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장: 시바, 파괴와 창조의 역설적 신

by 이호창

제1-11장: 시바, 파괴와 창조의 역설적 신



1-11.1. 고행자, 위대한 댄서, 자비로운 가장으로서의 시바


힌두교의 만신전 속에서, 비슈누가 문명의 질서와 자비로운 구원을 상징하는 빛의 신이라면, 시바 (Śiva)는 그 모든 질서의 이면에 존재하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힘이자,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생명력 그 자체입니다. 그의 이름 ‘시바’는 본래 ‘상서로운 자’, ‘친절한 자’를 의미하지만, 그의 모습은 종종 두렵고 기이하며 인간의 이해를 초월해 있습니다. 그는 히말라야의 눈 덮인 봉우리에서 모든 세속적 욕망을 불태우는 위대한 고행자인 동시에,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온 우주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열정적인 가장입니다. 그는 우주를 파괴하는 격렬한 춤을 추는 무서운 파괴자인 동시에, 그 춤사위 속에서 새로운 생명의 리듬을 창조하는 위대한 예술가입니다. 이처럼 시바의 신성은 하나의 고정된 역할이나 성격으로 규정될 수 없는, 모든 이원적 대립을 자신의 존재 안에서 끌어안고 통합하는 거대한 역설의 드라마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리가 반드시 질서정연하고 합리적인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님을, 때로는 가장 혼란스럽고 파괴적인 힘 속에서 가장 심오한 진리가 드러날 수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시바의 가장 근원적인 모습은 바로 ‘마하요기 (Mahāyogī)’, 즉 ‘위대한 고행자’입니다. 그는 인간 사회의 안락함과 규범을 떠나, 문명의 가장자리, 즉 히말라야의 얼음 동굴이나 시체가 타는 묘지 (śmaśāna)에 머뭅니다. 그의 몸은 왕의 황금 장신구가 아니라, 살아있는 뱀 (나가, nāga)들이 휘감고 있습니다. 특히 그의 목을 감고 있는 코브라의 왕 바수키 (Vāsuki)는 모든 욕망과 죽음의 공포를 완전히 제어하는 그의 절대적인 자기 통제력을 상징합니다. 그는 부드러운 비단옷 대신, 용맹과 감각에 대한 승리를 상징하는 호랑이 가죽을 허리에 두르고 있으며, 온몸에는 시체를 태운 신성한 재 (vibhūti)를 바르고 있습니다. 이 재는 모든 것이 결국에는 한 줌의 재로 돌아간다는 존재의 덧없음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그 모든 생성과 소멸의 순환을 초월했다는 그의 지위를 드러내는 표식입니다. 그의 헝클어진 머리카락 (jaṭā)은 세상의 모든 법칙과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운 그의 야성적인 본성을 상징하며, 그 머리카락의 가장 높은 곳에는 초승달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 초승달은 시간의 순환을 지배하고 마음의 동요를 제어하는 그의 힘을 나타냅니다. 또한, 저 위대한 하늘의 강물인 갠지스 (Gaṅgā)가 교만하게 지상으로 내려올 때, 그 엄청난 충격으로부터 세상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그 강물을 온순하게 받아내어 흘려보낸 것도 바로 시바였습니다. 그의 손에 들린 세 갈래 창, 즉 트리슐라 (Triśūla)는 프라크리티를 구성하는 세 가지 구나 (sattva, rajas, tamas)를 모두 지배하는 그의 권능이자,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의 세 차원을 모두 꿰뚫는 그의 초월성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의 이마 한가운데에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제3의 눈이 감겨 있습니다. 이 눈은 평소에는 닫혀 있지만, 그가 깊은 명상에 잠겨 내면의 진리를 볼 때 혹은 정의로운 분노에 휩싸일 때 열리며, 그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꽃은 우주 전체를 단숨에 재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무서운 파괴의 힘을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시바의 고행자로서의 모습은, 모든 세속적 집착을 끊고, 감각을 제어하며, 오직 내면의 참된 자아 (Ātman)와 합일하기를 추구하는 모든 요기 (yogi)와 구도자들의 영원한 원형이자 수호신입니다. 그의 깊은 명상의 침묵 속에서, 이 우주의 모든 소란스러운 활동은 그 근원을 찾고 고요한 평화를 얻습니다.


