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장: 세속 속의 신성: 푸루샤르타와 삶의 기술

by 이호창

제1-8장: 세속 속의 신성: 푸루샤르타와 삶의 기술


1-8.1. 인생의 네 가지 기둥: 푸루샤르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현대인의 삶은 종종 파편화된 목표들의 연속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부와 성공을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가고, 사랑과 쾌락 속에서 순간의 위안을 찾으며, 때로는 이 모든 것의 허무함 속에서 영적인 의미를 갈망합니다. 이 각각의 목표들은 서로 분리된 섬처럼 존재하며, 우리는 그 섬들 사이를 위태롭게 항해하다 길을 잃고 소진되곤 합니다. 그러나 고대 인도의 현자들은 인간의 삶을 이러한 단편적인 추구의 합이 아니라, 네 개의 거대한 강이 조화롭게 흘러 하나의 바다로 이르는 장대한 여정으로 보았습니다.


그 네 개의 강줄기가 바로 푸루샤르타 (Puruṣārtha), 즉 ‘인간 (puruṣa)의 온전한 목표 (artha)’입니다 . 그것은 각각 의무 (Dharma), 부 (Artha), 사랑 (Kāma), 그리고 해탈 (Mokṣa)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 인간이라는 존재가 온전해지기 위해 반드시 탐험하고 통합해야 할 네 개의 위대한 대륙과도 같습니다. 힌두 사상의 위대함은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을 결코 죄악시하거나 억압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으로 긍정하고, 그 거친 에너지를 어떻게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마침내 그것을 넘어서는 궁극적인 자유에 이를 수 있는지에 대한 정교하고도 현실적인 지도를 그려 보였습니다. 이 푸루샤르타의 체계야말로, 힌두교를 단순한 철학 사변이나 종교적 신념을 넘어, 인간 삶의 모든 국면을 아우르는 살아있는 문명이자 생활 방식으로 만든 위대한 청사진입니다.


다르마 (Dharma): 모든 것을 품는 강의 바닥


모든 여정의 시작이자 그 여정 전체를 떠받치는 가장 근본적인 토대는 바로 다르마입니다. ‘지탱하다’, ‘유지하다’는 의미의 어근 ‘드리 (dhṛ)’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우주와 사회, 그리고 개인을 무너지지 않게 붙들어주는 근본적인 질서이자 법칙, 그리고 의무를 의미합니다 . 만약 아르타와 카마, 모크샤가 인생이라는 강의 각기 다른 물줄기라면, 다르마는 그 모든 물줄기가 흘러갈 수 있도록 길을 내어주고 그 흐름을 지탱하는 단단한 강바닥과도 같습니다. 강바닥이 없다면 물은 흩어져 사라질 뿐, 결코 바다에 이를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르마라는 토대가 없다면 부의 추구 (아르타)는 탐욕이라는 늪으로 변질되고, 사랑의 추구 (카마)는 방종이라는 모래 위 누각으로 무너져 내리며, 해탈의 추구 (모크샤)는 현실을 외면한 공허한 자기만족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다르마는 단순한 도덕률의 목록이 아니라, 나의 모든 행위가 우주적 조화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묻게 하는 내면의 나침반입니다. 고대 베다 시대의 현자들이 우주를 관통하는 신성한 질서로서 직감했던 리타 (Ṛta)의 개념은, 바로 이 다르마의 사상 속에서 구체적인 삶의 규범으로 내려왔습니다 . 다르마는 우주적 차원에서는 계절의 순환과 같은 자연의 법칙으로, 사회적 차원에서는 각 개인이 자신의 위치 (바르나)와 인생의 단계 (아슈라마)에 따라 마땅히 수행해야 할 책임으로, 그리고 개인적 차원에서는 각자의 고유한 본성 (스바다르마)에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으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 다르마를 따르는 삶이란, 나의 작은 욕망을 넘어 더 큰 전체의 조화에 기여하는 삶이며, 나의 모든 행위를 통해 우주적 질서의 실현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를 묻기 이전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먼저 묻게 하는, 책임감 있는 자유의 길입니다.


