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장: 비슈누와 그의 화신들

by 이호창

제1-10장: 비슈누와 그의 화신들


1-10.1. 『라마야나』: 다르마의 화신 라마의 서사시


인도의 양대 서사시 중 하나인 『라마야나, Rāmāyaṇa』는 ‘라마의 여정’이라는 뜻으로, 『마하바라타』와 더불어 힌두교의 정신세계를 형성해 온 가장 위대한 이야기입니다. 전설적인 시성 (詩聖) 발미키 (Vālmīki)가 기원전 5세기에서 4세기경 그 초기 형태를 엮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후 수 세기에 걸쳐 내용이 더해지며 오늘날의 모습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이 장대한 서사시는 단순한 영웅의 모험담이 아닙니다. 그것은 비슈누의 일곱 번째 화신인 라마 왕자의 삶을 통해, 인간이 마주하는 모든 관계와 상황 속에서 ‘다르마’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경전입니다.


‘다르마 (Dharma)’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경전 속에 기록된 딱딱한 법률 조항입니까, 아니면 철학자들이 논하는 추상적인 의무의 개념입니까? 힌두 사상의 위대한 지혜는 이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논증이 아닌 하나의 장엄한 이야기로 대답합니다. 그 이야기의 이름은 『라마야나』, 즉 ‘라마의 여정’이며, 그 주인공은 단순한 영웅이나 왕이 아니라, ‘다르마 그 자체가 인간의 형상을 입고 이 땅을 걸어간 존재 (Rāmo vigrahavān dharmaḥ)’, 바로 라마 (Rāma)입니다. 시성 (詩聖) 발미키 (Vālmīki)가 엮어낸 이 위대한 서사시는, 이상적인 아들이자 남편, 형제이자 왕으로서, 그리고 심지어는 고뇌하는 한 인간으로서 라마가 겪었던 모든 시련과 선택의 순간들을 따라가며, 우리에게 다르마가 결코 단순한 규칙의 준수가 아니라, 때로는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희생을 감수하며 걸어가야 하는 살아있는 길임을 보여줍니다. 『라마야나』는 힌두교의 가장 사랑받는 경전 중 하나이자, 수억만 인도인들의 삶과 문화 속에 가장 깊이 뿌리내린 도덕적 나침반입니다.


이야기는 코살라 (Kośala) 왕국의 위대한 왕 다샤라타 (Daśaratha)가 오랫동안 자식이 없어 고뇌하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신들을 향한 간절한 제사를 통해 마침내 네 명의 아들을 얻게 되는데, 그들이 바로 라마 (Rāma), 락슈마나 (Lakṣmaṇa), 바라타 (Bharata), 그리고 샤트루그나 (Śatrughna)입니다. 그중에서도 맏아들 라마는 지고한 수호신 비슈누가, 열 개의 머리를 가진 사악한 악마들의 왕 라바나 (Rāvaṇa)의 폭정으로부터 신들과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지상에 내려온 완전한 화신 (Avatāra)이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모든 덕성을 갖춘 완벽한 왕자의 모습으로 자라납니다. 그는 용맹하고 지혜로웠으며,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자비로웠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효자였고, 동생들에게는 자애로운 형이었으며, 백성들에게는 미래의 희망이었습니다. 그는 미틸라 (Mithilā) 왕국의 공주이자 대지의 여신의 딸인 시타 (Sītā)와 운명적으로 만나 결혼함으로써, 이상적인 부부의 연을 맺습니다. 마침내 늙은 다샤라타 왕이 모든 백성의 축복 속에서 라마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로 결정했을 때, 그의 삶은 영원히 영광과 행복으로 가득 찰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다르마의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 대관식 전날 밤, 비극의 그림자가 아요디아 (Ayodhyā)의 궁전을 덮칩니다. 다샤라타 왕의 총애를 받던 후비 카이케이 (Kaikeyī)가, 일찍이 왕에게서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겠다는 두 가지 약속을 받은 것을 기억해 낸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 바라타를 왕으로 만들어 달라는 첫 번째 소원과, 라마를 14년 동안 숲으로 추방해 달라는 두 번째 소원을 왕에게 요구합니다. 이 청천벽력 같은 요구 앞에서 다샤라타 왕은 슬픔과 충격으로 거의 실신 상태에 빠집니다. 그는 사랑하는 아들 라마를 차마 내칠 수 없었고, 그렇다고 한번 뱉은 왕의 약속을 어길 수도 없었습니다. 왕국 전체가 혼란과 분노에 휩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비극의 한가운데서, 라마는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오히려 슬픔에 잠긴 아버지를 위로하며 그 운명을 받아들입니다.


“아버지, 저는 왕국도, 쾌락도, 심지어는 시타마저도 원하지 않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아버님께서 진실한 분으로 남는 것입니다. 맹세를 지키십시오.”


이것이 바로 라마가 보여준 첫 번째 위대한 다르마, 즉 ‘아들로서의 의무 (putra-dharma)’입니다. 그에게 아버지의 말은 곧 법이었으며, 자신의 모든 권리와 행복보다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아들의 길이었습니다.


