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근대 철학의 문을 연 17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 (René Descartes, 1596-1650)는 인류에게 위대한 선물이자 동시에 치명적인 상처가 된 하나의 선언을 남겼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라는 이 명제는, 신의 권위에 의존하던 중세의 천 년을 끝내고 인간 이성의 시대를 연 출발점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선언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독립적인 '주체 (Subject)'로서의 지위를 획득했습니다. 하지만 이 찬란한 독립 선언은, 바로 그 순간 우리 자신을 세계로부터, 자연으로부터, 심지어 우리의 몸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분리의 선언'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갇힌 세계' 속에서 느끼는 실존적 고립감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가장 깊은 곳에 데카르트가 확립한 이 고독한 '나', 즉 코기토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데카르트가 이 위대한 선언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은 처절한 자기 탐구였습니다. 그는 당시의 모든 지식이 불확실한 토대 위에 서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마치 아르키메데스 (Archimedes, 기원전 287?–기원전 212)가 "나에게 설 자리 (지렛대)를 달라. 그러면 지구를 들어 올리겠다"라고 말했듯이, 철학에 있어서도 단 하나의 의심할 수 없는 확고부동한 진리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찾기 위해, 그는 '방법적 회의 (Methodological Doubt)'라는 극단적인 사유의 칼날을 휘둘렀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방법서설, Discours de la méthode』과 『성찰, 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을 통해,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모든 것을 의심의 법정에 세웠습니다.
그의 첫 번째 의심은 '감각 (senses)'을 향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감각을 통해 인식하지만, 감각은 종종 우리를 속입니다. 멀리 있는 탑은 둥글게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네모일 수 있고, 물에 담근 막대기는 굽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곧습니다. 이처럼 한 번이라도 우리를 속인 적이 있는 감각을 어떻게 온전히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데카르트는 감각을 통해 얻은 모든 지식을 불확실한 것으로 판단하고 폐기했습니다.
그의 두 번째 의심은 '현실 (reality)' 그 자체를 향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생생하게 겪는 이 현실이 사실은 '꿈'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꿈속에서도 지금처럼 생생한 감각을 느끼고 논리적인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그 모든 것이 환상이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이 순간 '깨어있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혹시 이 모든 삶이 거대한 꿈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요. 이 의심 앞에서 현실과 꿈의 경계는 무너지고,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 세계의 확실성마저 사라져버렸습니다.
데카르트의 회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가장 극단적인 지점으로 나아갑니다. 그는 '악한 기만자 (malin génie)' 혹은 '기만하는 신'이라는 가설을 세웁니다. 만약 전지전능하지만 사악한 존재가 있어서, 우리가 2 더하기 3은 5라고 생각하거나,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라고 믿도록 끊임없이 우리를 속이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심지어 '나'라는 존재가 있다고 믿는 것조차 그 악한 기만자의 속임수일 수 있습니다. 이 무시무시한 가정 앞에서, 수학적 진리를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진리가 불확실성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사유의 폐허 속에서, 데카르트는 마침내 단 하나의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바로 이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있는 '나'의 존재였습니다. 내가 감각을 의심하든, 현실을 의심하든, 심지어 악한 기만자에게 속고 있든, 그 '의심하는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의심하는 나' 자신이 반드시 존재해야만 했습니다. 속임을 당하려면, 속임을 당하는 '나'가 있어야 합니다. 꿈을 꾸려면, 꿈을 꾸는 '나'가 있어야 합니다. 의심은 생각의 한 형태입니다. 따라서 "나는 생각한다"라는 사실은, 그 어떤 강력한 의심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절대적인 진리였습니다. 그리고 생각하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 생각 자체로 증명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코기토의 탄생입니다.
이 발견은 인류 지성사의 전환점이었습니다. '나의 존재'는 더 이상 신의 은총이나 성경의 말씀에 의해 보장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나의 이성' 그 자체를 통해 스스로 증명되었습니다. 이로써 인간은 신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는 독립적인 주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나'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데카르트는 자신이 발견한 '나'의 본질을 탐구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육체가 존재하는지는 여전히 의심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악한 기만자가 나에게 몸이 '있다고' 믿게 속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만큼은 결코 의심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데카르트는 치명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그는 '나'의 본질이 '생각하는 것'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나'는 의심하고, 이해하며, 긍정하고, 부정하며, 욕망하고, 상상하는 존재, 즉 '생각하는 실체 (res cogitans)'였습니다. 이 실체는 정신이며, 영혼입니다. 그것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 나눌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생각하는 나'와 구별되는 나의 몸, 그리고 저 바깥의 모든 세계는 무엇입니까. 데카르트는 그것들을 '연장된 실체 (res extensa)'라고 불렀습니다. '연장'이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나무, 돌, 동물의 몸, 그리고 인간의 육체까지도 그 본질은 단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물질'에 불과했습니다. 이 물질세계는 생각할 줄 모르며, 그저 기계적인 물리 법칙에 따라 움직일 뿐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코기토'는 '분리의 선언'이 되었습니다. 데카르트는 인간 존재를 '생각하는 정신'과 '연장된 육체'라는, 서로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두 개의 독립된 실체로 날카롭게 나누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심신이원론 (Mind-Body Dualism)'입니다. '참된 나'는 순수한 정신이 되었고, 나의 몸은 정신이 잠시 머무는 정교한 '기계'가 되었습니다. '나'는 세계의 주인이 되었지만, 그 세계는 영혼이 사라진 차가운 물질 덩어리로 전락했습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아는 것이 힘'이라며 자연을 지배의 대상으로 삼으려 했을 때, 데카르트는 그 지배를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이론적 무기를 제공했습니다. 자연은 더 이상 신비로운 생명체가 아니라, 인간 이성의 칼날로 해부하고 분석하고 정복해야 할 거대한 기계일 뿐이었습니다. '나'는 이 기계 바깥에 홀로 서 있는 외로운 관찰자가 되었습니다.
데카르트의 이 위대한 분리는 근대 과학과 기술의 눈부신 발전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몸을 기계로 보았기에 의학이 발전할 수 있었고, 자연을 법칙으로 보았기에 물리학이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상처는 너무나 깊었습니다.
우리는 '참된 나'가 ‘정신’이라는 믿음 속에서, 우리의 몸을 경시하고 억압했습니다. 몸의 감각과 욕망은 이성이 통제해야 할 불순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또한 우리는 자연을 기계로 취급하며 무분별하게 착취했고, 그 결과 오늘날의 심각한 생태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우리를 세계와 단절된 '기계 속의 유령 (ghost in the machine)'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데카르트적 분리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은 그의 시대부터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데카르트보다 한 세대 뒤의 철학자인 네덜란드의 바뤼흐 스피노자 (Baruch Spinoza, 1632-1677)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스피노자는 정신과 물질이라는 두 개의 독립된 실체가 존재한다는 생각 자체가 오류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 실체는 오직 '하나'뿐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 유일한 실체는 바로 '신 또는 자연 (Deus sive Natura, 신즉자연)'입니다.
스피노자에게 신은 저 하늘 위에서 인간을 심판하는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신은 곧 우주 만물을 낳고 그 안에 내재하는 유일한 실체, 즉 자연 그 자체였습니다. 그렇다면 데카르트가 말한 '정신'과 '물질'은 무엇입니까. 스피노자는 그것들이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유일한 실체인 '신/자연'이 자신을 드러내는 두 가지 '속성 (attributes)'에 불과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신/자연은 무한히 많은 속성을 지니지만, 인간은 그중 단 두 가지, 즉 '사유 (thought)' 속성과 '연장 (extension)' 속성만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스피노자의 이 '일원론 (Monism)'은 데카르트가 갈라놓은 세계를 다시 하나로 꿰매는 위대한 통찰입니다. 나의 '정신(영혼)'은 '신/자연'이라는 유일한 실체가 '사유'의 속성으로 표현된 모습입니다. 그리고 나의 '육체'는 바로 그 '신/자연'이 '연장'의 속성으로 표현된 동일한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정신과 나의 육체는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의 실체를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일 뿐입니다. 이것을 '심신평행론 (Parallelism)'이라고 부릅니다. 나의 몸이 겪는 일은 나의 정신이 겪는 일과 정확히 일치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데카르트의 철학이 우리를 자연 바깥의 고독한 관찰자로 만들었다면, 스피노자의 철학은 우리를 '자연의 일부'로 되돌려 보냅니다. 나의 존재는 고립된 '나'가 아니라, 우주 전체의 필연적인 한 표현입니다.
