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라는 착각

미루지 않기로 한 마음

by 박계장

어제 오랜만에 김해 본가를 찾았다. 며칠 전, 넷플릭스를 보던 중 ‘같은 계정으로 다른 장소에서 이용 중’이라는 안내가 뜨더니 화면이 꺼졌다. 몇 달 전 김해 집에 새 인터넷 TV를 설치하며 내 계정을 연결해 두었는데, 그날은 사용 시간이 겹친 것이다. 추가 요금을 내면 해결되지만, 부모님과 함께 사는 여동생이 인터넷에 서툴러 직접 가기로 했다.


들른다고 하니, 일을 마치고 돌아오실 어머니를 대신해 여동생이 저녁상을 차렸다. 반찬만 열댓 가지, 조기구이와 명태전, 된장찌개와 미역국까지. “어디서 이렇게 요리를 배웠어?”라는 물음에, 유튜브 요리 방송을 보며 배웠다며 동생이 웃었다. 식탁 위의 음식보다, 그 웃음이 집 안을 더 환하게 했다.


2023년 추석, 코로나19로 막혔던 가족 모임이 다시 가능해졌지만 예전처럼 모두 모이자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뉴스에서는 차례를 간소히 하거나 여행을 떠나는 집이 늘었다고 했다. 우리도 차례를 지내지 않고, 부모님과 여동생과 함께 일본 후쿠오카로 3박 4일 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해외여행 경험이 있었지만 부모님과 여동생은 처음이었다. 비행기 창밖에 바다가 펼쳐지자 어머니는 숨을 길게 내쉬며 웃었다. 무엇을 보고 먹는지가 아니라, ‘바다를 건넜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해 보였다. 그 웃음에, 평생 좁은 세상에서 살아오신 세월이 겹쳐졌다.


우리 집안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은 제사 한 번과 추석, 설 차례뿐이었다. 큰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아버지와 숙부가 살아계셔서 장손인 사촌동생이 주관하는 큰집의 제사와 차례에 모였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모임은 줄었고, 제한이 풀린 뒤에도 연로한 큰어머니를 대신해 제사 준비를 도맡던 제수씨의 부담을 덜기 위해 조부모님 제사만 함께 지내고 차례는 각자 지내기로 했다. 그렇게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지난 7월 말, 퇴직한 지 3년이 조금 넘은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공로연수 기간 동안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해 복지시설 기관장으로 취업하며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퇴직 후에는 좋아하던 술도 끊고 건강을 챙겼지만, 작년 10월 췌장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이어왔다. 병문안을 가도 되겠냐는 물음에 대학병원에서 치료 중인데 한결 나아졌다며 언제든 오라고 했다. 그러나 다음 날 급한 일이 생겨 미뤘고, 며칠 뒤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받지 않았다.


며칠 전,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건강은 좀 어떠세요?” 내 물음에, 들릴듯 말듯한 낮은 목소리가 흘렀다.
“이제, 대학병원에서 해 줄 수 있는 게 없단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긴다.” 짧은 대화였지만, 말은 자주 끊기고 알아듣기 힘이 들었다.


지난 봄, 그와 나는 몇몇 지인들과 송정에서 미포까지 갈맷길을 걸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그의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걸었다. 그때 까지만 해도 그는 여전히 힘이 있었고 표정에도 기운이 있었다. 지금처럼 병세가 이렇게 빠르게 나빠질 줄은 몰랐다. 그날의 기억이 남아 있어, 더 안타까웠다.


그 통화 이후, 2년 전 부모님과 다녀온 일본 여행이 떠올랐다. 잘 차려진 호텔 조식을 맛있게 드시던 아버지,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며 웃던 어머니의 모습이 선했다. 건강을 위해 절제하며 은퇴 후의 시간을 준비하던 선배에게도 예기치 못한 일이 찾아왔듯, 나와 부모님 역시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있을 것 같던 시간과 사람이, 예고 없이 멀어질 수 있다. 불확실한 미래보다 오늘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다시 새겼다. 그래서 올해 추석에는 부모님과 다시 여행을 떠나려 한다. 해외가 어렵다면 부산 투어버스를 타고 시내를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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