라마의 결정에, 그의 사랑하는 아내 시타와 충실한 동생 락슈마나는 기꺼이 동행하기로 결심합니다. 시타는 왕궁의 안락함을 버리고 남편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야말로 ‘아내로서의 의무 (patnī-dharma)’라고 선언하며, 락슈마나는 형을 섬기고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유일한 삶의 목적인 ‘동생으로서의 의무 (bhrātṛ-dharma)’라고 맹세합니다. 이 세 사람은 왕족의 화려한 옷을 벗고 나무껍질로 만든 고행자의 옷으로 갈아입은 채, 슬픔에 잠긴 백성들을 뒤로하고 깊은 숲속으로 유배의 길을 떠납니다. 이들의 숲속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동시에 서로에 대한 사랑과 헌신으로 가득 찬 평화로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은 숲속의 현자들을 만나 지혜를 배우고, 사나운 악마들을 물리치며 은둔자들을 보호합니다. 그러나 운명은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랑카 (Laṅkā) 섬의 막강한 악마 왕 라바나는 우연히 시타의 눈부신 아름다움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녀를 차지하려는 사악한 욕망에 사로잡힙니다. 그는 황금 사슴으로 변신한 부하를 이용해 라마와 락슈마나를 오두막에서 멀리 꾀어낸 뒤, 슬픔에 잠긴 현자로 변장하여 홀로 남은 시타에게 접근합니다. 그는 마침내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고, 저항하는 시타를 강제로 자신의 비행 마차에 태워 하늘로 날아 랑카의 궁전에 가두어 버립니다.


사냥에서 돌아와 텅 빈 오두막을 발견한 라마는 절망에 빠집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평범한 남편처럼 슬픔에 겨워 울부짖으며, 숲속의 모든 나무와 동물들에게 시타의 행방을 묻습니다. 그의 고통은 신의 화신으로서의 위엄을 모두 잊어버린, 지극히 인간적이고도 처절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의 여정은 개인적인 슬픔을 넘어, 불의에 의해 짓밟힌 다르마를 회복하기 위한 거대한 성전 (聖戰)으로 변모합니다. 이것이 바로 라마가 보여주는 또 다른 위대한 다르마, 즉 납치된 아내를 구출하고 악을 응징해야 하는 ‘남편이자 전사로서의 의무’입니다. 그는 락슈마나와 함께 시타를 찾아 남쪽으로 향하는 험난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원숭이들의 왕국 키슈킨다 (Kīṣkindhā)에 도달하여, 왕위를 빼앗기고 쫓겨난 원숭이 왕 수그리바 (Sugrīva)와 동맹을 맺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가장 위대한 헌신자이자 조력자가 될 바람의 신의 아들, 하누만 (Hanumān)을 만나게 됩니다. 하누만은 자신의 신적인 힘과 변신술, 그리고 라마를 향한 절대적인 충성심을 바탕으로, 거대한 바다를 단숨에 뛰어넘어 랑카 섬에 잠입하여 시타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그녀에게 라마의 반지를 전해줌으로써 희망의 불씨를 되살립니다.


하누만이 가져온 정보를 바탕으로, 라마와 락슈마나는 수그리바가 이끄는 거대한 원숭이와 곰 군대와 함께 바다를 건너 랑카를 침공합니다.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장대한 전쟁이 시작됩니다. 그것은 단순히 두 군대의 충돌이 아니라, 우주적 질서인 다르마와 혼돈의 힘인 아다르마 사이의 최후의 결전이었습니다.


라바나의 군대에는 산처럼 거대한 몸집으로 잠에서 깨어나 수천 명을 단숨에 삼켜버리는 쿰바카르나 (Kumbhakarṇa)와, 마법 구름 속에 몸을 숨긴 채 보이지 않는 신의 무기들을 쏘아대며 신들의 왕 인드라마저 굴복시킨 인드라지트 (Indrajit)와 같은 무시무시한 악마 전사들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위대한 원숭이 영웅들이 쓰러지고, 전세는 절망적으로 기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침내 인드라지트가 쏜 치명적인 신의 창에 락슈마나마저 가슴을 꿰뚫려 쓰러졌을 때, 라마의 슬픔은 온 세상을 뒤덮을 듯했습니다. 그는 동생의 싸늘한 몸을 끌어안고, 신의 화신으로서의 위엄마저 잊은 채 한 명의 형으로서 처절하게 통곡했습니다. 그러나 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라마는 결코 자신의 다르마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누만이 자신의 몸을 거대하게 키워 히말라야 산맥 전체를 통째로 들어 올려 약초를 가져오는 기적을 행한 끝에 락슈마나가 기적적으로 소생하자, 라마는 다시 한번 정의를 위한 싸움에 나섭니다.


