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보이지 않는 경계, 드러난 이빨

by 이호창

제10장: 보이지 않는 경계, 드러난 이빨



한낮의 땀방울, 그리고 교묘한 압박


한낮, 코트에는 젊은이들이 땀을 쏟았어.

해가 이글거리는 시간에도 말이야.

내가 늘 벤치에 앉아 그 열기를 느꼈으니, 코트가 지들 왕국인 줄 아는 패거리들 여시 그 열기를 느꼈을거야.


그들은 한정우 일행이 제일 뜨거운 시간을 골라 코트 한 면을 쓰는 것 마저도 영 못마땅해 했어.


지들 눈엔 저 젊은이들이 딱 '잡초' 같았을 거야.

마치 자기들이 먹다 남긴 밥그릇에 다른 놈이 숟가락이라도 얹는 꼴이라도 본 듯 말이야.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더니, 딱 그 심보였지.

자신들이 비록 쓰지 않는 시간이라도, 그들의 '왕국'에 불청객이 있다는 자체가 자존심 상했던 게야.


그렇게 한정우 일행의 한낮 훈련에 대한 견제가 시작됐어.

오래가지 못했지.

어느 날 오후, 젊은이들이 한창 공을 치는데, 패거리들이 코트 옆 벤치에 스멀스멀 모여들더군.

대놓고 뭐라고 하진 않았어.

대신 교묘하고 비열하게 굴었지.


쓸데없이 큰 소리로 떠들고, 공 치는 중간중간 빤히 쳐다보며 깔깔거렸어.

빈 음료수 캔을 널브러뜨리고, 땀에 전 수건을 벤치에 보란 듯이 놓아뒀지.

맹수가 영역 표시하듯 말이야.

조용히 겁줘서 저들이 알아서 물러나길 바란 게지.

그들의 눈빛은 뜨거운 햇볕보다 더 따가웠어.


젊은이들은 얼굴이 벌개지고,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피했지.


한정우는 꾹 참았지만, 다문 입술은 분노로 파르르 떨렸어.


근데 그런 소극적인 훼방은 시작에 불과했어.


한정우 일행이 모처럼 코트를 찾으면, 텃새들이 나타나 대놓고 훈수를 뒀지.


"거긴 우리 동호회 코트니까, 정식으로 회원 가입하고 치시죠?"


으름장을 놓는 사람도 있었어.


"초보들이 여기서 이러고 있어 봤자 실력이 늘 수가 없으니, 일단 실내 테니스 장에서 테니스를 정식으로 배우고 다시 오시죠."


"저기 한정우라는 사람한테 공 배우면 절대 공 안 늘어요.

저 사람은 공을 끝내는 실력이 전혀 없어서 답답한 테니스를 하는 사람이지요."


"발리는 그렇게 공을 안고 다스리는 게 아니라, 한 번에 휘둘러서 끝내야 되요"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어.


그들 입에서 '정식 회원 가입' 소리가 나올 때마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찼어.

뻔뻔함도 저 정도면 재주라 불러줘야 할 판이었지.


'아니, 근데 20년 간 미운정 고운정 다들은 박 사장을 내쫓은 게 누군데?

박 사장은 정식 회원이다 못해, 동네 마당발이었는데, 그런 사람도 지들맘에 안든다고 쫓아내 놓고... 쯧...

저 젊은이들이 정식회원 되면 뭐하나?

어치피 지들 맘에 안들면 갖은 구실을 붙여서 언제 쫓아낼지도 모르는데 ...'


이런 생각이 절로 들더군.


테니스가 편법과 꼼수로 얼룩졌듯, 그들 삶도 딱 그 모양이었지.

형님 형님 하면서 나한테 술은 잘 얻어 마셨지. 딱 그 뿐이었어.


한정우는 "자신들이 편하게 공 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당연히 정식으로 가입할테니 걱정 마시라"고 답하더군.



그 이후로 한 동안은 한정우 일행의 한낮 훈련은 별 탈 없이 이어지는 듯했지.