20세기에 이르러, 프랑스의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 (Maurice Merleau-Ponty, 1908-1961)는 또 다른 방식으로 데카르트의 상처를 치유하려 했습니다. 그는 스피노자처럼 거대한 형이상학을 세우는 대신,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는 가장 구체적이고 생생한 순간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데카르트가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은 '생각하는 나'가 이미 한 가지 사실을 잊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생각'이 언제나 '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데카르트는 순수한 정신이 몸이라는 기계를 조종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메를로-퐁티는 '나'가 몸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가 곧 '나의 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몸-주체 (Body-Subject)'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머리로 생각하기 이전에, 이미 몸으로 경험하고 느끼고 살아냅니다. 내가 세상을 인식하는 것은, 고립된 정신이 창문 밖을 내다보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몸, 즉 '살 (Chair)'이 세계의 살과 뒤엉키고 관계 맺는 생생한 과정입니다. 나는 세계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속에' 있습니다.
메를로-퐁티에게 '코기토'는 수정되어야 했습니다. 데카르트의 코기토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차가운 이성의 선언이었다면, 메를로-퐁티의 코기토는 "나는 (몸으로) 할 수 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따뜻한 실존의 고백입니다. 나의 존재는 내가 순수하게 생각할 때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몸을 움직여 저 컵을 잡으려 손을 뻗을 때, 저 언덕을 향해 걸어갈 때, 즉 세계와 구체적인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확인됩니다. 그는 데카르트가 버렸던 '감각'과 '몸'을 철학의 중심으로 되돌려 놓음으로써, 정신이라는 감옥에 갇혔던 '나'를 해방시키고 다시금 이 따뜻한 세계 속으로 '뿌리내리게' 했습니다.
데카르트의 코기토, 즉 '분리의 선언'이 오늘날 우리 현대인에게 주는 가르침은 심오합니다. 우리는 모두 '데카르트의 아이들'입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심신이원론의 세계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를 나의 정신이나 의식, 혹은 소셜 미디어 속의 디지털 정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몸은 이 '참된 나'를 실어 나르거나, 혹은 통제하고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여깁니다. 우리는 피트니스 앱으로 몸을 데이터처럼 관리하고, 다이어트를 통해 몸의 욕망을 억압하며, '몸은 늙지만 나는 늙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는 자연을 '연장된 실체'로만 봅니다. 숲은 우리에게 목재와 산소를 제공하는 '자원'이고, 강은 전기를 생산하는 '에너지원'이며, 동물은 인간의 필요를 위해 존재하는 '단백질' 공급원입니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자연 바깥에서 자연을 계산하고 이용하는 고독한 주체로 군림합니다. 이 분리된 세계관 속에서 우리는 극도의 효율성을 성취했을지 모르지만, 그 결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몸으로부터 소외되고,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땅으로부터 고립되었습니다.
이 분리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스피노자와 메를로-퐁티가 제시한 '연결의 지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첫째, 우리는 '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메를로-퐁티의 가르침은, 우리의 몸이 우리가 통제해야 할 기계나 대상 (그것, it)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 (I)'임을 깨달으라고 촉구합니다. 우리는 머릿속의 생각을 잠시 멈추고, 지금 이 순간 몸이 보내는 감각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발바닥이 땅에 닿는 느낌,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미세한 움직임, 심장이 뛰는 생생한 박동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 그 자체입니다. 몸의 지혜를 회복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이성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세계와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는 '자연과의 연결'을 회복해야 합니다. 스피노자의 가르침은, 우리가 자연을 '이용'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 그 자체'임을 상기시킵니다. 우리는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신즉자연'이라는 거대한 우주적 생명체의 한 표현입니다. 숲속의 나무 한 그루가 숨을 쉴 때, 그것은 '나의 숨'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강물을 오염시킬 때, 그것은 곧 나의 피를 오염시키는 행위입니다. 이처럼 '나'의 경계를 허물고 우주적 전체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을 때, 데카르트의 코기토가 낳은 실존적 고독은 눈 녹듯이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외로운 '생각하는 실체'가 아니라, 우주 만물과 함께 춤추는 '살아있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코기토가 '나'를 발견한 선언이었다면, 이제 우리에게는 그 '나'라는 관념의 껍질을 깨고 더 큰 생명과 합일하는 새로운 선언이 필요합니다.
1-2.2. 실존주의의 고독: 내던져진 존재
우리의 삶이 든든한 땅 위에 서 있다고 믿었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과거의 사람들은 신의 섭리, 불변의 진리, 혹은 견고한 공동체의 전통이라는 땅을 딛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사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미 정해진 답을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근대화의 거대한 파도가 닥치고,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이후, 우리는 발밑이 꺼지는 듯한 아찔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지탱해주던 절대적인 가치와 의미의 땅이 사라진 것입니다. 20세기 전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인간 이성에 대한 굳건한 믿음마저 산산조각 났습니다. 바로 이 황폐한 절망의 땅 위에서,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고독을 정면으로 마주한 철학이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이 철학을 '실존주의 (Existentialism)'라고 부릅니다. 실존주의는 우리에게 정해진 답이나 위로를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얼마나 철저히 혼자인지, 얼마나 아무런 근거 없이 이 세상에 '내던져졌는지'를 직시하라고 요구합니다. 이 철학자들이 그린 '홀로 선 인간'의 초상은,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고독의 본질을 꿰뚫어 봅니다.
실존주의적 고독의 문을 연 철학자는 독일의 마르틴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1889-1976)입니다. 그는 서양 철학이 2천 년 넘게 '존재'에 대해 물어왔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을 잊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 질문은 '존재가 무엇인가'가 아니라, '나는 왜 하필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입니다. 하이데거는 이처럼 자신의 존재를 물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인간을 '현존재 (現存在, Dasein, 다자인)'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르네 데카르트처럼 '생각하는 나'가 세계 '바깥'에서 세계를 관찰한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하이데거에게 인간은 언제나 이미 세계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그가 말한 '세계-내-존재 (世界-內-存在, In-der-Welt-sein)'입니다. 우리는 책상을 '물리적 나무판'으로 분석하기 이전에, 이미 '글을 쓰는 도구'로 사용하고, '추억이 담긴 물건'으로 관계 맺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세상 속에서 다른 존재자들,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하이데거는 우리의 근원적인 고독을 드러냅니다. 그는 현존재의 근본적인 실존 방식을 '피투성 (被投性, Geworfenheit)'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피투'란 '내던져졌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지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시대에,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부모와 국가 아래, 그리고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이 육체 속으로 그저 '내던져진' 존재입니다. 아무도 나에게 왜 태어나야 하는지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이 삶의 사용 설명서를 챙겨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저 낯선 무대 위에 홀로 던져진 배우와 같습니다.
이 '내던져졌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 순간, 우리는 설명할 수 없는 깊은 '불안 (不安, Angst)'에 휩싸입니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불안은 뱀을 보고 무서워하는 '공포 (Furcht)'와 다릅니다. 공포는 대상이 분명하지만, 불안은 그 대상이 없습니다. 그것은 나의 존재 자체가 아무런 근거 없이 그저 여기에 있다는 사실, 나의 발밑이 텅 비어있다는 아찔한 느낌에서 오는 근원적인 현기증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불안을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남들처럼' 살아가는 길을 택합니다. 그들은 '사람들 (das Man)'이 좋다고 말하는 것을 욕망하고, '사람들'이 옳다고 하는 방식대로 생각하며, 자신의 고유한 불안을 잊으려 합니다. 이것이 하이데거가 말하는 '비본래적 (inauthentic)'인 삶입니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이 불안이야말로 우리가 '본래적 (authentic)'인 자기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말합니다. 이 불안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내가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철저히 고독한 단독자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 고독 속에서, 우리는 내가 '내던져졌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동시에 미래를 향해 자신을 '기획투사 (Entwurf)'해야 하는 존재임을 자각합니다. '기획투사'란 말 그대로 자신의 가능성을 앞 (Ent-)으로 던지는 (wurf) 행위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돌멩이나 책상처럼 이미 완성된 본질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간은 '나는 무엇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Möglichkeit)' 그 자체로 존재합니다.
