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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키스와 마지막 키스

by 아호파파B


당신은 ‘초식남’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는가?


일본에서 탄생한 '초식남'은 연애에 소극적이고, 여성을 리드하지 못하며 수동적인 성향을 가진 남성을 뜻한다.

아호가 한창 일본어 공부를 할 때, 일본 영화와 드라마를 자주 봤다.

한국 드라마는 주로 잘생긴 재벌 2세가 평범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신데렐라 스토리인 반면 일본 드라마적극적인 여주인공과 소극적인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 작품이 꽤 많았다. 그만큼 일본 사회에서 연애에 적극적인 여성이 필요한 만큼 초식남이 많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아호는 초식과는 거리가 먼 나라.

강한 자들만 살아남는 육식남들이 득실거리는 약육강식의 세계.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저 남자가 내 남자다! 왜 말을 못 해!" 여심 일타강사 박신양의 특강을 듣고,

"나랑 밥 먹을래 나랑 사귈래" 소지섭 대사를 암기하며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라고 조기 교육을 혹독하게 받아왔다.


교육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말레이시아에서 만난 일본 여대생은 여심 저격술을 갈고닦은 아호에게 속수무책으로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중요한 건, 마음만 빼앗긴 것이 아녔다는 데 있다.




연애 4개월 차,

시간은 지나 1년 교환학생 생활도 이제 한 달 정도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한일커플 아호와 하루카는 마지막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태국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한 섬으로 함께 여행을 갔다.

피피 아일랜드

디카프리오 주연 영화 '비치'의 배경이 된 곳이다.

영화 속 장면 중 디카프리오와 여주인공이 밤바다 플랑크톤이 반짝이는 가운데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있다. 피피 아일랜드에 간 이유도 그 장면에서 나오는 '플랑크톤'을 체험해 보기 위해서였다.


칠흑 같은 밤바다. 현실과 영화는 많이 달랐다. 빛 하나 없는 바닷속에 들어가려니 오금이 저려왔다. 덜덜 떠는 하루카의 손을 꼭 잡고 바닷물에 들어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손을 휘저을 때마다 플랑크톤은 반짝였다. 생물 발광의 아름다움. 신비로운 빛이 났다. 영화 속 장면 같은 로맨틱한 분위기는 만들 수 없었지만, 대자연의 신비로움은 느낄 수 있었다.


바다에서 나온 후, 함께 백사장을 걸었다. 백사장 위는 파라솔 테이블들이 즐비해 있었고 휴가를 즐기러 온 백인 형, 누나들은 주위 시선은 신경 쓰지 않은 채 파라솔 테이블에 앉아 서로 껴앉고 키스를 하고 있었다.


아호는 곁눈질로 옆테이블을 쳐다봤다.


"와우!"


반대편 옆옆테이블을 쳐다봤다.


"어메이징!"


플랑크톤이 빛나는 바닷속에서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지 못했지만, 지금 이 순간 해변 위 파라솔 아래 마주 앉은 아호와 하로카는 무척 로맨틱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하루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잔에 든 칵테일을 살짝 휘저으며 음미하고 있었다.

아호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그녀 손 위에 아호 손을 살짝 포개었다.

하루카는 잠시 손을 힐끗 쳐다보았다.

아호는 나머지 한 손을 천천히, 자연스럽게, 그녀 허리로 향했다. 그녀도 직감했는지 눈을 질끈 감았다. 아호는 최적의 각도를 갖추고 조심스레 그녀의 몸을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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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뇌 속 기억장치는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으로 나뉜다. 새로운 정보는 먼저 단기기억에 저장된다. 그 후 같은 정보가 반복되면, 뇌는 이를 중요하다고 판단해 장기기억으로 옮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처음 경험하는 충격적인 일들은 다르다. 이런 정보는 단기기억을 건너뛰고 바로 장기기억에 새겨진다. 첫 키스대표적인 예다.


그때 순간을 그녀의 뇌는 장기 기억 장치에 저장해 버렸다.

그렇다. 아호는 그녀의 첫 번째 남자였다.

그리고 하루카는 그의 마지막 여자였다.

하루카가 너무 불쌍하다고?! 어쩔 수 없다. 운명이란 처음과 마지막이 함께 하는 것이다.

그래도 아호의 확실한 취향은 그의 식습관에서 드러난다.


저녁 식사시간. 반찬으로 소고기 장조림이 나왔다. 맛있게 밥을 먹고 있는데 하루카가 물어왔다.


"오빠, 왜 메추리알을 안 먹고 모아두고 있어?"


아호의 대답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든 걸 설명해 준다.


"가장 좋아하는 건, 제일 마지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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