그러나 이 절대적인 고요함 속에 잠들어 있던 신은, 어느 순간 깨어나 우주적인 리듬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시바의 또 다른 위대한 모습은 바로 ‘나타라자 (Naṭarāja)’, 즉 ‘춤의 왕’입니다. 그의 춤, 탄다바 (Tāṇḍava)는 단순한 예술 행위가 아니라, 우주의 모든 활동—창조, 유지, 파괴, 속박, 그리고 해방—을 이끄는 신성한 에너지의 표현입니다. 나타라자의 형상은 힌두 사상의 가장 심오한 철학을 하나의 완벽하고도 역동적인 이미지로 압축해 놓은, 살아있는 우주론 그 자체입니다. 그는 거대한 불꽃의 원 (prabhā-maṇḍala) 안에서 춤을 춥니다. 이 불꽃의 원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우주 전체를 상징하며, 동시에 그 모든 변화의 한가운데서 춤추는 그가 바로 우주의 근원적인 에너지임을 보여줍니다. 그의 오른손 중 하나는 ‘두려워하지 말라 (abhaya-mudrā)’는 손짓을 하며, 우리를 모든 공포로부터 보호하고 안심시키는 자비로운 수호자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의 다른 오른손은 작은 모래시계 모양의 북, 다마루 (ḍamaru)를 들고 있습니다. 이 북이 울릴 때마다 ‘소리 (śabda)’가 창조되고, 그 소리의 진동으로부터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이 우주의 모든 만물이 생겨납니다. 이것은 바로 창조의 리듬입니다. 그의 왼손 중 하나는 불꽃 (agni)을 들고 있습니다. 이 불꽃은 낡고 부패한 모든 것을 남김없이 불태워 버리는 파괴의 힘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이 파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위한 정화의 과정입니다. 그의 다른 왼손은 아래로 들어 올린 그의 왼발을 우아하게 가리킵니다. 이 들어 올린 발은 세상의 모든 속박과 고통으로부터의 ‘해방 (mokṣa)’을 상징하며, 그 발에 귀의하는 자에게 구원이 있음을 약속하는 은총의 손짓입니다. 그리고 그의 오른발은 무지 (avidyā)와 아집 (ahaṃkāra)을 상징하는 난쟁이 악마, 아파스마라 (Apasmāra)를 단호하게 짓밟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지혜가 우리의 이기적인 자아와 근원적인 무지를 극복함으로써만 얻어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의 휘날리는 머리카락과 역동적인 몸짓 속에서, 우리는 우주가 결코 정체된 실체가 아니라, 신의 발끝에서 펼쳐지는 영원하고도 즐거운 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의 춤 속에서, 우주는 태어나고, 유지되며, 파괴되고, 마침내 구원을 얻습니다.

이처럼 세상을 초월한 고행자와 우주 전체를 무대로 춤추는 위대한 예술가라는, 지극히 비인간적이고도 초월적인 두 얼굴을 가진 시바에게는, 그러나 가장 놀랍고도 역설적인 또 다른 얼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마파티 (Umāpati)’, 즉 ‘우마 (파르바티)의 남편’으로서의, 지극히 인간적이고도 자비로운 ‘가장 (家長)’의 모습입니다. 모든 세속적 관계를 끊어버린 위대한 고행자가 어떻게 가장 헌신적인 남편이자 아버지가 될 수 있는가? 바로 이 역설 속에 시바 신앙의 가장 따뜻하고도 깊은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그의 첫 번째 아내였던 사티 (Satī)가 아버지의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시바는 사랑을 잃은 한 남자의 처절한 슬픔과 분노에 휩싸입니다. 그는 사티의 시신을 어깨에 메고 온 세상을 미친 듯이 떠돌며 슬픔의 춤을 추었고, 그의 분노는 온 우주를 파괴할 기세였습니다. 다른 신들이 그의 슬픔을 멈추기 위해 사티의 시신을 조각내어 온 세상에 흩뿌린 뒤에야, 그는 비로소 깊은 상실감 속에서 다시 히말라야의 고독한 명상 속으로 침잠해 들어갑니다.