아르타 (Artha): 여정을 위한 견고한 배


다르마라는 강바닥 위로 흐르는 첫 번째 물줄기는 바로 아르타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돈이나 재물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한 개인이 이 세상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온전히 다하고 가정을 꾸리기 위해 필요한 모든 종류의 세속적 수단, 즉 부와 권력, 사회적 지위와 안전, 그리고 번영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 힌두 사상은 결코 가난을 미덕으로 찬양하거나 세속적 성공을 폄하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르타의 추구는 인생의 네 단계 중 사회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가장 (gṛhastha)에게 주어진 중요한 의무로 여겨졌습니다 . 그는 아르타라는 견고한 배를 만들어 자신의 가족을 태우고, 자녀를 교육시키며, 학생이나 수행자와 같은 다른 이들을 후원함으로써 사회라는 강물 전체가 풍요롭게 흐르도록 도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대 인도의 위대한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카우틸랴 (Kautilya)가 저술한 『아르타샤스트라, Arthaśāstra』는, 어떻게 하면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고, 효율적으로 통치하며, 외교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냉철하고도 현실적인 통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는 힌두 사상이 결코 현실 정치와 경제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다르마를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기술의 영역으로 깊이 탐구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모든 아르타의 추구는 반드시 다르마라는 강바닥의 인도를 받아야만 합니다. 다르마의 길을 벗어난 부와 권력은 결국 자신과 타인을 파멸시키는 난파선이 될 뿐입니다. 현대 사회는 아르타를 삶의 유일한 목적인 것처럼 추구하며 우리를 소진시키지만, 힌두의 지혜는 아르타가 결코 목적지 그 자체가 아니라, 더 높은 목표를 향한 여정을 위한 훌륭한 ‘도구’일 때 비로소 그 진정한 가치를 발휘한다고 가르칩니다.


카마 (Kāma): 여정을 채우는 다채로운 풍경


다르마라는 강바닥이 있고 아르타라는 배가 준비되었다면, 그 여정은 무엇으로 채워져야 하는가? 바로 그 여정의 모든 순간을 아름다움과 기쁨으로 채색하는 것이 세 번째 물줄기인 카마입니다. 이것은 흔히 육체적 욕망이나 성적인 쾌락으로 좁게 이해되지만, 그 본래 의미는 훨씬 더 넓고 깊습니다. 카마는 예술과 아름다움을 통해 얻는 모든 종류의 감각적 기쁨과, 사랑을 통해 느끼는 정서적 충만함까지 포함하는, 인간의 모든 미학적, 감성적 갈망을 의미합니다 . 힌두 사상은 이러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억압하거나 죄악시하는 대신, 그것을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신성한 에너지로 보았습니다. 위대한 신 시바와 그의 배우자 파르바티의 장대한 사랑 이야기는, 카마가 단순한 육체적 결합을 넘어 우주적인 의식과 에너지를 하나로 묶는 신성한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 카마의 추구 역시 다르마의 강바닥 안에서 흘러야 합니다. 절제되지 않은 쾌락은 강둑을 무너뜨리는 홍수가 되어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다르마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과 아름다움의 추구는 삶이라는 강가에 꽃을 피우고 노래를 울려 퍼지게 하는 창조적인 예술이 됩니다. 이 카마의 길을 가장 정교하고도 체계적으로 탐구한 문헌이 바로 『카마수트라, Kāma Sūtra』입니다. 그 가르침의 핵심은, 카마의 추구가 이기적인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상호적인 교감의 예술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카마는 우리에게, 영적인 삶이 반드시 고통스럽고 엄숙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모든 감각을 깨워 세상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만끽하는 기쁨의 축제가 될 수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모크샤 (Mokṣa): 마침내 도달한 바다