우리의 실존은 두 개의 시간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과거, 즉 '내던져졌다는' 수동적인 '피투성'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선택해야만 하는 미래, 즉 '스스로를 던져야 하는' 능동적인 '기획투사'입니다. 불안은 바로 '사람들'이 제시하는 뻔하고 안락한 가능성이 아닌, 오직 나만이 감당해야 할 고유한 가능성을 스스로 선택하라고 촉구합니다. 하이데거에게 이 궁극의 고유한 가능성은 바로 '죽음'입니다. 내가 타인 대신 죽어줄 수 없듯이, 죽음은 오직 나 홀로 맞이해야 하는 절대적인 가능성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유한함을 직시하고, 그 끝을 향해 스스로의 삶을 용기 있게 던지는 결단, 이것이 바로 '본래적'인 삶의 시작입니다. 이것이 하이데거가 보여준 실존적 고독의 첫 번째 모습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지 않은 삶의 책임을 홀로 져야 하는, 근거 없는 존재입니다.
하이데거가 열어놓은 이 실존의 심연을 가장 대중적이고 급진적인 언어로 표현한 철학자가 바로 프랑스의 장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 1905-1980)입니다. 그는 하이데거의 사상을 받아들이되, 그것을 무신론의 토대 위에서 더욱 철저하게 밀어붙였습니다.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L'existence précède l'essence)"라는 유명한 명제로 자신의 철학을 요약했습니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종이 자르는 칼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종이 칼은 그것이 만들어지기 (실존) 이전에, 그것을 만들려는 장인의 머릿속에 '종이를 자른다'는 목적과 설계도 (본질)가 먼저 존재합니다. 이처럼 과거의 모든 철학과 종교는 인간 역시 신의 머릿속에 '인간의 본질'이 먼저 정해져 있고, 그에 따라 우리가 태어났다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본질을 미리 생각해 줄 장인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종이 칼과 정반대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목적이나 설계도 없이, 이 세상에 그저 '먼저 실존합니다'. 하이데거가 말했듯이, 우리는 그냥 이곳에 내던져졌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본질', 즉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의 '선택 (choice)'을 통해 직접 만들어가야만 합니다. 컵은 컵으로만 존재해야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 무엇이 될지 결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르트르가 말하는 인간의 '절대적 자유'입니다.
그런데 사르트르는 이 위대한 자유가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고 말합니다. 그는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 (L'homme est condamné à être libre)"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왜 '선고'받았을까요. 우리는 자유롭지 않을 자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선택을 피할 수 없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것조차, 이미 '선택하지 않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우리 자신을 창조하는 선택의 기로에 홀로 서 있습니다. 내가 정직한 사람이 되기로 선택한다면, 그것은 나의 본성이 선해서가 아니라, 내가 매 순간 정직한 행위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이 선택의 결과는 오롯이 나의 책임입니다. 내가 실패했을 때, "신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거나 "나의 불행한 환경 탓이다"라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신도, 정해진 본성도, 그 어떤 외부의 핑계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르트르가 말하는 실존적 고독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선택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우주 속에 홀로 선 단독자입니다. 이 거대한 책임감에서 오는 고통을 사르트르는 '불안 (angoisse)'이라고 불렀습니다. 그의 첫 소설 『구토, La Nausée』는 이러한 실존의 감각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주인공 로캉탱은 어느 날 공원 벤치에 앉아 밤나무 뿌리를 바라보다가, 아무런 이유 없이 그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참을 수 없는 구역질을 느낍니다. 모든 사물이 그 본질적인 의미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끈적끈적하고 불필요한 존재의 맨살을 드러내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의미 없는 세계에 내던져져, 자신의 모든 것을 스스로 창조해야 하는 무거운 자유의 형벌을 선고받았습니다.
사르트르와 동시대를 살았던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 1913-1960) 역시 이 의미 없는 세계라는 출발점에서 사유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르트르와 달리, 이 절망적인 상황을 '부조리 (l'absurde)'라는 개념을 통해 독창적으로 풀어냈습니다.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는 단순히 '세상이 의미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부조리는 세상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의 '충돌' 또는 '단절'에서 발생합니다. 그 하나는,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의미를 향한 열렬한 갈망'입니다. 우리는 이성적인 존재로서, 이 세계가 명확하게 이해되기를 바라고, 우리 삶에 어떤 궁극적인 의미가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한 이 세계는 어떻습니까. 세계는 우리의 그런 간절한 물음에 그저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세계는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하며, 우리의 바람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저 굴러갈 뿐입니다. 이처럼 '의미를 갈망하는 인간의 이성'과 '의미 없이 침묵하는 세계' 사이의 거대한 균열, 이 둘의 만남 자체가 바로 '부조리'입니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 L'Étranger』의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고, 아무런 이유 없이 햇빛 때문에 총을 쏘는 인물입니다. 그는 사회가 요구하는 의미의 관습 (본질)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실존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부조리한 인간의 초상입니다.
카뮈는 『시지프 신화, Le Mythe de Sisyphe』라는 철학 에세이에서, 이 부조리를 깨달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습니다. 이 부조리 앞에서 가장 심각한 철학적 질문은 '자살'입니다. 삶이 살 가치가 없다면, 죽음을 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카뮈는 자살이 부조리에 대한 '도피'이지 '반항'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또한 신이나 내세에 기대어 의미를 찾는 것 (철학적 자살) 역시 부조리를 외면하는 기만이라고 봅니다. 카뮈가 제시하는 유일한 길은 부조리를 '껴안고 반항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 신화 속의 시지프스를 '부조리의 영웅'으로 내세웁니다. 시지프스는 신들에게 반항한 죄로, 거대한 바위를 산 정상까지 밀어 올리면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영원한 형벌을 받았습니다. 이보다 더 무의미하고 절망적인 노동은 없습니다. 하지만 카뮈는 바로 이 지점에서 위대한 반전을 꾀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시지프스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시지프스의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바위가 다시 굴러떨어져, 그가 산을 다시 내려오는 '의식의 순간'에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명철하게 '의식'합니다. 그는 신이 내린 이 형벌의 부조리함을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희망에 기대거나 자살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 바위가 '자신의 것'이며, 그 산꼭대기를 향한 '자신만의 투쟁'임을 받아들입니다. 그가 자신의 운명을 경멸과 의식으로 가득 채울 때, 그는 신의 형벌조차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승리를 거둡니다. 그는 운명의 주인이 됩니다. 이것이 카뮈가 말하는 고독한 반항입니다. 우리는 의미 없는 세계에 홀로 서 있지만, 바로 그 무의미함을 명철하게 의식하고, 주어진 삶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며 투쟁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의미를 창조해야 합니다.
이러한 실존주의의 사유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시몬 드 보부아르 (Simone de Beauvoir, 1908-1986)에 이르러,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고독의 문제, 즉 '여성의 고독'을 향하게 됩니다. 그녀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을 빌려와, 인류의 절반이 겪어온 억압의 역사를 분석했습니다. 그녀의 기념비적인 저서 『제2의 성, Le Deuxième Sexe』은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On ne naît pas femme: on le devient)"라는 충격적인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이 말은 사르트르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를 여성의 상황에 적용한 것입니다. 보부아르는 '여성성'이라는 것이 생물학적으로 타고나는 불변의 '본질'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은 남성 중심의 사회가 역사적으로 여성을 특정한 방식으로 규정하고 억압함으로써 '만들어낸' 사회적 구성물입니다. 이 사회에서 남성은 스스로를 판단의 기준이 되는 '주체 (Subject)'이자 '절대자 (the One)'로 설정했습니다. 그리고 남성은 자신을 주체로 세우기 위해, 여성을 자신과 구별되는 '타자 (Other)'이자 '대상 (Object)'으로 규정했습니다. 남성은 '실존'을 통해 자신을 창조하는 '초월 (transcendence)'의 자유를 누렸습니다. 반면 여성은 가사와 육아라는 반복적인 노동 속에 갇혀, '초월'이 거세된 채 그저 존재하는 '내재 (immanence)'의 삶을 강요당했습니다.