그러나 사랑의 힘은 그를 다시 세상 속으로 불러냅니다. 죽은 사티는 히말라야 산의 딸, 파르바티 (Pārvatī)로 환생하여, 다시 시바의 아내가 되기 위한 운명을 타고납니다. 그러나 깊은 명상에 빠진 시바의 마음을 돌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파르바티는 자신의 아름다움이나 지위가 아니라, 시바 자신보다도 더 혹독한 고행 (tapas)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정화하고, 그를 향한 순수한 사랑의 힘을 증명해야만 했습니다. 마침내 그녀의 헌신에 감동한 시바는 명상에서 깨어나 그녀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이 두 신의 결혼은 단순한 남녀의 결합이 아니라, 우주적인 두 원리, 즉 움직이지 않는 순수한 의식 (Śiva, Puruṣa)과 그 의식을 일깨우고 활동하게 하는 역동적인 에너지 (Śakti, Prakṛti)의 신성한 합일입니다. 이 합일의 가장 완벽한 상징이 바로 ‘아르다나리슈바라 (Ardhanārīśvara)’, 즉 ‘반은 여성이신 주 (主)’의 형상입니다. 이 형상에서 시바의 몸의 오른쪽 절반은 남성의 모습을, 왼쪽 절반은 여성인 파르바티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궁극적 실재가 남성과 여성, 의식과 에너지, 고요함과 활동성이라는 모든 이원적 대립을 넘어선, 완전하고도 통합된 하나의 존재임을 보여주는 가장 심오한 신화적 표현입니다. 이 위대한 가장은 코끼리 머리를 한 지혜의 신 가네샤 (Gaṇeśa)와 전쟁의 신 카르티케야 (Kārttikeya)라는 두 아들을 얻게 되며, 그의 가족이 사는 카일라쉬 산은 모든 신과 인간, 심지어는 동물과 유령들까지도 함께 어울려 사는 조화로운 우주적 가정의 모델이 됩니다. 이처럼 시바의 신화는 우리에게 진정한 영성이란 세상을 버리는 것뿐만 아니라, 세상 속에서 사랑하고, 책임을 다하며, 그 모든 관계를 신성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그는 고독한 구도자에게는 내면의 스승으로, 춤추는 예술가에게는 영감의 원천으로, 그리고 평범한 가장에게는 자비로운 아버지이자 보호자로 다가오는, 가장 복합적이고도 매력적인 신입니다.









