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회의 자율과 자치
10년 동안 늘 담임을 맡아오다가 올해 제대로 거절을 하지 못해 학생부장이 되었다. 학생부장의 가장 큰 업무는 학교폭력처리지만, 교감선생님께서 특별히 나에게 강조한 것은 학생 자치였다. 애들에게 엄하지 못하고, 아이들의 잘못을 제대로 잘 혼내지 못하는 나에게 있어서 학생부장의 자리는 마치 벌을 받는 기분이었다. 어찌되었건, 학생 자치와 관련된 이야기를 오늘 해보고자 한다.
학생회 회의에서 가장 핫한 주제는 휴대폰 자율화였다. 우리 학교 생활규정 상으로 휴대폰은 조례시간에 수거하고, 종례 후에 다시 받아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 학생회장을 비롯한 학생회 구성원들은 휴대폰 자율화를 주장하며, 그 절차를 알려달라고 했다. 학교생활 규정을 개정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일이다. 단순히 학생부장이 결정해서 규정을 바꿀 수도 없고, 교장선생님 마음대로 개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학생, 학부모, 교원의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고, 학생, 학부모, 교원 대표의 위원회를 구성하여 개정안에 대한 토론 끝에 개정안을 결정한 뒤, 학교운영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규칙이 개정될 수 있다.
이 복잡한 과정을 알아보고 설명해주자, 오히려 학생회 아이들의 눈에 불꽃이 일었다. 개정이 되든 안 되든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할 자리가 있다는 것에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이 반영될 수 있다는 희망에 엄청난 의욕을 보였다. 어떤 친구는 주변 학교 학생회에 휴대폰 수거 여부를 물어보고, 어떤 친구는 휴대폰 자율화를 해야 하는 근거를 정리하고, 어떤 친구는 위원회에 자신들의 주장을 이야기할 PPT를 만들겠다고 했다.
이 모습을 보면서 학생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자율적으로 무엇인가를 준비할 때의 모습을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교감선생님께서 의도한 자치가 아마 이런 것은 아닐 것이다. 학생회 주도의 학업 분위기 형성, 교칙 준수, 학교 행사 진행 등을 원하신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진짜 원하는 것의 방향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휴대폰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있겠지만, 자율적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고 자신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엿보였다.
나는 앞으로 학생 대표, 교사 대표, 학부모 대표 위원을 섭외하여 개정 위원회를 만들 예정이다. 생활과 윤리 시간에 수업한 하버마스의 담론 윤리가 떠올랐다. 아이들에게 가르치길 도덕규범은 합리적인 사람들의 의사소통을 통해 상호 이해와 동의로써 정당성을 얻는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수결이 아닌 모두의 합의 즉, 만장일치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다. 학생들의 생각, 교사의 생각, 학부모의 생각은 모두 다를 것이다. 이 토론회를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매우 기대가 되면서도, 이 서로 간의 간극이 너무 커 자칫 이상적인 의사소통이 아닌 권위로 학생들의 생각을 억압하게 될까 두려운 생각도 있다.
그렇다면, 휴대폰 자율화는 꼭 필요할까? 나는 그래도 학교의 어느 정도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생회의 임원들은 모두 학교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나름 목표가 뚜렷한 학생들이다. 아마 휴대폰 자율화가 되더라도 스스로 잘 통제해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는 그런 학생들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통제를 잘 하지 못하고, 학교 공부에 흥미를 갖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다. 학교라는 교육을 하는 공간에서 그 목적을 위해서 잠시간 휴대폰을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이는 강제적으로 행해지는 것보다 학생들의 자율적 참여로 이루어지면 더욱 이상적이다. 하지만, 아직은 미성년자이고 성장하는 단계의 학생들이기 때문에 이 정도 통제는 필요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