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한낮의 점령자들

by 이호창

제9장: 한낮의 점령자들



오래된 벽 앞에 핀 웃음꽃


그 후로 며칠 동안, 오래된 연습 벽 앞은 그들만의 코트가 되었네.


한정우는 선수 출신도 아니고 고수라고 추앙받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훌륭한 스승이었음에는 틀림이 없어 보였어.


그는 옆에서 초보자들에게 정성껏 손으로 공을 던져 주었지.

높게 튀는 공, 낮게 깔리는 공, 역회전 먹은 공,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공을 던져 주더라고.

그는 초보자들의 공이 정확하게 라켓의 스윗스팟을 맞출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네.


"와, 10년 친 사람들도 못치는 공인데...

정말 잘 맞추었어요."


그는 공을 세게 쳐서 상대를 이기려는 기술이 아니라, 라켓과 공이 친구가 되는 감각을 더 열심히 가르쳤네.


진정한 스승은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가르치는 법이라는 걸 나는 그때 다시금 깨달았다네.


서툴던 젊은이들의 스윙은 날이 갈수록 부드러워졌고 , 무엇보다 그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지.


그 웃음소리를 듣고, 전에는 용기를 내지 못했던 다른 이웃 한두 명이 더 그들의 재미난 훈련에 합류했어.


그 작은 공화국은 그렇게, 소리 없이 조금씩 조금씩 영토를 넓혀가고 있었네.


이제는 코트로 돌아갈 시간


벽을 상대로 한 훈련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법이지.

그들의 실력은 이제, 네트를 사이에 두고 서로 공을 주고받을 수 있을 만큼 늘어 있었네.


어느 날 저녁, 나름대로의 훈련을 마친 뒤 한정우가 입을 열더군.


"이제 코트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젊은이들의 얼굴에 잠시 긴장감이 스쳤어.


그 침묵의 폭력을 다시 견뎌낼 자신이 없었겠지.


한정우는 그들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 나직이 덧붙였네.


"그들이 없는 사람 취급하거든, 우리도 그들이 없는 것처럼 우리만의 경기를 하면 됩니다.

중요한 건, 다시는 그 무언의 압력에 쫓겨나지 않는 겁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호함과 함께, 잊었던 용기를 북돋아 주는 힘이 서려 있었다네.


한낮의 점령자들


그들은 이제 오래된 벽이 아니라 정식 코트 위에서 테니스를 치기로 했지.


일단 그들은 왕 노릇하는 패거리들이 가장 없는 시간, 즉 한낮의 쨍한 햇볕이 코트 위로 쏟아져 내리는 시간을 택했어.


그 시간은 공 치기 가장 어렵고 힘든 때였지.

강렬한 햇살은 눈을 부시게 했고, 코트의 열기는 숨통을 조여왔거든.


하지만 그들에게는 소음도, 오만한 시선도 없는, 오직 땀과 열정만이 가득한 시간이었다네.


그들은 외롭게 떨어진 한 면짜리 코트를 조용히 '점령'했어.


그리고 마침내, 그들만의 첫 경기를 시작했지.


공은 여전히 라인을 벗어나기 일쑤였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패배감이 아닌 해방감이 가득했네.


그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 땀방울로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다네.


그 한 뼘의 땅은 완벽한 그들의 해방구였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라켓을 휘두르는 모습은, 마치 메마른 땅에 뿌리내린 풀잎처럼 강인하고 아름다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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