이것이 보부아르가 밝혀낸 '제2의 성'이 겪는 실존적 고독입니다. 이는 하이데거나 사르트르가 말한 인간 보편의 고독과는 또 다른 차원의 고독입니다. 그것은 내 삶의 의미를 스스로 선택할 '자유' 자체를 박탈당한 존재의 고독입니다. 여성은 자신의 욕망이 아닌 남성의 욕망을 욕망하도록 길들여졌고, 자신의 시선이 아닌 남성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도록 강요받았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주체'가 되지 못하고, 영원히 남성이라는 주체에 의존하는 '타자'로만 머물러야 했습니다. 보부아르의 외침은 여성이 이처럼 '만들어진 본질'의 감옥에서 벗어나, 남성과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창조하는 '실존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해방의 선언이었습니다.
이 네 명의 사상가가 그린 '내던져진 존재'의 초상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전해줍니다. 현대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편리해졌지만, 우리는 그 이면에서 하이데거가 말한 '불안'과 카뮈가 말한 '부조리'를 일상적으로 경험합니다. 우리는 소셜 미디어 속에서 수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사람들 (das Man)'이 연출하는 행복의 기준에 나를 맞추지 못해 고통받는 '비본래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한한 선택의 자유를 누리는 듯하지만, 너무 많은 선택지 앞에서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몰라 마비되는 사르트르의 '자유의 형벌'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사회가 규정한 '성공한 남성' 혹은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만들어진 본질'의 감옥에 갇혀, 보부아르가 말한 '타자'의 삶을 강요받기도 합니다.
실존주의 철학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위대한 가르침은, 우리가 느끼는 이 고독과 불안, 그리고 삶의 무의미함이 우리가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신과 전통의 안락한 품을 떠나, 스스로의 두 발로 서기 시작한 '자유로운 인간'이기에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입니다. 실존주의는 우리에게 이 고독을 피하려 하지 말고,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하라고 명령합니다.
우리가 내던져진 존재임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남들처럼' 사는 것을 멈추고 '나다운' 삶을 선택할 용기를 얻습니다. 우리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더 이상 남 탓이나 환경 탓을 하지 않고, 내 삶의 모든 순간을 나의 선택으로 채워나가는 진정한 주인이 됩니다. 우리가 시지프스처럼 부조리를 껴안을 때, 우리는 결과나 성공에 연연하는 대신, 지금 이 순간의 투쟁 자체를 사랑하는 법을 배웁니다.
실존주의의 고독은 우리를 절망에 가두는 감옥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정한 자유로 나아가는 유일한 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의미 없는 세계에 홀로 내던져졌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에 그 어떤 신도 부여하지 못한 존엄한 의미를 스스로 창조할 수 있는, 위대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1-2.3. 니체의 초인: 군중을 떠나는 자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1844-1900)는 인류의 정신사에 거대한 망치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그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가치를 의심하고, 우리가 안락하게 숨어 있던 모든 피난처를 부수었습니다. 그의 철학은 너무나 도발적이고 위험해서,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는 인류가 마주할 거대한 위기를 누구보다 먼저 감지하고, 그 절망의 한복판을 홀로 걸어 나간 선구자였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화두는 '군중 (crowd)'을 떠나는 자, 즉 '초인 (Übermensch)'의 가능성이었습니다. 이 초인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왜 그토록 절박하게 '군중'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외쳤는지, 그 시대적 진단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니체의 철학적 진단은 "신은 죽었다 (Gott ist tot)"라는 충격적인 선언에서 시작합니다. 이 말은 그가 신이 없다고 기뻐하며 외친 무신론자의 만세삼창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서양 문명 전체에 내려진 가장 고통스러운 사망 선고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즐거운 학문, Die fröhliche Wissenschaft』에서 '광인 (Madman)'의 비유를 통해 이 사건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광인은 대낮에 등불을 들고 시장으로 뛰어가 "내가 신을 찾는다!"라고 외칩니다. 신을 믿지 않는 시장의 사람들은 그를 비웃습니다. 그러자 광인은 그들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그들을 쏘아보며 말합니다. "신은 어디로 갔는가? ... 우리가 그를 죽였다! ― 그대들과 내가!"
니체가 말한 '신'은 단순히 종교적인 신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난 2천 년간 서양 세계를 지탱해 온 모든 절대적인 가치와 진리의 토대를 상징합니다. 신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우리가 왜 사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궁극적인 기준점이었습니다. 하지만 계몽주의와 과학적 이성이 발전하면서, 인간은 더 이상 절대자에게 의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교회가 아니라 자신의 이성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 순간, 우리가 의지하던 절대적인 가치의 북극성이 사라졌습니다. 신이 죽은 텅 빈 하늘 아래서, 인간은 모든 가치의 기준점을 잃어버리고 광활한 우주에 홀로 남겨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예견한 '허무주의 (Nihilism)'의 도래입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고, 삶의 '왜?'라는 질문에 아무도 답할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시장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이 거대한 사건의 의미를 아직 깨닫지 못했기에 광인을 비웃었던 것입니다.
니체는 이 거대한 허무의 공백 앞에서, 우리가 기댈 수 있었던 기존의 '도덕' 자체가 사실은 병든 뿌리에서 자라났음을 폭로합니다. 그는 우리가 '선하다'고 믿는 가치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계보를 추적합니다. 그는 『도덕의 계보, Zur Genealogie der Moral』에서 인류의 도덕을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주인 도덕 (Master Morality)'이고, 다른 하나는 '노예 도덕 (Slave Morality)'입니다. 먼 옛날, 고귀하고 강인했던 '주인'들은 자신의 넘치는 힘과 건강함, 그리고 창조성을 긍정하며 스스로 '좋음'을 규정했습니다. 그들에게 '좋음 (good)'이란 바로 자기 자신, 즉 강하고 자부심 넘치며 고귀한 모든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나쁨 (bad)'은 자신들과 달리 약하고, 비천하며, 보잘것없는 것들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이와 달리, 약하고 병들었으며 무력했던 '노예'들은 주인들을 이길 힘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 강자들을 향한 증오와 원한을 쌓아두었습니다. 니체는 이 원한의 감정을 '르상티망 (Ressentiment, 원한, 원망, 한)'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르상티망은 노예들의 유일한 무기였습니다. 그들은 힘으로 이길 수 없자, 교활한 '가치의 전도 (Revaluation of Values)'를 감행했습니다. 그들은 주인의 미덕이었던 '강인함', '자부심', '창조성'을 '악 (evil)'이라고 저주했습니다. 대신 자신들의 나약함에서 비롯된 '겸손', '순종', '동정', '평등'을 '선 (good)'이라고 찬양했습니다. 니체가 보기에, 서양 문명 전체를 지배해 온 기독교와 민주주의의 '평등' 사상은 바로 이 노예 도덕이 거둔 최종적인 승리였습니다. 이 도덕은 삶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르상티망'에 뿌리를 둔 채 삶을 부정하고 약하게 만드는, 병든 도덕이었습니다.
니체는 이처럼 삶을 부정하는 노예 도덕을 극복할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을 모든 생명체의 내면에서 발견했습니다. 그는 이것을 '힘에의 의지 (Wille zur Macht)'라고 불렀습니다. 이 용어는 종종 타인을 지배하려는 폭력적인 '권력욕'으로 오해되어 왔고, 훗날 나치에 의해 끔찍하게 왜곡되었습니다. 하지만 니체가 말한 '힘'은 그런 단순한 정치적, 물리적 힘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살아있는 존재가 가진 가장 근원적인 생명의 동력입니다. 그것은 현상 유지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확장하며, 더 강해지고, 스스로를 극복하고, 자신의 힘을 창조적으로 발산하려는 생명 그 자체의 의지입니다.