마지막 네 번째 목표이자, 다른 세 강줄기가 궁극적으로 흘러가야 할 드넓은 바다는 바로 모크샤입니다. 이것은 앞의 세 가지 세속적 목표를 모두 넘어서는 궁극의 목표로서, 탄생과 죽음이라는 윤회의 수레바퀴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영원한 자유를 의미합니다 . 모크샤는 다르마와 아르타, 카마를 모두 부정하고 떠나는 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 세 가지 목표를 온전히 경험하고, 그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함으로써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성숙의 열매입니다. 힌두교의 인생관은 세상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관여의 길 (pravṛtti)’과,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내면으로 향하는 ‘포기의 길 (nivṛtti)’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흐름을 조화시키려 했습니다 . 인생의 전반부인 학생기와 가장기는 주로 다르마의 틀 안에서 아르타와 카마를 추구하는 관여의 길에 해당합니다 . 이 시기에 개인은 자신의 사회적, 가정적 의무를 다하며 세상의 기쁨과 슬픔을 충분히 경험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경험을 통해 강물의 근원이 바다이듯, 모든 삶의 근원이 더 큰 자유에 있음을 깊이 깨달았을 때, 그는 비로소 임서기와 유행기라는 포기의 길로 자연스럽게 나아가, 오직 모크샤라는 바다와의 합일을 추구하게 됩니다 . 이처럼 힌두 사상은 우리에게, 영적인 삶이 반드시 세상을 등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음을 가르칩니다. 학생으로서 지식을 탐구하고, 가장으로서 가족을 부양하며, 연인으로서 사랑을 나누는 모든 세속적인 행위가, 그것이 자신의 고유한 다르마에 따라 올바르게 행해질 때, 그 자체로 하나의 거룩한 제사 (yajña)가 될 수 있으며 , 마침내 우리를 더 큰 자유의 바다로 이끄는 위대한 준비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푸루샤르타는 바로 이 세속과 신성, 삶과 구원을 하나의 거대한 그림 속에서 조화롭게 그려내는 힌두교의 위대한 인생 철학입니다.










1-8.2. 카마수트라: 다르마 안에서 피어난 즐거움의 미학


인생이라는 거대한 신전을 짓는 여정에서, 다르마라는 굳건한 토대 위에 아르타라는 기둥을 세운 인간은, 이제 그 신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힌두 사상의 위대한 지혜는 결코 그 신전을 텅 빈 고행의 공간으로 남겨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안을 사랑과 아름다움, 그리고 감각의 모든 기쁨으로 가득 채워, 삶 자체가 하나의 찬란한 축제가 되게 하라고 가르칩니다. 이 ‘아름다운 삶의 기술’을 집대성한 경전이 바로 바츠야야나 (Vātsyāyana)가 엮어낸 『카마수트라, Kāma Sūtra』입니다.


현대의 상상 속에서, 수많은 오해와 선정적인 해석의 안개에 휩싸인 채 『카마수트라』는 종종 단 하나의 모습으로만 존재합니다. 그것은 바로 성애 (性愛)의 기교를 담은 고대의 비밀스러운 지침서라는 이미지입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문헌을 단지 육체적 쾌락의 기술서라는 좁은 창을 통해서만 바라보는 것은, 밤하늘의 장엄한 별자리 지도를 보고 단지 어둠 속의 반짝이는 점들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카마수트라의 진정한 핵심은 결코 고립된 성적인 기교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관계라는, 우주에서 가장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예술을 탐구하는 심오한 미학 (美學) 서적이며, 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가꾸고 타인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으며, 마침내 그 모든 즐거움을 더 높은 질서 안에서 완성할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아름다운 삶의 기술’에 관한 고전입니다.


