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마이크 앞에 선 한 사내, 폭풍 전야

by DrLeeHC

제11장: 마이크 앞에 선 한 사내, 폭풍 전야


회의장으로 가는 길목의 긴장과 시선들


한정우의 제안과 텃새들의 비열한 반격이 있은 후의 이야기라네.


그 후 입주자 대표 회의가 열렸어.


두 면(1, 2번 코트)은 기존 동호회에서 이전처럼 쓰고.

나머지 한 면(3번 코트)은 일반 주민들과 이웃들을 위한 '초심자 우선 코트'로 분리해서 운영할 것을 요청했던,

한정우의 제안이 아파트 전체에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킨 셈이지.



잠자던 사람들의 관심을 흔들어 깨웠어.

저녁 먹고 난 뒤, 아파트 관리동 퀴퀴한 회의실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네.

낡은 형광등 불빛이 회의장 한가운데를 차갑게 비췄지.

그 불빛 아래, 보이지 않는 전운이 감돌았다네.


왕 노릇하는 패거리들은 마치 싸움 이기고 돌아온 장군들처럼 당당하게 앞자리를 차지했어.

동대표들과 눈 맞추며 지들 세를 과시했지.

얼굴엔 승리를 확신하는 오만함이 번들거렸어.

지들끼리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비웃는 소리마저 들리는 듯했어.


반면 한정우와 그의 한낮 클럽 회원들은 방어하듯,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지.

얼굴엔 팽팽한 긴장감이 역력했어.


젊은 부부는 연신 땀 젖은 손을 매만졌고, 대학생은 입술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꾹 다물었어.


저들 눈엔 이 싸움의 승리가 단순한 즐거움만이 아니라, 코트의 미래까지 걸려 있다는 절박함이 교차했지.


다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네.


하지만 물러설 수 없다는 단단한 의지가 눈빛 속에 깃들어 있었다네.


나는 늘 앉던 벤치 대신,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 맨 뒷자리에 앉아 이 모든 걸 지켜봤어.


코트 위 흙먼지 날리던 싸움이, 이제 형광등 불빛 아래, 차가운 논리로 무장한 정치판으로 넘어온 게지.


이곳은 법과 규정, 그리고 그 뒤에 숨은 인간 욕심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 곳이었어.


내 보온병 속 위스키는 평소보다 더 썼어.


씁쓸한 한숨과 함께, 나는 조용히 저들 싸움이 시작되기를 기다렸지.



"코트는 진정 누구의 것입니까?" - 날카로운 질문의 파문


회의는 예상대로 흘러갔어.

패거리 우두머리인 감씨가 먼저 마이크를 잡았지.

능구렁이처럼 노련하고, 말도 잘 하고 논리적이었어.


"존경하는 동대표 여러분, 그리고 주민 여러분.

저는 오늘 우리 아파트의 '안전'과 '품위', 그리고 '공동체의 질서'를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미리 준비한 듯 매끄러운 말솜씨로 이야기를 풀어갔어.

'초보들 미숙한 실력으로 인한 사고 위험', '한낮 소음으로 인한 주민 불편', '테니스 클럽 명예 실추', '특정 그룹 코트 독점 요구는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등 그럴듯한 단어들을 엮어냈지.


한정우 제안이 소수의 이기적인 요구이자, 공동체 질서를 해치는 위험한 생각이라고 슬슬 잘 몰아갔어.


잘 훈련된 변호사처럼, 주장을 쉴 새 없이 쏟아냈지.


중간중간 관리비 아낀다고 3번 코트 전기 수도 끊은 건 '주민 전체 이익을 위한 합리적 결정'이라고 주장하며 지들 행동을 정당화했지.


듣던 주민들 몇몇은 고개까지 끄덕이더군.

연설은 꽤 성공적이었어.

분위기가 지들 편으로 넘어갈 무렵, 한정우가 조용히 일어났네.


그는 연설가가 아니었어.

그의 목소리는 감씨처럼 매끄럽지 못했고, 처음엔 목소리도 좀 떨렸지.

하지만 그 울림은 어떤 웅변보다 깊었어.

그는 법 조항이나 규정 대신,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지.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회의장 공기를 꿰뚫는 힘이 있었어.


"이 코트는, 아파트라는 이름으로 묶인 우리가 사는 이 공동체는, 과연 누구의 것입니까?

더 잘 치는 사람, 더 오래 산 사람의 것입니까?

아니면 서툴고 부족하더라도 함께 어울려 살아가려는 우리 모두의 것입니까?"


"저는 묻고 싶습니다. 코트의 '안전'과 '품위'가 특정 소수의 전유물입니까?

코트에서 땀 흘리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그곳의 활기가 아파트 전체에 퍼져나갈수록, 우리 공동체의 '품위'는 떨어지는 것입니까?"


그의 질문은 조용히 던져진 돌멩이 같았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회의장 전체로 퍼져나갔지.

감씨의 날카로운 논리 대신, 한정우는 사람의 본질적인 감성과 공동체의 가치를 건드렸어.


그제야 사람들은 지들이 뭘 놓치고 있었는지 어렴풋이 깨닫는 듯했네.


예상치 못했던 목소리, 그리고 드러난 위선


한정우 질문에 회의장은 잠시 침묵에 휩싸였어.

그때였지.

아무도 예상 못 한 곳에서 손이 번쩍 들린 건. 한낮 클럽의 젊은 주부였어.

좀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내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지.


"저는 테니스 규칙 같은 건 잘 모릅니다.

저희가 코트에서 시끄럽다고 하셨죠.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 아이가, 이제 막 테니스를 배우려는 저 젊은 사람들 덕분에 아빠랑 함께 운동하는 즐거움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가족에게 그 한낮 시간은 단순한 운동 시간이 아닙니다.

함께 웃고 땀 흘리는 시간, 가족이 하나 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저희는 그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녀의 진심 어린 목소리가 회의장 딱딱한 공기를 흔들었어.


눈가엔 맺힌 눈물이 반짝였다네.


뒤이어, 테니스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다른 동 주민이 마이크를 잡았지.


"저는 아침 출근할 때마다 그분들 봅니다.

시끄럽긴커녕, 웃음소리가 듣기 좋던데요.

사람 사는 아파트 같아서요.

공동주택 관리비를 아끼겠다고 주민들이 쓰는 시설의 전기랑 수도를 끊는다는 건,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말에 여기저기서 고개가 끄덕여졌어.


이때다 싶었는지, 패거리들이 재빨리 반격했어.


"그럼 '안전'은 누가 책임집니까?

초보들이 다치면요?

코트 관리도 제대로 안 되는데!"


그러자 한정우가 나섰어.


그의 목소리는 이제 전혀 떨리지 않았다네.


"안전을 위한다면, 오히려 숙련된 분들이 초심자들을 가르치고 함께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서로 조심하고 배려한다면 사고는 막을 수 있습니다.

코트 관리는 주민 모두의 의무이고요.

그리고 '품위'는 몇몇의 독점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릴 때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감씨가 다시 마이크를 잡으려 했지만, 이미 판세는 뒤집혔어.


이건 더 이상 테니스 클럽 문제가 아니었지.


'우리는 어떤 아파트에 살고 싶은가', '어떤 공동체를 지향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돼버린 거야.


지들 '안전'과 '품위'라는 허울이 벗겨지고, 그 아래 감춰졌던 이기심과 배타성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네.


회의장은 아파트 주민들 진짜 목소리로 점차 채워지기 시작하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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