그런데 어느 날 말도 안 되는 문제가 생겼지 뭔가.


그날따라 한낮에 초보자들이 좀 많이 나왔어.


한 면짜리 코트로는 모자라 메인 코트 중 한 면, 즉 두 면짜리 코트에서 몇 명이 치게 되었어.

물론 그 시간에는 기존 회원들이 코트에 없었지.

햇볕이 가장 뜨거운 시간이라 다들 집에서 쉬고 있을 때였거든.

초보자들과 한정우는 코트 두 면을 쓰고 난 뒤, 기존 회원들이 나오기 전에 롤러를 하고, 브러쉬 질도 하고, 새롭게 라인도 그려서 코트를 아주 깔끔하게 만들고 집으로 돌아갔다네.

먼지 하나 없이 말끔한 코트를 보며 모두들 뿌듯해했지.


하지만 다음 날 저녁, 이상한 소문이 코트에 돌기 시작했어.


기존 회원 중의 어떤 사람이 다른 회원들 나오기 전에 자기 친구들을 불러 코트를 쓰고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그만 뒷정리를 소홀히 하고 가버린 게야.


그런데 저녁에 코트에 처음 나온 기존 회원들이 코트가 지저분한 것을 보고는, 느닷없이 한낮 클럽의 젊은이들이 코트를 어지럽힌 뒤 갔다고 오해를 하고 말았지.


순식간에 코트 전체에 "저 싸가지 없는 젊은 놈들이 코트를 더럽혔다"는 소문이 퍼졌다네.


한정우와 젊은이들은 기가 막혀 했지.

우리는 다 치우고 갔다고 아무리 설명했지만, 기존 회원들은 이상하게 믿어 주지 않고, 심지어 그들을 나쁘게만 보고 싸가지 없는 젊은 놈들이라고 여기게 되었다네.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누구 눈에는 누구만 보인다더니 ...

그 말이 딱 맞는 말인가 싶더군. 거 참...



주말의 난장판, 그리고 빼앗긴 코트


더 기가 막힌 일은 주말이랑 휴일이었어.

평일엔 코빼기도 안 비치던 놈들이, 멀리 사는 동기 동창이나 지인들을 잔뜩 불러 모으는 게 아니겠나.


하루 종일 코트 세 면을 지들이 다 쓰는 거야.


지들이 "주민 시설은 주민이 쓰는 게 맞잖아!" 하고 외치던 놈들인데 말이야.


코트에서 막걸리 파티를 벌이고, 고성방가에, 심지어 공 하나 때문에 싸움질까지 해댔어.

술 취해 라켓 휘두르다 넘어지고, 라인 시비로 욕설을 퍼붓는 꼴이라니.

추태가 따로 없었지.


지들 친구들이 마신 막걸리 병이랑 안주 부스러기가 코트 구석에 널브러져 있었어.

그야말로 난장판이었지.

코트 바닥은 끈적거렸고, 펜스엔 얼룩덜룩 뭐가 묻어 있었고.


덕분에 한정우 일행은 코트가 비어 있어도 구경만 해야 했어.

텃새들 눈치 보느라, 이미 '점령당한' 코트라 함부로 발도 못 들였기 때문이었지


주말에 테니스 배우러 온 젊은 부부나 대학생들은 텅 빈 코트를 보고 발길을 돌려야 했던 적이 점점 늘어갔어.


그들의 실망하는 뒷모습을 볼 때마다 내 가슴 한구석이 시큰거렸다네.

코트를 사랑하는 새싹들이, 낡아빠진 텃새들 횡포에 꺾이는 꼴이라니.


그들의 행패는 날이 갈수록 교묘하고 더러워졌어.

코트는 이제 단순한 운동장이 아니었지.

힘 있는 놈들 놀이터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있는 전쟁터였어.

지들 오만함은 하늘을 찔렀고, 권력은 코트 위에서 제멋대로였어.


나는 보온병 속 위스키를 마시며, 이 더러운 싸움이 언제나 끝날까 한숨 쉬었지.