그는 신성한 무기를 사용하여 마침내 라바나의 모든 아들과 형제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최후의 결전에서 열 개의 머리를 가진 악마 왕 라바나와 직접 마주합니다. 두 영웅의 싸움은 온 우주를 뒤흔들었습니다. 라바나의 머리는 라마의 화살에 잘려나가도 계속해서 다시 돋아났고, 그의 힘은 끝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침내 라마는 창조주 브라흐마로부터 받은 궁극의 무기, 브라흐마스트라 (Brahmāstra)를 사용하여 라바나의 심장을 꿰뚫어 그를 쓰러뜨립니다. 악이 패배하고 정의가 승리하는 순간입니다.


라마는 마침내 아쇼카 숲에 갇혀 있던 시타와 감격적으로 재회합니다. 이 재회는 단순히 사랑하는 아내를 되찾은 기쁨을 넘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던 기나긴 시련의 끝을 의미했습니다. 오래전 아버지 다샤라타 왕이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던 바로 그 전날 밤, 계모인 카이케이 왕비는 과거에 왕에게서 받은 두 가지 소원을 사용하여 자신의 아들 바라타를 왕으로 만들고, 라마를 14년 동안 숲으로 추방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아들로서의 다르마를 따라 왕좌를 버리고 기꺼이 유배길에 올랐던 바로 그 14년의 세월이, 라바나를 물리침으로써 마침내 끝이 난 것입니다.


모든 시련을 이겨낸 그들을 태운 하늘을 나는 비행 마차 푸슈파카(Puṣpaka)는 영광의 빛을 내뿜으며 고향 아요디아를 향해 날아오릅니다. 그가 없는 동안 오직 형의 신발을 왕좌에 모시고 섭정을 하며 경건하게 기다리고 있던 동생 바라타는, 눈물로 형을 맞이하며 왕위를 돌려줍니다. 라마는 마침내 모든 백성의 환호 속에서 아요디아의 왕좌에 오릅니다.


그 순간, 이후 수천 년 동안 이상적인 통치의 대명사가 될 ‘라마 라지야 (Rāma-rājya)’, 즉 라마의 왕국이 시작됩니다. 그의 통치 아래, 세상은 다시 황금시대를 맞이했습니다. 모든 백성은 자신의 다르마를 기쁘게 행하며 조화롭게 살아갔고, 대지는 풍요로운 결실을 맺어 굶주림이 사라졌습니다. 질병과 슬픔은 자취를 감추었고, 거짓과 불의는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들은 자식의 죽음을 보지 않았고, 아내들은 과부가 되지 않았습니다. 늑대와 양이 함께 뛰노는 지상낙원이 바로 그의 왕국에서 구현된 것입니다.


그러나 라마의 이야기는 여기서 행복하게 끝나지 않습니다. 다르마의 길은 개인적인 행복의 성취에서 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라마는 한 세탁부가 자신의 아내를 의심하며 “나는 라바나의 집에 머물렀던 여자를 다시 받아들인 라마 왕처럼 어리석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이 소문은 라마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힙니다. 그는 시타가 불의 시련 (Agni-parīkṣā)을 통해 자신의 순결을 이미 증명했음을 알고 있었고, 그녀를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신뢰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한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왕의 아내가 백성들의 의심을 받는다면, 왕의 권위와 나라의 도덕적 기강이 흔들릴 것이라고 그는 고뇌합니다. 개인적인 사랑과 공적인 의무 사이의 이 끔찍한 딜레마 앞에서, 라마는 결국 눈물을 머금고 가장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립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임신한 상태였던 시타를 숲속에 버리라고 락슈마나에게 명령합니다. 이것이 바로 라마가 보여준 가장 비극적이고도 숭고한 다르마, 즉 ‘왕으로서의 의무 (rāja-dharma)’입니다. 그에게 왕의 다르마는 개인의 행복과 감정을 희생하여, 오직 백성들의 안녕과 왕국의 질서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라마야나』는 다르마가 결코 흑백논리로 재단할 수 없는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길임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라마의 삶은 그 길 위에서 우리가 겪게 될 모든 고뇌와 희생의 원형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인간의 위대함에 대한 영원한 서사시입니다.









