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자리

by 박계장

1989년, 신체검사에서 4급 판정을 받았다. 요즘이야 군입영 자원이 부족해서 어지간하면 현역이라지만 연간 출생아 100만 명 시대에 태어난 나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근시라는 이유로 현역 입영 대상에서 탈락했다. 이듬해 단기사병으로 소집되어 집 근처 공군 부대에서 4주간 훈련을 받고, 기혼의 직업군인들이 가족들과 생활하는 관사 BX에 배치되었다.


그곳은 군인 가족들이 필요로 하는 생필품을 파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매점이었다. 공군은 매점을 BX(Base Exchange)라 부른다. 육군의 PX(Post Exchange)와는 달리 고정된 기지를 기반으로 한다는 의미였지만, 그런 구분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그저 훈련 동기들이 부러워하던 '관사 BX'에 배치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했다.


내가 배치되고 처음 몇 달간은 현역병 한 명이 함께 근무했으나, 그가 전역한 뒤로 충원이 되지 않았다. 이후에는 단기사병 셋과 중사 계급의 선임하사가 BX를 운영했다. 내 바로 위 선임은 주간 근무를 했고, 나와 두 달 늦게 입대한 후임이 24시간씩 교대근무를 하게 되었다. 오전 9시에 출근해 다음 날 같은 시간에 교대하는 방식이었는데, 매장을 아침에 일찍 열고 밤 10시까지 운영해야 했기 때문에 불가피한 근무형태였다. 하루 밤을 넘기면 다음 하루는 온전히 쉴 수 있었기에, 근무 여건은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다.


특히 겨울밤, 관사관리 업무를 하는 현역병 두 명과 난로 앞에 둘러앉아 유통기한이 지난 햄과 포장육을 구워 먹던 장면은 지금도 선명하다. 납품업자가 유통기한을 확인한 뒤 신품으로 교환해 주고, 남은 물품을 회수하지 않고 병사들 먹으라며 두고 간 것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안주 삼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여자친구 이야기, 제대 후의 계획을 나누었다. 관사 BX 근무자만이 누릴 수 있는 작은 특권이었다.


그렇지만 BX 근무가 마냥 널널한 것은 아니었다. 음료가 대량 입고되는 날이면 BX 전체가 분주해졌다. 2.5톤 트럭에 가득 실린 캔 음료 박스를 입고하려면 본부 BX 병사들까지 동원되어 줄을 서서 손에서 손으로 박스를 넘겨야 했다. 가장 힘든 일은 차량 위에 오른 선임이 박스를 아래로 던질 때, 바로 밑에서 이를 받아내는 것이었다. 요령 있는 병사는 두 손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 박스를 안착시키고 무게를 분산시켜 다음 사람에게 넘겼지만, 타이밍을 놓치거나 요령이 없으면 팔을 내밀다 가슴으로 받게 되었다. 작업이 끝난 뒤에는 팔과 가슴에는 퍼렇다 못해 검붉은 피멍이 퍼져 있었다. 신참에게는 가장 확실한 신고식이었다.


하역 작업이 이어지던 한여름이었다. 훈련소 동기 하나가 관사의 풀을 베러 왔다. 그는 주로 활주로 주변 제초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삭초반'에 배치되어 있었다. 관사 관리실로부터 잔디밭 제초작업 요청이 들어와서 관사까지 내려온 것이다. 트럭 한 대 분량의 음료 박스를 하역하느라 진땀을 흘리던 내 모습을, 그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지켜보다가 말했다.


"너네는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꿀 빠는 줄 알았는데... 이 바닥도 만만치 않네."


그 말에 나는 웃었다. 삭초반은 한여름 땡볕 아래서 풀을 베야 하는 고된 일이었지만, 겨울이면 축구 같은 체육 활동으로 비교적 여유롭게 지낼 수 있었다.

BX 근무는 겉보기엔 편해 보일지 몰라도, 음료 하역 같은 힘든 작업도 많았고, 관사 가족들을 응대하며 신경 써야 할 일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현금을 다루기 때문에 장부와 실물을 대조하는 날이면 괜스레 양심을 검사받는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


시청에서는 1월과 7월, 해마다 두 차례 정기인사를 한다. 이때는 근무처를 옮기기도 하지만, 부서 내에서 업무를 조정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일이 상대적으로 강도가 높아서 부담스럽다거나, 개인사정을 들어 현재보다 부담이 적은 업무로의 변경이나 팀이동을 요구하는 경우다.


그럴 때면 나는 군대 시절이 생각난다. 삭초반 동기는 내가 에어컨 바람 쐬며 편하게 지낸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한겨울 축구하며 노는 그가 부러웠다. 서로 다른 처지에서 상대방을 부러워했던 것이다.


업무 조정을 바라는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강도 높은 업무는 근무평정에서 유리하고 인력보강이 있을 때 당연히 우선순위가 된다. 또한 누구나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남의 자리는 늘 더 좋아 보이고 내 일보다 쉬워 보인다. 하지만 정작 그 자리에 가보면 멀리서는 보이지 않던 어려움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랜 공직생활을 하면서 당장은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일들도, 하루하루 주어진 몫을 해내다 보면 어느새 뒤돌아볼 수 있는 과거가 되어 있는 경우를 자주 경험했다. 후배들이 힘든 업무에 지쳐 다른 자리를 찾고 싶다고 할 때면, 지금 당장은 벅차 보이는 일도 차근차근 해나가다 보면 반드시 해낼 수 있다고 말해주곤 한다.


물론 이런 말이 당장 힘든 후배들에게는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자리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경험이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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