나가라카(Nāgaraka): 삶이라는 예술가


카마수트라가 그리는 이상적인 인간상, 즉 나가라카 (nāgaraka)는 단순히 부유하거나 권력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세련된 도시인이자, 자신의 삶 전체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빚어낼 줄 아는 심미안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의 집은 아름다운 그림과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고, 그의 정원에는 향기로운 꽃들이 계절마다 피어나며, 그의 서재에는 좋은 책들이 가득합니다. 그는 시를 짓고, 음악을 감상하며, 다른 이들과의 재치 있는 대화를 즐길 줄 압니다. 카마수트라가 제시하는 64가지 예술 (kalā)은 바로 이 나가라카가 갖추어야 할 교양의 목록입니다.


이 목록에는 노래, 춤, 악기 연주와 같은 공연 예술뿐만 아니라, 그림, 조각, 꽃꽂이와 같은 시각 예술도 포함됩니다. 더 나아가 시를 짓고 수수께끼를 푸는 지적인 유희, 요리와 향수 제조, 옷을 염색하고 보석을 감별하는 생활 밀착형 기술까지 망라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성을 유혹하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신의 모든 감각을 섬세하게 계발하여, 삶의 모든 순간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창조할 줄 아는 능력을 기르는 훈련입니다. 자신의 감각이 이처럼 섬세하게 열려 있는 사람만이, 타인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알아차리고 그 마음을 얻을 수 있으며, 사랑이라는 가장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예술을 온전히 향유할 자격을 갖추게 된다고 카마수트라는 가르칩니다. 이처럼 카마의 추구는 결코 저급한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삶 전체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가는 고도의 정신적 수련임을 보여줍니다.


관계의 미학: 존중 위에 피어나는 사랑


카마수트라의 진정한 핵심은 바로 이처럼 잘 가꾸어진 두 영혼이 만나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즉 인간관계의 미학에 있습니다. 책의 상당 부분은 어떻게 매력적인 이성과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상대방의 신뢰를 얻고, 마침내 사랑의 관계로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한 놀랍도록 세밀하고 심리학적인 통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결코 일방적인 유혹이나 정복의 기술이 아닙니다. 카마수트라는 끊임없이 상대방의 성격과 기질, 취향과 가치관을 깊이 이해하고 존중할 것을 요구합니다. 상대방이 어떤 예술에 재능이 있는지,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구애(求愛)의 기술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숙련된 음악가가 새로운 악기를 연주하기 전에, 그 악기의 재질과 울림, 그리고 고유한 특성을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과도 같습니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행해지는 모든 기술은 공허한 소음에 불과합니다.


또한, 카마수트라는 결혼 생활을 어떻게 조화롭고 풍요롭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지혜를 제공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존중하고 가정을 돌보는 의무를 설명하는 동시에, 남편 역시 아내를 단순한 소유물이나 욕망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그녀의 감정을 헤아리고 그녀에게 완전한 신뢰를 주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특히, 성적인 결합에 있어서 카마수트라는 남성의 쾌락뿐만 아니라 여성의 만족을 동등하게,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하게 다룹니다. 다양한 전희 (前戲)의 기술과 체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단순히 쾌락의 종류를 늘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몸과 마음이 완벽한 조화와 교감 속에서 최고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이는 카마가 이기적인 쾌락의 방출이 아니라, 두 존재가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하나가 되는 상호적인 교감의 예술임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진정한 카마의 실천은 ‘나’의 만족을 넘어 ‘우리’의 기쁨을 창조하는 과정이며, 이 과정을 통해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장 깊은 신뢰와 애정을 느끼게 됩니다.