1-11.2. 푸라나 신화 속 시바와 파르바티, 그리고 가네샤



시바의 신성은 고독한 명상의 봉우리에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랑이라는 가장 강력한 힘과의 만남을 통해, 그리고 그 사랑이 낳은 예기치 않은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통해 그 가장 깊고도 따뜻한 본질을 드러냅니다. 푸라나의 신화 작가들은 추상적인 철학적 원리인 순수의식 (Śiva)과 역동적인 에너지 (Śakti)의 합일을, 시바와 그의 영원한 배우자인 파르바티 (Pārvatī)의 장대한 사랑 이야기로 그려냅니다. 그리고 그들의 결합이 낳은 아들, 코끼리 머리를 한 지혜의 신 가네샤 (Gaṇeśa)의 탄생 설화는, 신성한 가정 안에서조차 어떻게 오해와 비극, 그리고 궁극적인 화해가 우주적 질서를 재편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드라마입니다. 이 신성한 가족의 이야기는 힌두교의 심장부에서 가장 사랑받는 서사시 중 하나이며, 인간의 모든 관계 속에 깃든 신성한 가능성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이 위대한 사랑의 서사시는 사실 깊은 비극과 상실에서 시작됩니다. 시바의 첫 번째 아내였던 사티 (Satī)는, 그녀의 아버지 다크샤 (Daksha)가 주최한 성대한 제사에서 남편인 시바가 초대받지 못하고 오히려 모욕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요가의 불로 스스로의 몸을 불살라 버립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 소식을 들은 시바는 슬픔을 넘어선 우주적인 분노에 휩싸입니다. 그는 자신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뽑아 땅에 내리쳐, 모든 것을 파괴할 화신 비라바드라 (Vīrabhadra)를 만들어내고, 다크샤의 호화로운 제사장을 쑥대밭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그 분노가 가라앉은 뒤에 남은 것은 채울 수 없는 깊은 상실감이었습니다. 그는 아내의 시신을 어깨에 메고 온 세상을 의미 없이 떠돌았고, 그의 고통은 온 우주의 질서를 위협할 정도였습니다. 마침내 비슈누의 개입으로 사티의 몸이 흩어진 뒤에야, 시바는 세상과의 모든 인연을 끊고 히말라야의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 수천 년간 이어질 길고도 깊은 명상의 고독 속으로 침잠해 버립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초월한 고행신 시바의 모습 이면에, 사랑하는 이를 잃은 한 존재의 처절한 고통과 애착이 숨어 있음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서막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스스로를 불태웠던 사티는 히말라야 산맥의 왕 히마반 (Himavān)과 그의 아내 메나 (Menā)의 딸, 파르바티 (Pārvatī), 즉 ‘산의 딸’로 환생합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오직 시바만을 남편으로 맞이하겠다는 단 하나의 운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눈부신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지녔지만, 그녀는 자신의 외적인 매력만으로는 깊은 명상에 빠진 시바의 마음을 결코 돌릴 수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신들은 당시 타라카 (Tāraka)라는 강력한 악마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그 악마는 오직 시바의 아들에 의해서만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습니다. 다급해진 신들은 깊은 명상에 빠진 시바의 마음에 사랑의 불꽃을 지피기 위해, 사랑의 신 카마 (Kāma)를 보내 그의 꽃 화살을 쏘게 합니다. 그러나 카마의 화살이 시바의 심장에 닿으려는 순간, 명상에서 깨어난 시바는 자신의 수행을 방해한 것에 대한 분노로 이마의 제3의 눈을 뜹니다. 그 눈에서 뿜어져 나온 무서운 불길은 카마를 단숨에 한 줌의 재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 사건은 시바의 마음이 세속적인 욕망이나 외부의 조작으로는 결코 움직일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 실패를 통해, 파르바티는 시바를 얻는 유일한 길이 바로 시바 자신의 길, 즉 고행 (Tapas)의 길임을 깨닫습니다. 그녀는 궁전의 모든 안락함을 버리고, 나무껍질 옷을 입은 채 숲으로 들어갑니다. 그녀는 여름에는 자신을 둘러싼 네 개의 불길과 하늘의 타는 듯한 태양, 이 다섯 개의 불 (pañcāgni) 한가운데 서서 고행하고, 겨울에는 차가운 얼음물 속에 몸을 담근 채 명상했습니다. 그녀는 처음에는 과일만 먹다가, 나중에는 마른 나뭇잎만 먹고, 마침내 아무것도 먹지 않고 (aparṇā) 오직 숨으로만 연명하며 수천 년 동안 고행을 계속했습니다.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행의 열기는 온 세상을 뜨겁게 달굴 정도였습니다. 마침내 그녀의 흔들림 없는 헌신과 사랑의 깊이를 시험해보고자, 시바는 늙은 브라만 고행자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그녀에게 다가갑니다. 그는 시체가 타는 묘지에 살고, 뱀을 몸에 두르고 있으며, 아무런 재산도 없는 기이한 고행자 시바가 어떻게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공주인 그녀의 남편이 될 수 있겠냐며, 온갖 말로 시바를 헐뜯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파르바티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시바의 위대함을 열정적으로 변호하며 그 늙은 브라만을 꾸짖습니다. 그녀의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한 시바는 마침내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고, 그녀의 손을 잡으며 그녀를 아내로 맞이할 것을 약속합니다. 그들의 결혼은 온 우주가 축복하는 장엄한 축제였으며, 그것은 단순한 남녀의 결합이 아니라, 우주적인 두 원리, 즉 움직이지 않는 순수한 의식과 그 의식을 일깨우고 활동하게 하는 역동적인 에너지의 신성한 합일이었습니다.


이 위대한 부부의 사랑은 힌두교에서 가장 사랑받는 신 중 하나인 가네샤 (Gaṇeśa)의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가네샤의 탄생 이야기는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권위, 그리고 창조와 파괴 사이의 극적인 충돌을 담고 있습니다. 어느 날, 파르바티는 목욕을 하려는데, 자신의 처소를 지켜줄 충직한 문지기가 없음을 아쉬워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문질러 나온 때 (혹은 심황 가루)를 뭉쳐 아름다운 소년의 형상을 만들고, 그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자신의 아들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아무도, 심지어는 남편인 시바라 할지라도 자신의 허락 없이는 안으로 들여보내지 말라고 엄하게 명령합니다. 얼마 후, 오랜 명상을 마치고 돌아온 시바는 자신의 집 문 앞에서 길을 막고 서 있는 낯선 소년과 마주칩니다. 시바는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소년은 어머니의 명령을 따라 단호하게 그를 막아섭니다. 시바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그는 자신의 부하들인 가나 (Gaṇa)들에게 저 건방진 소년을 끌어내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파르바티의 힘으로 태어난 소년은 놀라운 용맹을 발휘하여 시바의 막강한 군대를 모두 물리칩니다. 이 격렬한 싸움은 단순한 부자간의 오해가 아니라, 어머니 (Śakti)의 창조적 권위와 아버지 (Śiva)의 초월적 권위 사이의 우주적인 힘겨루기를 상징합니다. 마침내 극도로 분노한 시바는 자신의 삼지창 트리슐라를 들어, 소년의 목을 단숨에 베어버리고 맙니다.


