지만.


그런데 나보고 우울증 약을 먹어보란다.


많이 웃었다.


선생님 저 우울할 시간도 없어요.


어이가 없었다.

그냥 해프닝이겠지 싶었다.


아이는 불안이 높아서 말을 하지 않고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므로 놀이치료를 이어갈 것을 다시 권하셨다. 내 우울증은 넘겼지만 내 아이의 치료는 이어갈 것을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했다. 검사 결과는 신뢰하지만 내 결과는 실수 아닌가.


정확히 일주일 후,


나는 혼자 꺼이꺼이 울고 있었다.

아이 때문이 아니었다.


갑자기, 불현듯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4학년. 엄마에게 심하게 혼났던 날이었다. 나는 방 안에 혼자 앉아있었다. 문제집은 과목별로 있었다. 문제집만으로는 공부가 어려워서 도움이 필요했다. 답안을 보고 해설을 읽어보아도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내가 공부하는 시간에 거실에서는 아빠와 여동생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행복한 시간이다.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들은 후였다. 방 문을 경계로 고립감과 외로움은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얼른 이 공부를 끝내고 이 방에서 나가고 싶었다. 나도 같이 행복하고 싶었다. 나도 가족인데. 결국 내가 선택한 탈출방법은 답안지를 몰래 보는 것이었다. 스스로 채점까지 해야 했던 나는 양심상 한두 문제는 틀렸다고도 해놨다. 부모님께서는 한참을 모르셨지만 결국은 알게 되셨다. 그리고 그날, 엄마에게 크게 혼났다. 그 무렵, 아빠에게도 틈틈이 많이, 자주 혼났었다. 기억은 모두 내 잘못으로 남아있었다. 수치스러웠고 죄스러웠다. 그때의 감정이 나를 어린 나로 되돌려 놓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 아이가 불쌍했다. 관심받지 못했고 사랑받지 못했던 그 아이가. 아이처럼 시무룩해지다가, 마치 오래 참아왔던 눈물을 다 흘리는 것처럼 울었다. 그때는 저녁밥을 준비하던 참이었다. 남편은 깜짝 놀라 물었다. 어릴 적 기억 때문이라고 했다. 남편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게 이상하게, 고마웠다. 나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다시 나는, 내 안으로 숨었다. 그곳이 더 익숙하고 편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결국 나뿐이었다. 어쨌거나 20년은 훨씬 더 지난 일인데 지금 서럽게 운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갑자기 생각난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우울증에 대해 잘 아는 언니였다. 언니는 본인의 우울증을 고백했었다. 직접 겪어본 일만큼 잘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런 면에서는 나도 이제 우울증에 관한 전문가라면 전문가일지도 모르겠다. 그날, 언니에게 병원에서 검사를 권한 과정부터 오늘의 이야기까지 했다. 나보고 심각하단다. 당장 가서 약 받으란다. “언니 제가 그 정도는 아니에요.”라고 했더니 생각보다 더, 진짜 심각하단다. 맙소사. 한 2주일 정도를 더 부정했다.


다시 진료를 보는 날까지 부정했다. 어차피 나 때문에 가는 진료도 아니었다. 한 달에 한번 가는 아이 진료일이었다. 아이 진료를 마치고 선생님이 내 안부를 물으셨다.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져서 답도 못했다. 한참을 울고는 약 달라고 했다.


내가 정신병자라니. 맙소사. 믿을 수 없어.


약을 먹기 시작했다.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눈물이라도 멈추길 바랐다. 다행히 약이 잘 맞았는지 언제부턴가 슬픔도, 눈물도, 우울도 사라졌다. 그런데 기쁨도, 웃음도, 행복도 사라져 갔다. 무표정하지만 불행을 예고하며 불안해하지 않는 편안한 상태가 됐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나.

그런 내가 꽤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