다르마의 울타리: 절제된 아름다움의 완성


이처럼 삶의 모든 즐거움을 긍정하는 카마수트라의 지혜가 결코 방종적인 쾌락주의로 흐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해답은 이 모든 카마의 추구가 반드시 다르마 (Dharma)라는 더 큰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하는 데 있습니다. 카마는 아름다운 정원이지만, 다르마는 그 정원을 지키는 견고한 울타리와 같습니다. 울타리를 벗어난 즐거움은 결국 자신과 타인을 파괴하는 독이 될 뿐입니다. 카마수트라는 책의 서두에서부터 인간은 다르마와 아르타, 그리고 카마를 조화롭게 추구해야 하며, 어느 하나에 치우쳐 다른 것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카마수트라는 다른 사람의 아내를 유혹하는 기술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행위가 다르마에 어긋나며 사회적 파멸을 가져올 수 있는 위험한 행위임을 명백히 경고합니다. 이는 단순히 도덕적인 훈계를 넘어, 즐거움의 추구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현실적인 통찰입니다. 또한, 성적인 결합에 대한 모든 가르침은 기본적으로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즉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회적, 종교적 의무를 함께하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이는 카마의 에너지가 개인의 쾌락만을 위해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유지하고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사회적 책임과 결합될 때 비로소 그 완전한 의미를 갖게 됨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카마수트라는 우리에게, 진정한 즐거움은 모든 것을 내던지는 방종 속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다르마라는 명확한 경계 안에서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고 다스릴 때 비로소 가장 깊고도 오래 지속되는 아름다움으로 피어날 수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마치 강물이 둑 안에서 가장 힘차게 흐르듯, 인간의 열정 또한 질서 안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난다는 역설의 진리입니다.









1-8.3. 즐거움에서 해탈로: 카마, 탄트라, 그리고 박티


인간의 영혼은 어디에서 궁극적인 안식을 찾을 수 있습니까? 다르마의 견고한 강바닥 위를 흐르고, 아르타라는 배를 타고 나아가는 인생의 여정은, 카마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풍경들로 채워집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도 영원하지 않으며, 아무리 감미로운 노래도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힌두 사상의 위대한 지혜는, 인간의 궁극적인 갈망이 결코 유한한 즐거움 속에서 완전히 채워질 수 없음을 깊이 통찰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속적인 사랑과 즐거움의 추구는 결국 허무한 종말로 끝나는 것입니까? 아니면, 이 거친 강물이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가는 비밀의 통로가 숨겨져 있는 것입니까? 바로 이 질문 앞에서, 힌두 사상은 가장 대담하고도 심오한 연금술의 비의 (祕儀)를 드러내 보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가장 강력하게 속박하는 바로 그 힘, 즉 카마의 에너지를 사용하여 그 속박 자체를 부수고 날아오르는 길입니다. 카마수트라가 다르마의 울타리 안에서 즐거움을 만끽하는 법을 가르쳤다면, 이제 그 즐거움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두 개의 위대한 길이 열립니다. 하나는 그 에너지 자체를 변형시켜 깨달음의 불꽃으로 승화시키는 탄트라 (Tantra)의 길이며, 다른 하나는 그 사랑의 대상을 유한한 인간에게서 무한한 신에게로 옮겨 영원한 합일의 노래를 부르는 박티 (Bhakti)의 길입니다. 이 두 길은, 쾌락의 강물이 어떻게 해탈이라는 드넓은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인간 의식의 가장 위대한 변형의 드라마입니다.


경험을 통한 초월: 쾌락의 한계를 깨닫는 지혜


영적인 길은 종종 세속적인 삶과의 완전한 단절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힌두 사상이 제시하는 첫 번째 지혜는 억압이 아니라 완전한 경험에 있습니다. 우리를 진정으로 속박하는 것은 욕망 그 자체가 아니라, 욕망에 대한 우리의 무지 (無知)와 맹목적인 집착입니다. 아이가 불의 뜨거움을 배우기 위해 직접 만져보아야 하듯, 영혼 또한 감각적 즐거움의 본질을 알기 위해 그것을 충분히, 그리고 올바르게 경험해 보아야만 합니다. 다르마라는 견고한 울타리 안에서, 그리고 아르타라는 안정된 기반 위에서 행해지는 카마의 추구는, 영혼에게 삶의 모든 단맛과 쓴맛을 가르치는 위대한 스승이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우리는 지극한 기쁨을 느끼지만, 그 만남에는 필연적으로 오해와 갈등, 그리고 이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예술이 주는 감동은 황홀하지만, 그 감동이 사라진 뒤에는 공허함이 찾아옵니다. 감각적 쾌락은 강렬하지만, 그것은 늘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며 우리를 지치게 만듭니다. 이 모든 경험을 통해, 수행자는 어떤 철학서의 가르침보다 더 깊고 절실하게 하나의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의 모든 조건 지어진 즐거움은 그 본질상 무상 (無常)하며, 따라서 결코 영원한 만족을 줄 수 없다는 통찰입니다.