1-10.2. 『바가바타 푸라나』: 매혹적인 신 크리슈나의 사랑 이야기


『바가바타 푸라나』는 힌두교의 가장 중요한 푸라나 (고대 이야기 모음집) 중 하나로, 전통적으로는 『마하바라타』를 집필한 현자 비야사 (Vyāsa)가 말년에 영적인 만족을 얻기 위해 썼다고 전해집니다. 학자들은 이 문헌이 서기 9세기에서 10세기경 남인도에서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이는 당시 남인도에서 꽃피웠던 알바르 (Āḻvār) 성자들의 열정적인 비슈누 신앙의 영향을 깊이 반영합니다. 총 12권으로 구성된 이 방대한 서사시는 비슈누 신과 그의 다양한 화신 (아바타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단연 크리슈나의 매혹적인 삶과 신성한 유희 (Līlā, 릴라)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문헌의 목적은 논리적 설득이 아니라, 신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통해 독자의 마음에 사랑과 헌신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만약 『라마야나』가 우리에게 ‘어떻게 이상적인 인간이 될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위대한 서사시라면, 힌두교의 또 다른 심장인 『바가바타 푸라나, Bhāgavata Purāṇa』는 우리에게 ‘어떻게 신과 사랑에 빠질 것인가’를 노래하는 가장 감미롭고도 열정적인 사랑의 시입니다. 라마의 길 (道)이 모든 규칙과 규범 (maryādā)을 준수하며 걸어가야 하는 곧고 험준한 산길이었다면, 크리슈나의 길은 모든 경계와 둑을 무너뜨리고 자유롭게 흘러가는 사랑의 강물과도 같습니다. 『바가바타 푸라나』는 힌두교의 수많은 경전 중에서도 박티 (Bhakti), 즉 ‘신을 향한 헌신적 사랑’의 교과서로 불리며, 지고한 신이 어떻게 가장 인간적이고도 매혹적인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내려와, 우리의 이성이 아니라 우리의 가슴을 송두리째 훔쳐 가는지 그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크리슈나 (Kṛṣṇa)는 『바가바드 기타』에서 아르주나에게 우주적 진리를 설했던 장엄하고 위엄 있는 스승의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바가바타 푸라나』의 크리슈나는 장난기 가득한 아이이며, 마음을 설레게 하는 연인이고, 모든 것을 내던져 따르게 만드는 신비로운 피리 소리의 주인입니다.


이야기는 어둠과 폭정의 시대를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마투라 (Mathurā)의 포악한 왕 캄사 (Kaṃsa)는 자신의 여동생 데바키 (Devakī)의 여덟 번째 아들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공포에 휩싸입니다. 그는 데바키와 그녀의 남편 바수데바 (Vasudeva)를 감옥에 가두고, 그들이 낳는 아기들을 차례로 죽이는 끔찍한 악행을 저지릅니다. 마침내 폭풍우가 몰아치는 한밤중, 여덟 번째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감옥은 신비로운 빛으로 가득 찹니다. 지고한 신 비슈누가 바로 그 아기의 모습으로 화신 (Avatāra)한 것입니다. 그는 부모에게 자신을 야무나 (Yamunā) 강 건너 고쿨라 (Gokula) 마을의 목동 우두머리 난다 (Nanda)의 집으로 데려가, 그곳에서 갓 태어난 여자 아기와 바꾸라고 명합니다. 신의 가호 아래, 감옥의 문은 저절로 열리고, 쇠사슬은 스르르 풀리며, 잠든 간수들은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바수데바는 갓난아기 크리슈나를 바구니에 담아 머리에 이고, 불어난 강물을 향해 걸어 들어갑니다. 거대한 뱀 아난타가 자신의 머리를 우산처럼 펼쳐 아기를 비로부터 보호하는 가운데, 거친 강물은 스스로 길을 열어 그가 무사히 강을 건너도록 돕습니다. 이 기적적인 탄생과 탈출의 이야기는, 크리슈나의 삶이 시작부터 인간의 논리와 한계를 뛰어넘는 신성한 유희 (Līlā)임을 선언하는 서막과도 같습니다.