한정우의 담대한 제안: '그들'에게 직접 말하다


한정우는 이 모든 걸 묵묵히 지켜봤어.

얼굴엔 늘 복잡한 심정이 묻어나 있었지.


젊은이들이 쫓겨나고, 순수한 열정이 짓밟히는 걸 보면서, 속에서 뜨거운 불길이 일었을 거야.

그건 단순한 화가 아니었어.

이 공동체에 만연한 불의를 바로잡으려는 강한 의지였지.

그는 깨달았어.

더는 숨죽이고 양보해선 안 된다는 걸.

한낮의 땀만으론 부족하다는 걸 말이지.

이제 대놓고 나서서 진실을 외쳐야 할 때였어.

싸움이라기보단, 낡은 틀을 깨고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요구할 때였지.


어느 주말 오후, 패거리들이 친구들과 코트 세 면을 다 차지하고 막걸리 파티를 벌이고 있을 때였네.


한정우는 한낮 클럽 회원들을 이끌고 그들 앞에 딱 섰어.


그의 얼굴은 평소처럼 고요했지만, 눈빛만은 흔들림 없는 강철 같았지.


뒤에는 젊은 부부랑 대학생, 그리고 몇몇 새로 합류한 이웃들이 잔뜩 긴장해서 서 있었어.


코트엔 순간 싸한 정적이 흘렀지.

술잔 기울이던 패거리들은 저들 불청객 같은 모습에 얼굴을 찌푸렸어.


한정우가 입을 열었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코트 전체에 울려 퍼지는 듯 선명했어.


"감씨, 그리고 동호회 회원 여러분께 제안할 것이 있습니다."


감씨가 비웃듯 코웃음을 쳤지.


"오, 이단아 양반. 또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려나?"


한정우는 그 말 무시하고 비아냥 거렸어.


"이 코트는 아파트 주민 모두의 것입니다.

근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특정 동호회 회원들, 심지어 외부인들이 주말 내내 코트를 독점하고 있습니다.

정작 테니스 배우고 싶은 주민들은 발길을 돌리고 있고요."


그의 말을 듣던 패거리들의 얼굴이 벌게졌어.


"그럼 뭘 어쩌라는 거야!

우리가 코트 주인이니까 마음대로 쓰는 게 뭐가 잘못됐다는 건데?"


어떤 놈이 소리를 질렀지.


한정우는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단호하게 말했어.


"제안합니다. 현재 세 면 코트 중, 두 면(1, 2번 코트)은 기존 동호회에 내어 드리겠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쓰십시오.

하지만 나머지 한 면(3번 코트)은 테니스 처음 시작하는 이웃들과 일반 주민들을 위한 '초심자 우선 코트'로 분리해서 운영할 것을 요청합니다.

우리 모두의 공간을 공정하게 나눠 쓰자는 겁니다."


코트엔 다시 정적이 흘렀어.

한정우의 제안은 너무 합리적이고 당당했지.

지들 뻔뻔한 비난이 쉽게 터져 나오지 못했어.

그는 싸움을 건 게 아니었어.

오히려 상대가 싸움을 걸어오면, 지들이 파렴치한이 되게 판을 짰지.


'분리'라는 제안은 겉으론 합리적이고 공정해 보였지만, 속으론 지들 위선을 드러내고, 지금까지의 독점 행태를 정면으로 비판할 날카로운 칼날이 숨어 있었지.


마치 조용히 타오르는 촛불이 어둠 속 모든 걸 밝히듯 말이야.

그의 한 수는 단순한 제안이 아니었어.


코트의 모든 불합리를 겨냥한 정교한 포석이었지.



'안전'과 '품위'의 가면, 그리고 비열한 단절의 시작



한정우 제안에 코트의 기존 패거리들은 당장 대답 못 했어.

얼굴을 마주 보며 웅성거렸지.

코트 전체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지.


한 대 칠 기세로 달려 드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네.

