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 그때의 너에게 : 시간을 건너 쓰는 편지

6화. 뽀얗게, 그날처럼

by 하오빛

그날,

너는 아무 말도 없었지.

말없이 웃는다는 건

때로는 고백보다 더 큰 위로였고,

또한 침묵보다 깊은 이별이기도 했어.


한순간의 눈돌림에도

세상이 멈춰버리는 듯

널 바라보던 내 마음,

기억하니?


나는 너무 어렸고,

사랑을 안다고 착각했으며

이별이 두려워 말을 아꼈고,

그렇게 널 놓쳤어.


그때의 너는,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웃고 있었지.

그 미소가 내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어.


수많은 밤이 지나도

나는 아직도

그날의 미소를 기억해.


기억 속 너는 늘

뒤돌아 서 있지만

나는 아직도

네 이름을 불러.


어릴 적 다친 상처처럼

선명한 너의 흔적.

나는 오늘도

그 기억 위에 하루를 눕히고,


새벽안개가

창문을 덮을 때쯤,

고요한 침실에서

네가 떠오르곤 해.


그래서 말이야,

지금도 너를

사랑하는 나를,

가끔은 안아줘.


비록 이제는

너의 뒷모습조차

떠오르지 않지만,

너를 사랑하던

그날의 내 마음만큼은

아직도 뽀얗게 남아 있으니까.


지금의 나, 그때의 너에게 말을 걸어봅니다.

그때의 너야,


그 시절의 너는 참 애썼지.

이별 하나에도 온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그 무너진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더 깊이 웃었지.


지금의 나는 알아.

그 웃음 뒤에 감춰진 울음을,

그 무표정한 얼굴 뒤로

몇 날 며칠을 끙끙 앓던 너를.


밤마다 울컥 올라오던 생각들,

왜 더 붙잡지 못했을까

왜 더 말하지 못했을까

그 자책조차

사랑의 일부였다는 걸

이제서야 알아.


너는 잘 견뎠고,

끝까지 품었고,

무너졌어도 다시 걸었고,

사랑을 끝낸 자리에

조금씩, 다시 너를 심었지.


그걸 말해주고 싶었어.

그때의 너는,

진짜 대단했단 걸.


그 아픔을 통과한 너라서

지금의 내가 이렇게

누군가를 다정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어.


고마워.

그 시절을 지나와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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