고쿨라와 브린다반 (Vṛndāvan)의 목가적인 마을에서, 크리슈나는 난다와 그의 아내 야쇼다 (Yaśodā)의 아들로 자라납니다. 그는 자신의 신성을 깊이 숨긴 채, 평범한 목동 아이들과 어울려 놀지만, 그의 모든 행동 속에서는 신의 장난기 가득한 사랑과 무한한 힘이 끊임없이 새어 나옵니다. 그는 온 마을의 집을 돌아다니며 갓 만든 버터를 훔쳐 먹는 귀여운 도둑 (Makhan Chor)입니다. 야쇼다와 마을 여인들은 그의 장난에 화를 내면서도, 그의 사랑스러운 미소 앞에서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그를 더욱 깊이 사랑하게 됩니다. 여기서 버터를 훔치는 행위는 단순한 장난이 아닙니다. 우유를 저어 가장 순수한 정수인 버터를 만들 듯, 헌신자들이 오랜 시간 쌓아온 사랑의 가장 순수한 결정체를 신이 기쁘게 받아들인다는 심오한 상징입니다. 어느 날, 야쇼다가 흙을 먹은 크리슈나를 꾸짖으며 입을 벌려보라고 했을 때, 그녀는 그 작은 입속에서 온 우주, 즉 해와 달과 별, 산과 바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자기 자신까지도 목격하고 경악합니다. 이 순간,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평범한 아이가 아님을 어렴풋이 깨닫지만, 신의 마야는 다시 그녀의 기억을 덮어, 그녀가 그를 계속해서 순수한 어머니의 사랑으로 돌볼 수 있게 합니다. 이처럼 크리슈나의 어린 시절 (Bāla-līlā)은 유한한 인간의 형상 속에 무한한 우주가 깃들어 있으며, 가장 순수한 사랑은 이성적인 앎을 넘어선다는 것을 보여주는 따뜻하고도 신비로운 일화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크리슈나는 단지 사랑스러운 장난꾸러기일 뿐만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보호하는 강력한 구원자입니다. 그는 자신을 죽이기 위해 캄사 왕이 보낸 온갖 무시무시한 악마들을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 가볍게 물리칩니다. 그는 야무나 강을 독으로 오염시킨 거대한 독사 칼리야 (Kāliya)의 머리 위에서 춤을 추며 그를 제압하고 강을 정화시킵니다. 그의 가장 위대한 보호자로서의 면모는 고바르다나 산 (Govardhana Hill)을 들어 올린 이야기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브린다반의 목동들은 전통적으로 베다의 신인 인드라에게 제사를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크리슈나는 그들에게, 자신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저 멀리 있는 인드라가 아니라, 소들에게 풀을 제공하고 자신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는 바로 이 고바르다나 산과 소들이니, 그들을 경배하라고 가르칩니다. 이에 분노한 인드라는 온 세상을 물에 잠기게 할 만큼 끔찍한 폭우를 7일 밤낮으로 쏟아붓습니다. 모든 생명이 공포에 떨며 크리슈나에게 구원을 요청할 때, 어린 목동 크리슈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거대한 고바르다나 산을 자신의 왼쪽 새끼손가락 하나로 가볍게 들어 올려, 그 거대한 산을 우산처럼 삼아 모든 마을 사람들과 가축들을 비로부터 완벽하게 보호합니다. 이 경이로운 기적 앞에서 교만했던 인드라는 마침내 무릎을 꿇고 크리슈나의 신성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베다의 낡은 권위가 저물고, 사랑과 헌신의 새로운 신인 크리슈나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크리슈나가 소년으로 성장하면서, 그의 신성한 매력은 이제 온 브린다반의 젊은 여인들, 즉 고피 (Gopī)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사랑의 자석이 되어, 모든 영혼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특히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가을밤, 크리슈나가 숲속에 서서 그의 마법의 피리 반수리 (Bāṃsurī)를 불기 시작하면, 그 신비로운 선율은 모든 시공간을 넘어 울려 퍼집니다. 그 피리 소리는 단순한 음악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원의 고향으로부터 들려오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신의 애타는 부르심입니다. 그 소리를 들은 고피들은 마치 최면에 걸린 듯, 하던 모든 일을 내팽개칩니다. 남편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던 여인은 끓고 있는 우유를 잊어버리고, 아이에게 젖을 물리던 어머니는 아이를 내려놓고, 가족의 시중을 들던 며느리는 모든 체면을 잊어버립니다. 그들은 남편의 만류와 사회의 비난 (loka-lajja)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그 피리 소리의 주인을 만나기 위해 미친 듯이 한밤중의 숲속으로 달려 나갑니다. 이것은 단순한 불륜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개별 영혼이 지고한 신의 부르심을 들었을 때, 세속의 모든 의무 (dharma)와 집착, 그리고 ‘나’라는 에고마저도 모두 버리고 오직 신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박티 사상의 가장 급진적이고도 아름다운 상징입니다.


숲속에 모인 고피들 앞에서, 크리슈나는 그 유명한 ‘라사 릴라 (Rāsa-līlā)’, 즉 ‘사랑의 유희의 춤’을 시작합니다. 그는 자신의 신비로운 힘으로 스스로를 무수히 복제하여, 모든 고피들 사이사이에 서서 각각의 고피와 단둘이 춤을 춥니다. 고피들은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모든 고피는 자신의 바로 곁에서 크리슈나가 자신의 손을 잡고 사랑의 눈빛으로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낍니다.


이것은 신이 비록 하나이지만, 모든 헌신자에게 각자 개별적이고도 완전한 사랑을 베푼다는 심오한 신학적 진리를 담고 있는 장엄한 비유입니다. 이 춤의 황홀경 속에서 고피들은 ‘나’라는 개별적 자아를 완전히 잊고, 오직 크리슈나와의 합일이라는 무한한 지복 속에 녹아듭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고피들 중에서 크리슈나의 사랑을 가장 온전히 받았으며, 그를 향한 사랑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존재가 바로 라다 (Rādhā)입니다. 비록 『바가바타 푸라나』에서는 그녀의 이름이 명시적으로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후대의 박티 전통에서 그녀는 개별 영혼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하고도 순수한 사랑의 경지를 상징하는 최고의 여신으로 숭배받게 됩니다.