이 깨달음은 결코 허무주의적인 체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영혼이 더 높은 차원의 기쁨을 향해 눈을 뜨는 성숙의 순간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위적인 금욕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이탈 (vairāgya), 즉 초연함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강물의 모든 풍경을 즐긴 뱃사공이 마침내 바다의 광대함을 동경하게 되듯이, 카마의 모든 기쁨과 슬픔을 온전히 겪어낸 영혼은 비로소 시간의 흐름에 침식되지 않는 영원한 환희 (Ānanda)를 갈망하게 됩니다. 이 깊은 갈망이야말로, 세속의 강을 떠나 해탈의 바다로 나아가는 모든 영적 여정의 진정한 출발점입니다. 카마수트라의 길 끝에서, 우리는 즐거움의 소멸이 아니라, 즐거움 너머의 더 큰 즐거움을 향한 문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너지의 변형: 카마에서 탄트라로


이 더 큰 즐거움을 향한 갈망이 일어났을 때, 어떤 영혼들은 그 갈망을 채우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대신,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으로 향합니다. 그들은 묻습니다. 나를 이토록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이 욕망의 에너지, 이 카마의 힘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정말 내가 버리고 떠나야 할 적인가, 아니면 내가 아직 사용법을 모르는 숨겨진 보물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탄트라의 길입니다. 탄트라는 카마수트라가 다루었던 바로 그 에너지, 특히 모든 욕망의 뿌리인 성적인 에너지를 영적 해방을 위한 가장 강력한 동력으로 사용하는 ‘영적 연금술’의 기술입니다. 카마수트라가 그 에너지를 세련되게 사용하여 삶이라는 예술 작품을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면, 탄트라는 그 에너지 자체를 변형시켜 수행자 자신을 살아있는 신 (神)으로 빚어내는 길을 보여줍니다.


탄트라의 세계관은 인간의 몸이 우주 전체의 축소판이라는 급진적인 긍정에서 시작됩니다 . 우리를 속박하는 것은 육체나 욕망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신성한 에너지의 표현으로 보지 못하는 우리의 이원론적인 시선입니다. 탄트라는 “사람을 넘어지게 만드는 바로 그 땅을 짚고서, 사람은 다시 일어서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 우리를 가장 강력하게 넘어뜨리는 카마의 힘이야말로, 우리가 해탈의 정상으로 오르기 위해 짚고 일어서야 할 유일한 디딤돌입니다.


탄트라 수행자는 성적인 에너지를 억지로 억누르는 대신, 그 에너지가 가진 엄청난 힘의 파도를 타고 이원성의 바다를 건너려 합니다. 판차마카라 (Pañcamakāra)와 같은 비밀스러운 의례 속에서, 수행자는 성적인 결합 (maithuna)을 통해 폭발하는 쾌락의 정점에서, 그 쾌락에 휩쓸려 자아를 잃어버리는 대신, 오히려 그 모든 경험의 배후에 있는 순수한 관조 의식과 하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 남성 수행자는 자신을 순수한 의식인 시바 (Śiva)로, 여성 수행자는 자신을 역동적인 에너지인 샤크티 (Śakti)로 여기며, 그들의 결합은 두 인간의 결합이 아니라 우주적인 두 원리의 신성한 합일이 됩니다 . 이것은 쾌락을 위한 세속적인 성행위가 아니라, 쾌락을 넘어선 합일의 경지를 체험하기 위한 고도의 정신적 훈련입니다. 이처럼 탄트라는 카마의 에너지를 낭비되는 열정이 아니라, 내면에 잠들어 있는 여신 쿤달리니 (Kuṇḍalinī)를 깨워 척추를 따라 상승시키는 강력한 연료로 사용합니다. 카마수트라가 강물의 흐름을 즐기는 법을 가르쳤다면, 탄트라는 그 강물의 힘을 이용하여 댐을 돌리고 빛을 만들어내는 발전소의 기술인 셈입니다.