작은 씨앗이 콘크리트를 뚫고 싹을 틔우는 것도, 예술가가 고통 속에서 위대한 작품을 창조해내는 것도, 심지어 우리가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도 모두 이 '힘에의 의지'의 표현입니다. 노예 도덕은 바로 이 '힘에의 의지'를 억압하고 거세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평등'하고 '안전'하기를 바라며, 더 높이 솟아오르려는 모든 의지를 깎아내렸습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선고를 통해, 이제 우리가 이 노예 도덕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억압되었던 본래의 '힘에의 의지'를 회복해야 할 때가 왔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이 죽은 허무의 시대를 넘어, 노예 도덕의 군중을 떠나, 자신의 '힘에의 의지'를 온전히 긍정하는 새로운 인간은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라는 저작을 통해, 그 새로운 인간의 모습을 '초인 (Übermensch)'이라는 이름으로 제시했습니다. 'Über'는 '넘어서 (over)'를 뜻하고, 'mensch'는 '인간 (human)'을 뜻합니다. 즉, 초인은 '인간을 넘어선 인간'입니다. 그는 신이 사라진 텅 빈 하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는 더 이상 '저 너머의 세계 (천국)'에서 구원을 찾지 않습니다. 그는 오히려 "대지에 충실하라"는 짜라투스트라의 외침에 응답합니다. 그는 이 '대지'야말로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유일한 현실임을 받아들입니다.
초인은 '신'이라는 낡은 가치를 대신할 새로운 가치를 스스로 창조하는 '입법자'입니다. 그는 '군중'이 제시하는 획일적인 행복과 성공의 기준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는 '마지막 인간 (Last Man)'의 안락한 삶을 경멸합니다. '마지막 인간'은 허무주의에 완전히 굴복하여, 그저 하루하루의 작은 쾌락과 안위에 만족하며 '눈을 깜빡이는' 현대인의 초상입니다. 초인은 이러한 군중을 떠나, 홀로 서는 고독을 감수합니다. 그리고 그 고독 속에서 자신만의 '힘에의 의지'를 불태워, 스스로를 극복하고 더 높은 단계의 자기 자신으로 도약합니다. 초인은 인류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목표'이자, 이 대지의 새로운 '의미'입니다.
니체는 이 초인에게 가장 무겁고도 위대한 사유를 마지막 시험으로 제시합니다. 그것이 바로 '영원회귀 (Ewige Wiederkunft)' 사상입니다. 어느 날 밤, 악마가 당신에게 찾아와 이렇게 속삭인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네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삶, 네가 겪는 이 모든 기쁨과 고통, 이 모든 사소하고 비루한 순간들이, 단 하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순서로, 영원히 무한히 반복될 것이다." 이 끔찍한 운명 앞에서 '마지막 인간'은 절망하고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자신의 지루하고 의미 없는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것은 가장 끔찍한 저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초인'은 어떻습니까. 그는 이 악마의 속삭임을 듣고 환희에 차서 외칠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해보라! 그것은 신의 목소리로구나!" 초인은 자신의 삶의 모든 순간을, 심지어 가장 고통스럽고 추악한 순간까지도, 너무나 치열하게 긍정하고 사랑한 나머지, 그 모든 것이 영원히 반복되기를 기꺼이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운명애 (Amor Fati, 아모르 파티)', 즉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명령입니다. 초인은 자신의 삶에서 단 한 순간도 부정하거나 지워버리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 전체를, 마치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긍정하듯, 남김없이 긍정합니다. 영원회귀는 우리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긍정하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궁극적인 시금석입니다. 군중을 떠나는 자는, 바로 이 영원회귀의 무게마저 사랑으로 긍정할 수 있는 자입니다.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1844-1900)의 철학은 그의 누이동생에 의해 비극적으로 왜곡되었습니다. 그의 사상은 훗날 반유대주의와 나치즘을 정당화하는 데 악용되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가 이러한 오해의 잿더미 속에서 니체를 구출해냈습니다. 들뢰즈는 『니체와 철학, Nietzsche et la Philosophie』이라는 저작을 통해, 니체 철학의 핵심이 '파괴'나 '부정'이 아니라 순수한 '긍정 (affirmation)'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들뢰즈는 세상을 움직이는 모든 힘을 '능동적인 힘 (active forces)'과 '반동적인 힘 (reactive forces)'으로 구분했습니다. '반동적인 힘'은 니체가 말한 '노예 도덕'과 '르상티망 (Ressentiment)'에서 나옵니다. 이 힘은 스스로 무언가를 창조하거나 긍정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언제나 외부의 다른 대상 (강자)을 설정하고, 그것을 '악'이라고 규정하며 '부정'함으로써만 자신의 존재를 겨우 확인할 수 있습니다. "너는 나쁘다, 고로 나는 선하다"라고 말하는 것이 이들의 방식입니다. 이 힘의 본질은 삶을 '부정 (negation)'하는 데 있습니다. 이들은 삶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이 삶을 원망하며, 이 삶이 아닌 '저 너머의 세계 (천국)'나 '완전한 무 (無)'를 갈망합니다.
반면에 '능동적인 힘'은 니체의 '힘에의 의지 (Wille zur Macht)'에서 나옵니다. 이 힘은 다른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넘쳐흐르며 "나는 나 자신이다!" 혹은 "나는 좋다!"라고 스스로를 '긍정 (affirmation)'합니다. 이 힘은 삶의 기쁨뿐만 아니라, 삶이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고통과 시련까지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입니다. 고통은 이 힘이 스스로를 극복하고 더 강해지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이 힘은 "예스 (Yes)"라고 말하며, 자신의 운명마저 사랑합니다 (Amor Fati).
들뢰즈는 이 두 가지 힘을 니체의 '영원회귀 (Ewige Wiederkunft)'라는 가장 무거운 시험대 위에 올려놓습니다. 많은 사람은 영원회귀를 "나의 이 고통스러운 삶이 영원히 똑같이 반복된다"는 끔찍한 숙명론으로 오해합니다. 만약 모든 것이 그저 맹목적으로 반복된다면, 이것은 '신은 죽었다'는 선언보다 더 깊은 허무주의의 나락일 것입니다. 하지만 들뢰즈는 영원회귀가 "세상이 원래 그렇다"는 사실의 진술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 존재의 무게를 가려내는 가장 강력한 '시험'이자 '선별기'입니다. 영원회귀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삶,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반복하기를 기꺼이 '원하는가'?"
먼저, 삶을 부정하는 '반동적인 힘'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원한과 증오, 삶에 대한 거부로 가득 찬 이 힘은 "예스"라고 답할 수 없습니다. 그 힘의 본질 자체가 '반복 (존재)'을 거부하고 '끝 (소멸)'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영원회귀라는 시험 앞에서, 이 반동적인 힘은 스스로의 본질에 따라 '소멸'을 선택합니다. 그것은 영원히 돌아올 자격을 스스로 포기하고, '무' 속으로 걸러져 나갑니다. 다음으로, 삶을 긍정하는 '능동적인 힘'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이 힘은 환호하며 "예스!"라고 외칠 것입니다. 그 힘의 본질 자체가 '존재'를, 그리고 '반복'을 기꺼이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 힘은 자신의 삶 전체를 하나의 위대한 예술 작품처럼 긍정합니다. 따라서 영원회귀라는 시험 앞에서, 이 능동적인 힘은 스스로의 본질에 따라 '영원한 반복'을 기꺼이 선택합니다.