라다와 크리슈나의 사랑 이야기는, 신과 영혼이 서로를 갈망하며 마침내 하나가 되는, 우주에서 가장 감미롭고도 신성한 사랑의 노래입니다. 이처럼 『바가바타 푸라나』는 크리슈나라는 가장 인간적이고도 매혹적인 신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결코 고통스러운 고행이나 메마른 지성의 길이 아닐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오히려 사랑과 기쁨, 그리고 아름다움 속에서 신과 함께 춤추는, 영혼의 가장 황홀한 축제가 될 수 있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1-10.3. 비슈누 신앙의 종교적 실천: 절기와 순례


비슈누 신앙의 위대함은 그것이 단지 고대의 경전 속에 박제된 장엄한 신화나, 소수의 철학자들이 논하는 심오한 사상 체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 진정한 힘은, 수천 년의 시간을 넘어 바로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수억만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그들의 달력과 지도 위에, 그리고 그들의 기쁨과 눈물 속에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신화는 더 이상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매년 돌아오는 절기 (utsava) 속에서 재현되는 현재의 드라마가 되며, 사상은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신성한 땅을 향해 걷는 순례 (yātrā)의 발걸음 속에서 체험되는 살아있는 진리가 됩니다. 비슈누 신앙의 종교적 실천은 바로 이처럼 추상적인 진리를 구체적인 삶의 경험으로, 개인적인 믿음을 공동체의 축제로,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신을 만질 수 있는 현실로 변모시키는 위대한 연금술의 과정입니다.


힌두교의 시간은 신들의 탄생과 위대한 행적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축제, 즉 절기 (utsava)들을 통해 신성한 리듬을 갖습니다. 그중에서도 비슈누 신앙의 두 위대한 기둥인 라마와 크리슈나의 탄생을 기리는 축제는, 힌두교가 제시하는 두 가지 다른 영성의 길을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하나는 질서와 규범 속에서 발견되는 기쁨의 길이며, 다른 하나는 모든 규칙을 뛰어넘는 사랑과 유희의 길입니다.


먼저, 라마의 탄생일인 라마 나바미 (Rāma Navamī)는 ‘다르마 (Dharma)’, 즉 질서와 규범 속에서 발견되는 기쁨을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봄의 기운이 만연한 힌두력 차이트라 (Chaitra) 달 아홉 번째 날에 열리는 이 축제의 분위기는 라마의 성품을 그대로 닮아 있습니다. 라마는 이상적인 아들, 남편, 그리고 왕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사회적, 도덕적 의무를 완벽하게 수행한 ‘질서의 화신’이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의 탄생을 기리며 경건한 단식을 하고, 『라마야나』의 신성한 구절들을 낭송하며 그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특히 라마의 탄생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에 이르면, 사원은 경건한 찬가 (bhajan)와 신자들의 환희에 찬 외침으로 가득 찹니다. 많은 가정과 사원에서는 갓 태어난 아기 라마의 작은 신상을 아기 침대에 눕히고 그 침대를 부드럽게 흔들어주는 의식을 행하는데, 이는 지고한 신이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신 그 경이로운 순간을 기념하고 그에 대한 부모와 같은 사랑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행위입니다. 이날 라마의 신상은 화려한 행렬을 이루어 거리를 행진하고, 신자들은 그 뒤를 따라 춤추고 노래하며 라마의 승리와 영광을 찬양하는 구호 “자이 스리 람 (Jai Sri Ram)!”을 외칩니다. 이처럼 라마 나바미는 단순한 생일 축하를 넘어, 모든 신자들이 존경과 의무, 그리고 사회적 조화 속에서 발견되는 안정되고 숭고한 기쁨을 되새기고, 자신의 삶 속에서 다르마를 실천할 것을 다짐하는 신성한 갱신의 시간입니다.


반면에, 몬순의 비가 대지를 적시는 슈라바나 (Shravana) 달에 열리는 크리슈나의 탄생일, 잔마슈타미 (Janmāṣṭamī)는 이 모든 규칙을 즐겁게 넘어섭니다. 이 축제는 ‘릴라 (Līlā)’, 즉 신의 자유로운 사랑과 예측 불가능한 유희를 기념합니다. 크리슈나는 규칙을 따르기보다 사랑을 위해 기꺼이 규칙을 넘어서는 신이었습니다. 그는 이웃집 버터를 훔치는 장난꾸러기였고, 사회적 규범을 넘어 목동 여인들과 사랑의 춤을 추었던 자유로운 영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제 역시 경건함보다는 환희와 사랑의 유희로 가득 찹니다.


특히 축제의 절정이 깊은 한밤중에 이루어지는 이유는, 그의 탄생 자체가 어둡고 삼엄한 감옥에서 모든 규칙을 깨고 비밀리에 이루어진 극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은 바로 그 시간을 기념하기 위해 하루 종일 단식을 하다가 자정이 되어서야 비로소 음식을 나눕니다. 사원들은 화려한 조명과 꽃으로 장식되어, 크리슈나의 어린 시절이 펼쳐졌던 목가적인 브린다반의 숲으로 변모하고, 갓 태어난 아기 크리슈나의 신상은 우유와 꿀, 버터기름으로 정성껏 목욕시킨 뒤 새로운 옷을 입고 아기 침대에 눕혀집니다. 특히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 지방에서는 ‘다히 한디 (dahi handi)’라는 역동적인 행사가 펼쳐지는데, 이는 어린 크리슈나의 버터 도둑질을 재현하는 것입니다. 젊은 남자들은 아슬아슬하게 인간 탑을 쌓아 높이 매달린 버터와 요구르트 항아리를 깨뜨리기 위해 경쟁하고, 구경꾼들은 그들에게 물을 뿌리며 응원합니다. 또한, 많은 가정에서는 아이들을 꼬마 크리슈나와 그의 연인 라다처럼 꾸미고, 그들의 신성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연극과 춤 공연이 밤새도록 이어집니다. 잔마슈타미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가장 사랑스럽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오신 신, 그 장난기 가득한 신과의 친밀하고 즐거운 관계를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이 축제는 정해진 규범을 따르는 것만이 아니라, 때로는 모든 것을 내던지는 열정적인 사랑과 순수한 기쁨 속에서도 신성을 만날 수 있다는 박티 신앙의 핵심을 보여줍니다.