사랑의 승화: 카마에서 박티로


모든 영혼이 탄트라의 위험하고도 아슬아슬한 절벽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다수의 영혼을 위해, 힌두 사상은 훨씬 더 넓고도 안전한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그것은 카마의 에너지를 내면으로 변형시키는 대신, 그 사랑의 방향 자체를 유한한 인간에게서 무한한 신에게로 돌리는 길입니다. 이것이 바로 박티 (Bhakti), 즉 헌신적 사랑의 길입니다. 이 길에서, 인간 사이의 가장 강렬하고도 애틋한 사랑의 경험은 신을 향한 절대적인 사랑의 원형이자 가장 완벽한 훈련이 됩니다.


인간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완전한 이해와 영원한 헌신을 기대하지만, 유한한 인간은 결코 그 기대를 온전히 채워줄 수 없습니다. 이 필연적인 실망과 상처 속에서, 박티의 길을 걷는 영혼은 마침내 깨닫습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갈망했던 것은 한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결코 변하지 않고, 나를 완전히 이해하며, 무한한 사랑으로 나를 품어줄 절대적인 존재, 즉 신의 사랑이었음을. 이 순간, 카마는 더 이상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의 사랑인 프레마 (prema), 즉 신성한 사랑을 향한 디딤돌로 승화됩니다.


이 위대한 사랑의 승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가 바로 크리슈나와 고피들의 사랑입니다. 고피들이 크리슈나를 향해 느꼈던 사랑은 세속적인 사랑 (kāma)의 모든 언어와 감정으로 묘사됩니다. 그들은 그의 아름다움에 매혹되고, 그의 피리 소리에 황홀해하며, 그와의 만남을 갈망하고, 그의 부재 속에서 애끓는 그리움 (viraha)의 고통을 느낍니다 . 그러나 그들의 사랑이 세속적인 카마와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는, 그 사랑이 ‘나’의 만족을 위한 이기적인 욕망이 아니라는 점에 있습니다. 고피들은 크리슈나와의 사랑을 통해 어떤 보상이나 이익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갈망은 오직 크리슈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었으며, 그를 향한 사랑 그 자체가 바로 그들에게 최고의 보상이었습니다. 연인을 향한 그리움과 헌신, 그리고 합일의 열망이라는 카마의 모든 에너지가, 오직 신이라는 단 하나의 대상을 향해 남김없이 흘러 들어갈 때, 그것은 더 이상 속박의 원인이 아니라 영혼을 정화하고 해방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됩니다.


이처럼 힌두 사상은 즐거움의 추구를 결코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인간 성숙의 필수적인 과정으로 끌어안았습니다. 카마수트라를 통해 우리는 다르마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그 즐거움의 한계를 체험한 영혼은, 탄트라의 길을 통해 그 에너지를 내면의 깨달음으로 변형시키거나, 박티의 길을 통해 그 사랑을 신을 향한 영원한 헌신으로 승화시키는 위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어느 길을 택하든, 그 여정은 우리에게 동일한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를 속박하는 것은 즐거움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즐거움에 대한 우리의 무지한 집착이며, 진정한 자유는 그 집착을 넘어선 더 큰 사랑과 지혜 속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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