이것이 바로 들뢰즈가 말한 '선택의 원리 (selective principle)'입니다. 영원회귀는 모든 것을 맹목적으로 반복시키는 저주가 아닙니다. 그것은 '존재'와 '무'를 걸러내는 거대한 '선별기'입니다. 이 시험을 통과하는 것은 오직 스스로를 긍정하는 힘뿐입니다. 삶을 부정하는 모든 것, 원한에 사로잡힌 마음, 허무주의에 굴복한 나약함은 이 시험대 위에서 스스로 소멸을 택합니다. 오직 '예스'라고 말하는 힘만이, 즉 능동적인 힘만이 영원히 '존재'하고 '돌아올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회귀는 절망의 철학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긍정의 철학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당신의 삶이 영원히 돌아올 자격이 있도록, 지금 이 순간을 긍정의 힘으로 가득 채워라. 당신의 삶에서 '아니오'를 말하는 모든 찌꺼기를 걸러내고, 오직 '예스'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들로 삶을 창조하라." 이것이 들뢰즈가 니체에게서 발견한,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가장 기쁨에 찬 지혜입니다.
니체의 이 사유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된 지 100여 년이 지난 오늘,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가르침을 줍니다. 우리는 니체가 예견했던 '허무주의'와 '마지막 인간'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신'이 사라진 텅 빈 자리는, 이제 '자본', '소셜 미디어', '국가주의', '맹목적인 이념' 같은 새로운 우상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새로운 우상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군중' 속에서, '좋아요'라는 이름의 '동정'을 구걸하며 살아갑니다. '남들처럼' 멋진 곳에 가고, '남들처럼' 행복해 보이는 사진을 올리며, 획일화된 '노예 도덕'에 자신을 맞추지 못해 불안해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안락함과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마지막 인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니체의 '초인 (Übermensch)'은 우리에게 이 안락한 군중 속에서 뛰쳐나오라고, 홀로 서는 고독을 감당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는 이 고독하고도 위대한 여정을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의 첫머리에서 '정신의 세 가지 변신 (Three Metamorphoses)'이라는 아름다운 비유로 설명합니다. 우리의 정신이 낡은 인간에 머무르지 않고 초인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거운 짐을 지는 '낙타'에서 낡은 가치를 파괴하는 '사자'로,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아이'로 변신해야만 합니다.
첫 번째 단계인 '낙타 (Kamel)'의 정신은 '너는...해야만 한다'는 거대한 의무의 무게를 짊어지는 정신입니다. 낙타는 사막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싣기 위해 스스로 무릎을 꿇습니다. 이 모습은 '군중'이 정해놓은 낡은 가치와 도덕률, 즉 '노예 도덕'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이 정신은 "무엇이 가장 무거운 짐입니까?"라고 물으며, 기꺼이 그 짐을 짊어집니다. 그 짐의 이름은 '성공해야 한다', '남들보다 잘나야 한다', '착하게 보여야 한다', '희생해야 한다'와 같은, 우리가 '군중'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마땅히 감수해야 할 의무들입니다. 낙타는 이 무거운 짐을 지고 묵묵히 사막을 걷는 것을 자신의 미덕으로 삼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무엇을 지고 가는지도 모른 채 남들이 지워준 짐을 정직하게 지고 가는, 우리 안의 '낙타'입니다.
하지만 이 짐을 지고 가장 고독한 사막의 한가운데에 이른 정신은, 이 모든 짐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문득 깨닫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정신은 두 번째 변신을 감행하여 '사자 (Löwe)'가 됩니다. 사자는 더 이상 무거운 짐을 지려 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유를 원합니다. 사자의 정신은 "나는...원한다 (Ich will ...)"라고 포효합니다. 그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너는...해야만 한다 (Du sollst ...)'라고 불리는 거대한 용 (龍)입니다. 이 용의 비늘 하나하나에는 수천 년 묵은 낡은 가치와 전통, 즉 군중의 도덕이 황금빛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낙타였을 때는 이 용을 두려워하고 숭배했지만, 사자가 된 정신은 이 낡은 가치들에 맞서 '아니오!'라고 외치며 용을 죽입니다. 사자는 낡은 세계의 파괴자이며, 낡은 도덕을 비판하는 위대한 비판자입니다. 이 투쟁을 통해 사자는 비로소 군중의 시선과 의무로부터 벗어난 '...로부터의 자유 (freedom from...)'를 획득합니다.
그러나 니체의 가르침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사자의 파괴가 위대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사자는 낡은 가치를 부술 수는 있지만,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자유는 아직 '무엇을 위한' 자유인지 모릅니다. 파괴의 기쁨은 여전히 자신이 파괴하는 대상에 묶여있는, '반동적인' 힘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낡은 가치를 파괴한 사자는, 마지막으로 '아이 (Kind)'로 다시 태어나야만 합니다. 아이는 '망각'이며 '순진무구함'입니다. 아이는 낙타가 짊어졌던 무거운 짐도, 사자가 싸워야 했던 거대한 용도 모두 잊었습니다. 아이는 '놀이'이며, '스스로 구르는 바퀴'입니다. 아이는 과거의 원한이나 미래의 불안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창조라는 놀이에 순수하게 몰입합니다.
아이의 정신은 '신성한 긍정 (ein heiliges Ja)'입니다. 그는 "나는...원한다"고 투쟁하는 대신, 그저 "나는...이다 (Ich bin ...)"라고 존재하며 놀이합니다. 아이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며 기뻐하는 태도입니다. 나의 고유한 삶의 방식을 놀이처럼 즐겁게 실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를 향한 자유 (freedom for...)'이며, 바로 '초인'의 정신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정점에 '영원회귀 (Ewige Wiederkunft)'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니체는 우리에게, "당신은 당신의 삶이 영원히 반복되기를 원하는가?"라고 묻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매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무서운 윤리적 질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낙타'처럼 지루하게, 혹은 '사자'처럼 누군가를 원망하며, 혹은 억지로 견디며 살고 있다면, 우리는 '영원회귀'라는 저주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니체는 우리에게, 만약 이 순간이 영원히 반복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그 순간을 '바꾸라'고 말합니다.
니체는 우리에게 안락한 위로를 주지 않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거대한 과제를 줍니다. 그것은 '군중'이라는 안락한 감옥을 떠나, 자기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위대한 예술가가 되라는 명령입니다. 고통과 허무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모든 운명까지도 사랑 (운명애, Amor Fati)하여, 나의 삶이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다고 '아이'처럼 환호할 수 있는 '초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대지 위에서 우리가 스스로의 의미를 찾는 유일한 길입니다.
1-2.4. 개인주의의 빛과 그림자
우리는 '나의 삶'을 이야기하고 '나의 선택'을 존중하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개인'이 모든 가치의 중심이 되는 '개인주의 (Individualism)'는 이제 우리가 숨 쉬는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왕이나 종교, 혹은 공동체의 부속품이 아닌,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 여깁니다. 이것은 인류가 수백 년의 투쟁을 통해 얻어낸 위대한 '빛'입니다. 억압적인 집단주의의 어둠 속에서 '나'라는 주체를 해방시킨 찬란한 성과입니다.
하지만 이 눈부신 빛은 동시에 길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극단적인 경쟁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서 철저히 분리되었습니다. 우리는 타인을 '권리'를 침해할 잠재적 위협으로 여기거나, '경쟁'에서 이겨야 할 상대로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나'를 얻었지만, '우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이 분열과 고독의 뿌리는, '개인'을 발견했던 바로 그 영광스러운 순간에 이미 심겨 있었습니다. 이 빛과 그림자의 계보를 따라가는 것은, 갇힌 세계 속에 홀로 선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여정입니다.
이 거대한 서사는 17세기 영국에서 시작됩니다. 당시는 국왕을 지지하는 왕당파와 의회를 지지하는 의회파가 서로 피를 흘리는 끔찍한 내전 (English Civil War, 1642-1651)이 나라를 뒤덮은 혼란의 시대였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 (Thomas Hobbes, 1588-1679)는 이 모든 참상을 직접 목격하며, 인간과 국가의 본질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는 "만약 국가, 왕, 법률 같은 사회적 장치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홉스는 이 아무런 규칙이 없는 원초적인 상태를 '자연 상태 (state of nature)'라고 불렀습니다.