비슈누 신앙의 종교적 실천은 이처럼 시간의 축을 따라 펼쳐질 뿐만 아니라, 공간의 축을 따라서도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것이 바로 티르타 야트라 (tīrtha-yātrā), 즉 ‘성지 순례’입니다. ‘티르타’는 문자적으로 ‘강가의 여울’이나 ‘건너는 장소’를 의미하며, 신화적으로나 영적으로 신성한 기운이 충만한 장소를 가리킵니다. 이곳은 천상과 지상의 경계가 얇아지는 곳이며, 평범한 인간이 신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문과도 같은 곳입니다. 신자들은 이러한 성지를 순례함으로써, 세속의 삶 속에서 쌓아온 부정적인 카르마를 정화하고, 신의 은총을 구하며, 영적인 공덕 (puṇya)을 쌓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힌두교의 모든 종파는 각자 고유한 성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인도 대륙의 네 모퉁이에 위치한 네 개의 위대한 성지를 순례하는 ‘차르 담 (Chār Dhām)’은 모든 힌두교도들의 일생의 꿈으로 여겨집니다. 놀랍게도 이 네 개의 성지는 모두 직간접적으로 비슈누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북쪽 히말라야 산맥의 바드리나트 (Badrinath)에는 비슈누가 깊은 명상에 잠겨 있는 모습의 신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서쪽 구자라트의 해변에는 크리슈나가 다스렸던 전설적인 왕국의 수도 드와르카 (Dwarka)가 있습니다. 동쪽 오리사의 해안에는 비슈누의 또 다른 형태인 자가나트 (Jagannath) 신을 모신 거대한 사원이 있는 푸리 (Puri)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이곳에서 열리는 거대한 수레 축제 ‘라트 야트라 (Rath Yatra)’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인도 대륙의 최남단 라메스와람 (Rameshwaram)은 라마가 랑카로 건너가기 전에 시바 신에게 제사를 올렸다고 전해지는, 비슈누파와 시바파의 신앙이 아름답게 만나는 장소입니다. 이 네 곳을 모두 순례하는 것은 곧 인도 대륙 전체를 자신의 발로 걸으며, 그 땅에 깃든 신성한 기운과 하나가 되는 거대한 종교적 행위입니다.


차르 담과 같은 거대한 순례 외에도, 비슈누 신앙에는 신의 삶의 자취가 짙게 배어 있는 수많은 성지들이 신자들의 발길을 이끕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은 단연 크리슈나의 유년 시절이 펼쳐졌던 브라즈 (Braj) 지역, 특히 마투라 (Mathurā)와 브린다반 (Vṛndāvan)입니다. 마투라는 크리슈나가 태어난 곳이며, 브린다반은 그가 고피들과 사랑의 춤을 추었던 신성한 숲입니다. 오늘날 이 도시들은 수천 개의 크고 작은 사원들로 가득 차 있으며,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크리슈나의 성전과도 같습니다. 순례자들은 야무나 강의 신성한 여울 (ghāṭ)에서 몸을 씻고, 크리슈나가 장난을 쳤던 골목을 걸으며, 라다와 밀회를 즐겼던 숲속의 나무 아래에 앉아 그의 이름을 노래합니다. 이곳에서 신화는 더 이상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순례자의 모든 감각을 통해 체험되는 살아있는 현실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라마의 탄생지인 아요디아 (Ayodhya)는 모든 라마 신자들에게 가장 성스러운 땅입니다. 그곳을 순례하는 것은 단순히 역사적인 장소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라마가 다스렸던 이상적인 왕국 ‘라마 라지야’의 정신을 자신의 내면에 구현하고, 다르마에 따라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영적인 여정입니다. 이처럼 비슈누 신앙의 종교적 실천은, 매년 돌아오는 절기의 시간을 통해 신화적 시간을 현재로 가져오고, 성스러운 땅을 향한 순례의 공간을 통해 지리적 공간을 신성한 체험의 장으로 변화시킵니다. 이 시간과 공간의 교차점 속에서, 신자들은 더 이상 신의 이야기를 듣는 방관자가 아니라, 바로 그 이야기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 신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됩니다.