목욕을 마치고 나온 파르바티는 아들의 참혹한 죽음을 보고 슬픔을 넘어선 우주적인 분노에 휩싸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파괴적인 힘을 해방시켜 온 세상을 멸망시키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녀의 분노 앞에 모든 신들은 공포에 떨었고, 우주는 붕괴의 위기에 처합니다. 다급해진 시바는 아들을 되살려주겠다고 약속하고, 자신의 부하들에게 북쪽으로 가서 가장 먼저 마주치는 생명체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합니다. 부하들은 가장 먼저 신성한 코끼리를 만나 그 머리를 가져왔고, 시바는 그 코끼리의 머리를 아들의 몸에 붙여 그를 부활시킵니다. 아들의 부활을 보고 비로소 분노를 거둔 파르바티는 그를 자신의 품에 꼭 껴안습니다. 시바는 아들에게 ‘가네샤 (Gaṇeśa, 가나들의 주)’ 또는 ‘가나파티 (Gaṇapati)’라는 이름을 주고, 자신의 모든 부하들을 다스리는 우두머리로 임명합니다. 더 나아가, 그는 가네샤에게 가장 위대한 축복을 내립니다. 앞으로 모든 신들과 인간들은 어떤 중요한 일—제사, 여행, 공부, 사업 등—을 시작하기에 앞서, 반드시 가장 먼저 가네샤를 경배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를 먼저 경배하지 않고 시작한 일은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며, 그를 경배하는 자에게는 그가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 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이로써 가네샤는 ‘비그네슈바라 (Vighneśvara)’, 즉 ‘장애물의 주 (主)’라는 가장 중요한 신격 (神格)을 얻게 됩니다. 이처럼 시바, 파르바티, 그리고 가네샤의 이야기는 사랑과 오해, 파괴와 재창조, 그리고 궁극적인 화해를 통해 신성한 가족이 어떻게 형성되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새로운 신이 탄생하여 우주의 질서에 편입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가장 신성한 드라마입니다.










1-11.3. 나야나르: 시바를 향한 열정의 찬가



남인도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비슈누를 향한 사랑의 노래가 알바르들의 목소리를 통해 울려 퍼지고 있을 때, 바로 그 동일한 시대, 동일한 땅 위에서는 또 다른 종류의 신성한 광기, 즉 위대한 신 시바를 향한 불꽃같은 헌신의 노래가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알바르들이 비슈누의 자비로운 현존 속에서 사랑의 기쁨과 그리움을 노래했다면, 이 새로운 순례자들은 히말라야의 고독한 고행자이자 우주적 춤의 왕인 시바의 예측할 수 없고 때로는 두려운 모습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불태우는 열정적인 사랑을 노래했습니다. 이들을 ‘나야나르 (Nāyaṉār)’, 즉 ‘시바의 종’ 혹은 ‘인도자’라고 부릅니다. 총 예순세 명으로 전해지는 이 시인 성자들의 삶과 노래는, 박티 (Bhakti) 운동이 결코 하나의 단일한 색깔을 가진 흐름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 그들의 길은 부드러움과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때로는 극적인 자기희생과 광적인 헌신을 통해서도 신에게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격렬하고도 장엄한 영혼의 서사시입니다.