홉스가 상상한 자연 상태는 결코 낭만적이거나 평화로운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본성이 근본적으로 이기적이며, 자신의 생존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자연 상태에서 모든 사람은 '완전한 자유'를 가집니다. 하지만 이 자유는 곧 '타인을 공격하고 그를 죽일 수 있는 자유'이기도 했습니다. 나의 생존을 위해 당신의 식량을 빼앗을 수 있고, 당신도 나를 해칠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으며, 그 누구도 내일 아침에 안전하게 눈뜰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홉스는 이 상태를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의 적이 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war of all against all)'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농업도, 산업도, 예술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죽음에 대한 공포와 힘의 지배만이 존재합니다. 그는 이 비참함을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며, 추하고, 잔인하며, 짧다"라는 유명한 말로 요약했습니다. 바로 이 절박한 죽음의 공포 속에서, '개인'이 역사상 처음으로 철학의 중심에 등장합니다. 홉스가 발견한 '개인'은, 이성적이고 고상한 존재가 아니라, 오직 살아남기만을 갈망하는, 고립되고 두려움에 떠는 존재였습니다.
이 고립된 개인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자연권은 바로 '자기 보존 (self-preservation)', 즉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권리였습니다. 이 이기적인 개인들은 각자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가 비참하게 죽는다. 차라리 내가 가진 '타인을 해칠 자유'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장받는 것이 낫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계약'을 맺습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 가진 자연적인 자유 (힘)를 포기하자. 그리고 그 모든 힘을 한곳에 모아, 우리를 강력하게 통치할 단 하나의 주권자에게 전부 넘겨주자. 그리고 그 주권자에게 우리를 다스릴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하자."
홉스는 이 계약을 통해 탄생한, 막강한 힘을 가진 국가 또는 주권자를 '리바이어던 (Leviathan)'이라고 불렀습니다. 리바이어던은 성경에 나오는 거대한 바다 괴물입니다. 홉스가 이 이름을 사용한 이유는, 국가 권력이 개인들이 감히 저항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으로' 강력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이 괴물 같은 힘만이 개인들의 이기심을 억누르고 사회의 평화를 강제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이 홉스의 사회계약론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강력한 독재 국가, 즉 '절대 군주'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사상 속에는 인류 역사를 뒤바꾼 혁명적인 '빛'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국가 권력의 근거가 더 이상 '신이 주신 권리 (왕권신수설)'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국가의 권력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개인'들의 자발적인 '동의'와 '계약'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입니다. 비록 그 동기가 '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지극히 이기적인 것이었을지라도, '나'의 동의가 없었다면 국가는 애초에 성립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공포 속에서 태어났지만,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정치 권력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토머스 홉스가 공포에 떠는 개인을 발견했다면, 그 뒤를 이은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 (John Locke, 1632-1704)는 그 '개인'에게 훨씬 더 당당하고 존엄한 권리를 부여합니다. 로크 역시 '자연 상태 (state of nature)'에서 사유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가 상상한 자연 상태는 홉스가 그린 끔찍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로크가 본 자연 상태는 비교적 평화로우며,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성 (reason)'을 지닌 존재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이미 신으로부터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고유한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로크는 이것을 '자연권 (natural rights)'이라고 불렀으며, 그 핵심은 바로 '생명, 자유, 그리고 재산 (Life, Liberty, and Property)'입니다. 로크에게 '개인'은 처음부터 자신의 '몸'에 대한 온전한 소유자입니다. 그리고 내가 나의 '노동'을 사용하여 자연의 무언가를 채취하거나 가꾸었다면, 그것은 나의 몸의 일부가 확장된 것이므로 나의 '재산'이 됩니다. 예를 들어, 주인이 없는 땅에 내가 땀 흘려 사과나무를 심었다면, 그 나무와 열매는 나의 노동이 깃들었기에 나의 소유입니다. 이처럼 로크의 개인은 이미 자연 상태에서도 자신의 노동을 통해 정당한 소유권을 지닌, 이성적이고 존엄한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평화로운데 국가는 왜 필요합니까. 로크는 이 자연 상태가 "편리하지는 않다"고 지적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나의 '자연권' (특히 재산권)을 누군가가 침해했을 때 발생합니다. 자연 상태에는 모두가 동의하는 공정한 '법률'이 없습니다. 또한, 그 법률을 집행할 공정한 '재판관'도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 나의 사과를 훔쳐 간다면, 나는 내 사건의 재판관이 되어 스스로 그를 처벌해야 합니다. 이때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에 휩쓸려 너무 가혹하게 보복하기 쉽고, 이는 결국 끝없는 분쟁과 혼란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성적인 개인들은 자신들의 이 소중한 '자연권'을, 즉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더 확실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서로 계약을 맺습니다. 이 지점에서 홉스와의 결정적인 차이가 드러납니다. 홉스의 개인들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들의 '모든 권리'를 리바이어던이라는 괴물에게 '넘겨버렸습니다 (양도)'. 하지만 로크의 개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지 그 권리를 더 잘 지켜달라고, 자신들이 세운 국가 (정부)에게 권력을 '맡길' 뿐입니다. 이것은 '신탁 (trust)'이며 '위임 (delegation)'입니다.
국가는 개인이 맡긴 임무를 수행하는 '신탁 관리인'에 불과합니다. 만약 이 국가가 자신의 본분을 잊고, 오히려 개인들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침해'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명백한 '계약 위반'입니다. 이 경우, 권력을 맡겼던 주인인 개인들은 그 정부를 해산시키고 새로운 정부를 세울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로크가 옹호한 '저항할 권리 (right to resist)'입니다. 홉스의 개인이 국가의 '보호 대상'이었다면, 로크의 개인은 국가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개인'은 국가의 부속품이 아니라,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개인주의의 '빛'은 이렇게 더욱 밝아졌습니다.
개인의 자유라는 '빛'은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 (John Stuart Mill, 1806-1873)에 이르러 그 절정에 달합니다. 홉스와 로크가 '왕'이라는 절대 권력으로부터 개인을 구출하려 했다면, 밀은 이미 민주주의가 시작된 새로운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가 마주한 새로운 위협은 단 한 명의 독재자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수'의 이름으로 개인을 억압하는, 보이지 않는 폭력인 '다수의 횡포 (tyranny of the majority)'였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법으로 정해진 폭력보다, '여론'과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남들처럼 살라"고 강요하는 사회적 압력이 더 무서울 수 있습니다.