그런데 그들 모두는 한정우가 예전에 무에타이를 배워서 무력으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


그러던 며칠 뒤 이상한 사건이 벌어졌어.

지들은 한정우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한정우에게 직접 전달한 게 아니라, 관리사무소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했던 거지.


그리고는 자기들의 비열함을 또다시 증명했다우.


아파트 게시판에 '3번 코트 관리비 절감을 위한 사용 규정 변경 안내' 라는 공고문이 붙었어.

그 공고문엔 이렇게 적혀 있었어.


"3번 코트는 동호회 소유가 아닌 주민 공동 소유이므로, 주민들 관리비를 아끼기 위해 전기와 수도 공급을 중단해야 한다.

동호회 코트인 1, 2번 코트는 회비로 운영하니 기존대로 유지하라"


나는 그 공고문 읽고 코웃음이 터졌어.

뻔뻔하기 짝이 없었지.

지들이 외부인 불러다 파티 벌일 땐 물 쓰듯 쓰고 전기 펑펑 쓰던 자들이, 이제 와서 '관리비 절감'을 운운하다니.


지들은 관리사무소랑 이웃들 찾아다니며 새로운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어.

교활한 독사가 혀 날름거리듯, 입에서 독기가 뿜어져 나왔지.


"초보들이 한낮에 코트에서 소리 지르고 시끄럽게 하면, 주민들 잠 다 깹니다.

애들 낮잠도 방해하고요.

한낮 더위에 초보들이 무리하게 운동하다 사고라도 나면, 그 책임 누가 집니까?

아파트 이미지만 나빠집니다!"


"아무나 와서 치게 되면, 우리 아파트 테니스 클럽 '품위'가 떨어집니다.

품격 있는 아파트에 안 맞죠.

실력없는 초보들이 코트 점령하면, 진짜 테니스 즐기는 사람들 설 곳 없어집니다!"


'안전'과 '품위'.

지들이 제일 좋아하는 단어들이었지.

근데 한 번도 스스로 지켜본 적 없는 것들이었어.

지들 말은 겉으론 공동체 위하는 척했지만, 속으론 지들 이기적인 욕심 채우려는 위선으로 가득했지.


코트 안의 소리 없는 전쟁은, 이제 아파트 전체로 번졌어.


흙먼지 날리던 싸움이, 이제 사람들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금을 그으며 퍼져나가는 형국이었어.


지들 교묘한 술수는 한정우 제안이 화합을 깨뜨리는 위험한 생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지.


그리고 입주자 대표 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지들은 비열함을 또 증명했어.


며칠 뒤, 한정우가 제안했던 '초심자 우선 코트'인 한 면짜리 코트의 전기랑 수도가 갑자기 끊긴 거야.


한정우가 코트 사용료 따로 낼 테니 전기랑 수도 다시 연결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지만, 거절 당했어.


괸라소장은 "규정은 규정입니다" 라며 딱 잘라 말했지.


한정우는 마치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무 답도 들을 수 없었어.


그건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무도 몰라.

미스터리였지.


명분 없는 괴롭힘, 그냥 지들 영역 지키려는 더러운 심보였을 거야.


코트 옆 수도꼭지에선 물 한 방울 안 나왔고, 한낮 해가 지고 밤이 되면 3번 코트만 새까만 어둠 속에 잠겼어.


냉혹한 어둠과 마른 수도꼭지는 저들 패거리의 비열한 속내를 분명히 보여줬지.


하지만 지들 비열한 술수는 오히려 한정우 일행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어.


물 한 병씩 들고 오고, 작은 손풍기로 땀 식히면서도 테니스 새싹들의 열정은 전혀 식지 않았어.

아니 오히려 더 활활 타올랐지.


불평 대신 서로 격려하고, 부족한 건 함께 채워나갔지.


마치 사막 선인장처럼, 고난 속에서 더 끈질긴 생명력을 얻는 모습이었다네.


산전수전 다 겪은 내가 위스키 한 잔씩 마시며 볼 때, 얼마나 대견했는지 모를 정도였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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