1-10.4. 알바르: 비슈누를 노래한 남인도의 시인 성자들



힌두교의 신성이 샹카라와 같은 위대한 철학자들의 지성 속에서 정교한 형이상학의 옷을 입기 이전에, 그것은 먼저 평범한 민중의 뜨거운 가슴 속에서 사랑과 그리움의 노래로 태어났습니다. 철학이 ‘신은 무엇인가’를 묻는 길이라면, 신앙은 ‘신은 어디에 계시는가’를 찾아 헤매는 길입니다. 7세기에서 9세기경, 남인도의 타밀 지방에서는 바로 이 질문에 자신의 온 삶으로 답했던 위대한 영혼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베다의 난해한 경전이나 복잡한 제사 의례에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지고한 신 비슈누를 향한 사무치는 사랑과 열정 하나만을 가지고, 마을에서 마을로, 사원에서 사원으로 떠돌며 춤추고 노래했던 시인 성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을 ‘알바르 (Āḻvār)’, 즉 ‘신에게 깊이 잠긴 자’라고 부릅니다. 라마누자와 같은 후대의 위대한 박티 철학자들이 세운 장엄한 신학의 성채는, 바로 이 알바르들이 눈물과 환희로 쌓아 올린 순수한 사랑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알바르들의 영성은 브라만 계급의 전유물이었던 전통적인 지식의 길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총 열두 명으로 전해지는 위대한 알바르들 중에는 왕과 장군, 브라만 학자도 있었지만, 동시에 낮은 카스트 출신과 심지어는 안달 (Āṇṭāḷ)이라는 이름의 여성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구원이 더 이상 학식이나 사회적 지위, 혹은 성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신을 향한 사랑의 깊이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박티 운동의 가장 혁명적인 선언이었습니다. 그들은 산스크리트어라는 권위의 언어가 아니라, 모든 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타밀어라는 민중의 언어로 노래했습니다. 그들의 노래, 즉 총 4천여 수에 달하는 신성한 시가집 ‘날라이라 디비야 프라반담 (Nālāyira Divya Prabandham)’은 ‘타밀 베다’라고 불릴 만큼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받으며, 오늘날까지도 남인도 비슈누파 사원에서 매일 낭송되고 있습니다.


알바르들의 사랑은 결코 하나의 고정된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신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사랑의 스펙트럼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떤 알바르는 하인 (dāsya)의 마음으로, 신을 자신의 절대적인 주인으로 섬기며 완전한 복종과 봉사 속에서 기쁨을 찾았습니다. 또 다른 알바르는 친구 (sakhya)의 마음으로, 신을 자신의 가장 친한 벗으로 여기며 함께 장난치고 때로는 다투기도 하는 친밀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페리얄바르 (Periyāḻvār)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린 아기 크리슈나를 돌보는 어머니 야쇼다의 마음 (vātsalya)이 되어, 그의 모든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감탄하고, 그가 위험에 처할까 노심초사하며, 무한한 모성애 속에서 신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알바르들의 사랑이 그 가장 강렬하고도 애절한 정점에 이르는 것은, 바로 영혼을 ‘연인 (kāntā)’으로, 그리고 신을 ‘사랑하는 님 (pati)’으로 여기는 ‘마두라 박티 (mādhura-bhakti)’, 즉 ‘연애 감정으로서의 헌신’입니다. 이 길에서, 구도자는 더 이상 신의 위대함에 압도된 피조물이 아니라, 사랑하는 님과의 합일을 갈망하는 애타는 여성의 영혼이 됩니다. 이 길의 가장 위대한 모범은 열두 알바르 중 유일한 여성이었던 안달의 삶과 노래 속에 빛나고 있습니다. 그녀는 평생 오직 비슈누 신만을 자신의 남편으로 섬기겠다고 맹세했으며, 그를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사랑의 열정을 주옥같은 시로 노래했습니다. 그녀의 시 속에서, 자연의 모든 것은 사랑하는 님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전령이 됩니다. 그녀는 구름에게, 새에게, 그리고 바람에게 자신의 애타는 마음을 실어 보내며, 님과의 재회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녀의 순수한 사랑에 감동한 비슈누 신은 마침내 그녀가 평생을 바쳐 숭배했던 스리랑감 (Srirangam) 사원의 신상 앞에서 그녀와 결혼했으며, 그녀는 그 신상의 빛 속으로 합일하여 사라졌다고 전해집니다.


이처럼 알바르들의 노래는 단순한 찬가가 아닙니다. 그것은 신의 부재 속에서 느끼는 극심한 고통과 상실감 (viraha), 그리고 마침내 신과의 합일 속에서 경험하는 황홀한 기쁨 (sambhoga) 사이를 오가는, 사랑의 모든 드라마를 담고 있는 영혼의 고백입니다. 그들은 신을 저 멀리 있는 추상적인 철학적 원리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신을 바로 지금 여기, 나의 눈물과 웃음, 나의 그리움과 환희 속에서 직접 만날 수 있는, 가장 친밀하고도 생생한 인격적인 존재로 우리 곁에 데려왔습니다. 라마누자의 철학이 이 뜨거운 사랑의 체험에 정교한 형이상학적 토대를 제공했다면, 알바르들은 바로 그 철학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심장을 제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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