밀은 이 보이지 않는 횡포에 맞서, 개인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 단 하나의 명확하고 확고한 선을 긋고자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기념비적인 저서 『자유론, On Liberty』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자유의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타자 위해의 원칙 (Harm Principle, 또는 위해의 원칙)'입니다. 이 원칙은 놀랍도록 단순하지만 강력합니다. 밀은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문명화된 공동체에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유일하고 정당한 경우는, 그 행위가 '타인에게 해악 (harm)'을 끼칠 때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실로 엄청납니다. 만약 어떤 행위가 나 자신에게만 해롭다면 (예를 들어, 내가 술을 마시고 건강을 해친다 해도), 그것이 타인에게 직접적인 해를 주지 않는 한, 국가나 사회는 나를 막을 권리가 없습니다. 단지 "그것이 부도덕해 보인다"거나, "그래서는 행복할 수 없다"는 '온정주의적'인 이유만으로 개인의 삶에 간섭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개인이야말로 자신의 몸과 정신, 자신의 행복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주권자'이기 때문입니다. 밀은 이 자유가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는 특히 '사상의 자유'를 옹호했습니다. 설령 단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인류가 같은 의견을 갖더라도, 그 단 한 사람이 다른 의견을 가졌다면, 인류가 그를 침묵시킬 권리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틀린' 의견 속에도 진실의 일부가 담겨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 의견이 완전히 틀렸다고 해도, '참된 진리'는 이 '틀린 의견'과의 치열한 논쟁과 부딪힘 속에서만 그 생명력을 유지하는 '살아있는 진리'가 될 수 있습니다. 논쟁이 사라진 진리는 그저 암기되는 '죽은 도그마'로 전락할 뿐입니다. 또한 그는 '삶의 방식'에 대한 자유, 즉 '생활의 실험 (experiments in living)'을 옹호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 사회는 정체됩니다. 사람들이 각자 '괴짜'처럼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살아보도록 내버려 둘 때, 그중 일부는 실패하겠지만, 또 다른 일부는 인류에게 '더 나은 삶'의 방식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밀에게 개인의 자유는 사회를 발전시키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습니다. 이로써 개인주의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나의 생각, 나의 말, 나의 삶의 방식을 온전히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가장 눈부신 '빛'의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이토록 찬란한 '빛'은 어떻게 오늘날 우리를 고립시키는 차가운 '그림자'가 되었습니까. 그 변질은 밀이 옹호했던 '존엄한 정치적 개인'이, 오직 시장에서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불안한 경제적 개인'으로 축소되는 과정 속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거대한 흐름을 우리는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라고 부릅니다. 20세기 중반까지 많은 국가는 개인이 가난이나 질병에 빠지지 않도록 '복지 국가'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적극 개입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세계 경제가 위기에 빠지자, 이러한 국가의 개입이야말로 비효율의 근원이라는 비판이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Friedrich Hayek, 1899-1992)나 미국의 밀턴 프리드먼 (Milton Friedman, 1912-2006) 같은 사상가들은 '자유'라는 가치를 다시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한 '자유'는 밀이 말한 '사상의 자유'가 아니라, '시장의 자유'였습니다. 그것은 세금, 규제, 노동조합 같은 모든 '간섭'으로부터 시장이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Margaret Thatcher, 1925-2013) 총리가 "사회 같은 것은 없습니다. 오직 개인인 남성과 여성, 그리고 가족이 있을 뿐입니다"라고 선언했을 때, 신자유주의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막을 열었습니다. 밀이 지키려 했던 '개인'은, 이제 국가나 공동체의 보호막이 사라진 냉혹한 시장 한복판에 홀로 서게 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개인'을 '시장에서 경쟁하는 경제 주체'로 재정의했습니다. 이 세계관에서 개인은 더 이상 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닙니다. 그는 '인적 자본 (human capital)'이라 불리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경영하는 '1인 기업'입니다. 이것이 바로 '극단적 개인화 (extreme individualization)'의 시작입니다. 우리의 삶은 '살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경영하기' 위한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고 스펙을 쌓으며 자신의 '시장 가치'를 높여야 합니다. 소셜 미디어 (SNS)는 우리의 '인적 자본'을 홍보하는 브랜드 마케팅의 장이 되었습니다. 안정적인 일자리는 사라지고, 우리는 모두 성과급을 받는 '계약직'이나 '프리랜서'가 되어, 나의 노동력을 시장에 팔기 위해 다른 개인들과 경쟁합니다.
이 세계관에서 '자유'는 곧 '경쟁할 자유'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책임'은 곧 '그 경쟁의 모든 결과에 대한 오직 개인만의 책임'을 의미합니다. 신자유주의는 '사회 구조', '불평등', '불운' 같은 개념을 지워버립니다. 오직 '경쟁하는 개인'들만 존재할 뿐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 경쟁에서 승리하여 부와 명예를 얻었다면, 그것은 오로지 당신의 능력과 노력 덕분입니다. 당신은 승리자로서 모든 것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반대로 만약 당신이 경쟁에서 패배하여 가난하고 병들었다면, 그것은 오로지 당신이 게으르거나 무능했기 때문입니다. 국가나 공동체는 당신의 실패에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당신 탓'입니다.
이것이 바로 개인주의의 '빛'이 만들어낸 가장 차갑고 잔인한 '그림자'입니다. 우리는 무한히 자유롭지만, 무한히 고독합니다. 우리는 타인을 '동료 시민'이 아니라, 나의 생존을 위협하고 내가 이겨야 할 '경쟁자'로만 바라봅니다. 우리는 '실패'를 병적으로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계에서 실패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당신은 가치 없는 인간'이라는 도덕적 파산 선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실패의 공포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채찍질하며, 실패했을 때는 누구도 원망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책망하고 혐오하며 무너집니다. 존 로크와 존 스튜어트 밀이 그토록 쟁취하려 했던 '존엄한 개인'은 사라졌습니다. 그 자리에는 오직 시장의 평가에 목을 매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불안한 개인'만이 남았습니다.
이러한 극단적 개인주의가 드리운 그림자에 대해, 오늘날 가장 설득력 있고 통렬한 비판을 제기한 사상가가 바로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 (Michael Sandel, 1953-)입니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수십 년간 진행한 '정의 (Justice)' 강의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의 가치, 즉 '공동체'의 목소리를 되찾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이러한 입장을 '공동체주의 (Communitarianism)'라고 부릅니다.
샌델이 정면으로 겨누는 것은 바로 신자유주의가 우리에게 당연하다고 속삭이는 '개인'의 모습입니다. 그는 이 잘못된 개인상을 '무연고적 자아 (unencumbered self)'라고 부릅니다. '연고 (encumbrance)'란 우리가 어딘가에 얽혀있고, 관계 맺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무연고적'이라는 말은,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완전히 홀로 존재하는 자유로운 자아를 의미합니다. 이 '무연고적 자아'는 마치 거대한 쇼핑몰에 들어선 소비자처럼 자신의 삶을 바라봅니다. 나의 가족, 나의 종교, 내가 속한 공동체나 국가조차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상품 중 하나라고 여깁니다. 만약 그것이 나의 이익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 이 관계를 끊고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극단적 개인주의가 상상하는 '완벽하게 자유로운 개인'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샌델은 이 '무연고적 자아'가 우리 시대의 가장 위험하고 치명적인 '환상'에 불과하다고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그는 인간이 그렇게 텅 빈 진공 상태로 세상에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특정한 가족의 일원이며, 특정한 공동체의 구성원이고, 특정한 국가의 역사와 문화를 짊어진 존재입니다. 샌델은 이러한 우리의 진짜 모습을 '연고적 자아 (embedded self)', 즉 '어딘가에 속해있는 자아'라고 부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우리의 부모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태어날 나라, 예를 들어 '대한민국'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물려받을 역사와 언어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연고'들은 내가 마트에서 고른 물건처럼 원하면 버릴 수 있는 액세서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들이 '나'라는 존재가 누구인지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부분입니다. "나는 누군가의 자식이다", "나는 한국인이다"라는 정체성은, 내가 '선택'하기 이전에 나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입니다.
샌델의 비판이 정말로 겨누는 지점은, 이 '극단적 개인주의'가 낳은 차가운 그림자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무연고적 자아'라고 착각할 때, 우리는 오직 '나의 권리 (rights)'만을 주장하게 됩니다. "국가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 "타인이 나의 자유를 침해하지는 않는가?"에만 몰두합니다. 반면에, 내가 태어난 공동체에 대해 내가 져야 할 '의무 (obligations)'나 '책임 (responsibilities)', 혹은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연대 (solidarity)'의 감각은 쉽게 잊어버립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책임은 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나'는 있지만 '우리'는 사라진 사회가 만들어집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공동선 (common good)', 즉 "우리 모두를 위한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샌델이 그의 또 다른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에서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과 연결됩니다. 샌델은 정의로운 사회란, 단순히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공동의 삶을 함께 고민하고,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고 있는지 토론해야 합니다.
샌델은 우리가 '권리'만을 외치는 고립된 소비자에서 벗어나,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역사와 가치를 공유하며 '공동선'을 함께 고민하는 '시민 (citizen)'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이 거대한 개인주의의 빛과 그림자는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줍니까. 우리는 홉스와 로크, 그리고 밀이 밝힌 '빛'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나'의 자유와 권리가 집단의 이름으로 억압당하던 어두운 시대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개인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했던 이들의 투쟁은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유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자유주의가 드리운 '그림자' 속에 갇혀 질식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유는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무거운 짐이 되어 우리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이 극단적인 고립과 경쟁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존 스튜어트 밀이 말한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주권자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마이클 샌델이 일깨워준 '연고적 시민'이기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나의 자유가 타인의 자유와 연결되어 있으며, 나의 삶이 공동체의 안녕과 분리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개인주의의 빛은 '나'를 발견하게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빛을 들고, '나'의 그림자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그 빛으로 '타인'을 비추는 길을 배워야 합니다. 진정한 자유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공존할 때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