알바르들과 마찬가지로, 나야나르들 역시 사회의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운동이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브라만 학자와 왕족도 있었지만, 농부, 사냥꾼, 도공, 심지어는 ‘불가촉천민’으로 여겨졌던 계층의 사람들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시바의 은총 앞에서는 세상의 모든 차별이 무의미하다는 강력한 선언이었습니다. 그들 역시 권위적인 산스크리트어가 아닌, 민중의 언어인 타밀어로 자신들의 체험을 노래했으며, 그들의 노래는 ‘테바람 (Tēvāram)’과 ‘티루바사감 (Tiruvācakam)’ 등으로 엮여, 오늘날 남인도 시바파 사원에서 베다만큼이나 신성한 경전으로 숭배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적 표현 방식은 종종 알바르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극적인 형태를 띠었습니다. 시바는 자비로운 구원자인 동시에, 모든 것을 파괴하는 두려운 신이며, 세상의 모든 규범을 초월한 위대한 고행자이기 때문입니다. 시바를 향한 사랑은 종종 평범한 인간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절대적인 자기 포기와 헌신을 요구했습니다.


나야나르들의 삶은 바로 이 절대적인 헌신이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설적인 일화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자 칸나파 (Kaṇṇappa)는 본래 숲에서 사냥을 하던 문맹의 사냥꾼이었습니다. 그는 우연히 숲속에서 시바의 신상 (liṅga, 링감)을 발견하고, 그 순간 주체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집니다. 그는 제사 의례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시바를 섬기기 시작합니다. 그는 강물을 입에 머금어 와 신상을 씻기고, 숲에서 갓 사냥한 멧돼지 고기를 직접 씹어 가장 부드러운 부분만을 골라 바쳤으며, 머리에 꽂고 있던 야생화를 신상 위에 장식했습니다. 브라만 사제의 눈에는 이 모든 것이 불경하기 짝이 없는 행위였지만, 시바는 그의 순수한 사랑을 기쁘게 받았습니다. 어느 날, 칸나파는 신상의 한쪽 눈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는 고통에 울부짖으며 온갖 약초를 발라보지만 피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눈을 뽑아 신상의 눈에 바치기로 결심하고, 한쪽 눈을 뽑아 붙이자 기적처럼 피가 멎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이번에는 신상의 다른 쪽 눈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칸나파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남은 눈마저 뽑아 바치려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두 눈을 모두 뽑으면 신상의 위치를 알 수 없을 것을 염려하여, 자신의 발을 신상의 눈 옆에 디딤돌로 삼아 위치를 표시한 뒤, 화살을 들어 자신의 마지막 남은 눈을 뽑으려 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의 절대적인 사랑에 감동한 시바가 나타나 그의 손을 붙잡으며, 그를 자신의 가장 위대한 헌신자 중 하나로 받아들였다고 전해집니다.


또 다른 위대한 성자인 아파르 (Appar)는 본래 자이나교의 고승이었으나, 극적인 회심을 통해 시바 신앙으로 돌아온 인물입니다. 그의 회심에 분노한 왕은 그를 죽이기 위해 온갖 끔찍한 형벌을 내립니다. 그를 불타는 석회 가마에 던져 넣고, 독이 든 음식을 먹였으며, 성난 코끼리 앞에 던지고, 바다 한가운데 돌에 묶어 던져 넣었습니다. 그러나 아파르는 그 모든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오직 시바의 이름을 부르며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시바의 은총은 매번 그를 기적적으로 구해냈습니다. 그의 삶은 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어떻게 죽음의 공포마저도 이겨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언이 되었습니다. 그의 노래는 깊은 철학적 성찰과 함께, 시바를 향한 애틋하고도 겸손한 사랑의 고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처럼 나야나르들의 길은 종종 상식을 뛰어넘는 열정과 헌신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사회적 규범이나 개인의 안락함보다 시바를 향한 사랑을 절대적인 최우선 순위에 두었습니다. 그들의 노래는 감미로운 사랑의 고백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세속적인 삶의 덧없음을 질타하고, 오직 시바의 발치 아래에서만 진정한 안식을 찾을 수 있다는 준엄한 가르침이기도 했습니다. 알바르들이 신의 자비로운 현존 속에서 기쁨을 노래했다면, 나야나르들은 종종 신의 부재와 인간 실존의 고통 속에서 더욱 격렬하게 신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물과 고통은 결코 절망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영혼을 정화하여 마침내 위대한 신 시바의 압도적인 현존과 마주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사랑의 불꽃이었습니다. 이처럼 알바르와 나야나르의 두 강물은, 비록 그 빛깔과 온도는 달랐지만, 결국에는 박티라는 하나의 거대한 바다로 흘러들어, 힌두교라는 종교에 철학의 깊이와 더불어 민중의 뜨거운 심장을 부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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