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제는 괜찮다
이제는 정말,
그만해도 되겠다.
우리 충분히 열심히 했다.
만 3년째에 들었던 생각이다. 아이는 놀이치료를, 나는 상담을 종결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놀이치료 선생님도, 나의 상담 선생님도, 종결 의사를 비췄을 때 처음엔 많이 놀라셨다. 그리고 걱정 어린 말씀을 몇 번이고 하셨다. 아직은 아닌 것 같다고 아직은 더 와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도 나는 결정했다. 사실 뚜렷한 확신은 아니었다.
한 가지 명확한 확신이라면 시간은 흐른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나도 아이도 분명히 좋아질 거라는 것. 또, 시간이 흘러도 우리는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그중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우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결국, 그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다.
특히 아이의 내성적인 성격. 기질적인 불안감. 사실 다 나의 것이었다. 이해할 수 있기에 더욱 화가 났었다. 엄마처럼 살지 마라고. 너는 엄마보다 더 잘살아야겠지 않겠느냐고. 그 마음이 나를 더 속상하게 했고 아이를 바꿔보려고 했다. 고쳐보려고 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던데 내 아이는 고쳐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못 고쳐 쓰고 있는 내가, 낳고 기르는 중인 아이를 고쳐보려고 하는 것. 혹시 신의 영역 아닐까.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3월이 지나고 4월이 되었다. 학부모 공개수업이 다가왔다. 며칠 전부터 긴장됐다. 예전처럼 아무것도 못하고 가만히 있는 거 아닐까. 바보처럼 못하는 거 아닐까. 너무 눈에 띄어서 소문이 나면 어쩌나.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당연히 아이에게는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내 잠깐의 침묵에도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예민하게 느끼고 물었다. 너무도 세심한 내 아이는 내가 둘러대는 이야기는 믿지 않는다. 탯줄이 아직도 우리 둘을 엮어 놓은 것만 같다. 이제는 안다. 나의 거짓말이 아이를 더 불안하게 한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아이에게 솔직하게 말한다. 물론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말해준다. 엄마도 불안하고 걱정하고 있지만 잘못된 것이 아니야. 그리고 엄마가 느끼는 것은 너도 당연히 느낄 수 있어. 그리고 엄마처럼 잘 지나갈 거야. 해결해 나갈 수도 있고 시간이 흘러 지나가 있기도 하고. 해결 못해도 괜찮아. 해결을 하지 않는 게 해결하는 방법이기도 해. 엄마도 이제야 하는 거야.
그런데 아이는 내 예상과 달리 공개수업 중, 모둠활동에서 발표까지 정말 평범하게 눈에 띄지 않게 잘 해냈다. 약간 황당할 정도였다. 내 아이가 아니라 내 자신이 당혹스러웠다. 내가 여태 무슨 걱정을 하고 있었던 건지. 혹시 기대를 한건 아니었을까. 외향적인 모습으로 손을 들고 용감하게 질문을 하고 멋들어진 발표를 하기 원했던 걸까. 부모의 결핍을 아이에게 채워주고 부모의 후회를 강요하기도 한다던데, 내가 바로 그런 부모가 아니었을까.
조금은 나의 시선을 돌려보기로 했다. 문제가 있는 아이가 아니라,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평범한 아이로 기준을 바꾸고 시선을 돌려보기로 했다. 의심을 벗어보기로 결심했다. 나에게 계속 주문을 걸었다. 괜찮아. 괜찮으니까 조금 덤덤하게 바라보자. 여유 있게 지켜보자. 숨을 천천히 쉬고. 조급해지지 말자. 지금 내 아이의 모습, 꼭 나 같았다. 그건 혼날 일도, 고쳐 써야 할 무언가도 아니다. 그런 아이는 어디에나 있고, 그 모습은 결코 잘못되지 않았다. 혹여나 변하고 싶다면 그 주체는 아이 스스로가 되어야 한다. 나는 마을의 보호수처럼 아이를 바라봐주고 옆에 있어주기로 다짐했다.
공개 수업 일주일 후, 학부모 상담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학부모 상담은 전화로도 가능했지만 나는 방문하기로 택했다.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내 아이의 이야기는 숨소리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께 덤덤히 말씀드려보려고 했는데 나는 첫마디부터 실패했다. 우리 아이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느냐고. 저는 아이에 대한 걱정이 너무 많은 엄마입니다라고. 역시 나는 감정이 앞선다. 너무 솔직히 말했다고 후회함과 동시에 선생님은 반색하셨다. 조용하지만 본인이 해야 할 일을 우수하게 해내고 있어서 친구들이 좋아하는 친구라고. 깜짝 퀴즈시간에도 손을 번쩍 들고 답을 맞혀서 친구들이 멋지다고 칭찬해 주었다고 했다. 장난이 많아 짝활동으로는 어려운 친구와도 짝활동을 침착하게 잘 해내는 면모도 있다고 했다. 다만 친구와의 관계에서 소극적인 모습이 있는데 조금씩 용기를 가지고 다가가봐도 좋겠다고 조언도 해주셨다. 정말, 깜짝 놀랄 상담이었다. 그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덤덤하게 받아들여야겠다고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갔는데 칭찬만 받고 왔다.
하교한 아이를 안아줬다.
부스러지지 않을 정도로.
편견은 나에게만 있었나.
편견은 진실을 가린다.
편견을 버려야 깨끗하고 분명하게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쌓아놓은 노력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차곡차곡 잘 쌓아놨다면 약풍에도,
어쩌면 강풍에도 튼튼할 것이다.
태풍만 아니면.
바람이 불어 모든 게 무너졌을까 봐 두 눈을 꼭 감았던 시간.
이제는 눈을 떠도 괜찮다.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었다.
아이도, 나도, 우리가 만든 집도.
서툴고 흔들리면서도 매일 다시 세운다.
마음이라는 집을.
그 집 안에서 아이는 자라고,
나도 자란다.
여전히 바람은 분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