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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시

시어머니, 시누이, 시누이의 시어머니

by Zei
시누이가 둘째를 낳았다.
유산한 며느리를 붙들고, 딸 걱정을 한다.
내가 속이 좁은 걸까.


나와 시누이, 그리고 시누이의 시어머니는 같은 동네에 산다.

삼각형 꼭짓점처럼 위치한 우리 셋의 집은, 서로 걸어서 20분 이내 거리였다.


결혼 전부터 우리 집, 시부모님 댁, 시누이의 시댁은 서로 익숙한 사이였다.

말하자면, 엄친아와 엄친딸의 만남이었다.


100일 무렵 처음 본 조카가 이제 어린이집을 다닌다.

그땐 그 아이의 외삼촌이 누군지도 몰랐다.

그와 결혼하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이제 내 조카가 된 사랑스러운 아이는, 날 외숭모라 부르며 종종 우리 집을 찾는다.


시누이와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남편보다 더 잘 통했다.

종종 두 가족이 함께 식사했다.

가까운 듯 무심한 관계는 편안했다.


6억 4천이던 전세가가 15억이 되기까지, 3년도 걸리지 않았다.

이런 동네인 줄은 몰랐다.

그저 시누이 따라왔다가, 전셋값에 휘청일 지경이다.

이럴 바엔 그냥 집을 사지 싶던 차였다.


청약통장 하나만 들고 나선 우리는, 무모했다.

둘만의 힘으론 투기과열지구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청약은 매번 떨어졌다.


마침, 의견이 맞았고 시기도 들어맞았다.

무엇보다 마음이 편한 관계였다.

한 건물에 함께 살자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1층에 상가가 딸린 소규모 주상복합 건물을 짓기로 했다.

형편에 따라 다세대 빌라도 괜찮았다.

괜찮은 매물이 나오면, 아주버님이 곧장 주소를 보냈다.

수기로 도면을 그려가며 나눌 만큼, 구체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시누이의 시어머니. 편의상 ‘사돈어른’이라 불렀지만, 사실 애매한 사이였다.

평생을 살아도 얼굴 한 번 마주치지 않고 지내는 사람들이 더 많은 관계다.

솔직히 그냥 남이다.


처음 이사 올 땐, 시누이 집 근처로 정한 건 내 의견이었다.

그분이 같은 동네에 계신다는 사실도 알고는 있었지만,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서로 마주칠 일에 대한 것은 고려 대상도 아니었다.

그 판단은 안일했다.


이사 후, 시부모님과의 만남이 잦아졌다.

아들네 들렀다가 딸네, 딸네 들렀다가 아들네.

손녀가 있는 딸네 집은 더 자주 올라온다.


처음엔 싫지는 않았다.

다만, 여러 상황이 갈수록 미묘해졌다.


안 그래도 어려운 시어머니가, 사돈까지 모셔 오기 시작했다.

처음은 집구경 명분이었다.

며느리 집을 ‘남’에게 보여준다는 게 이해의 영역은 아니었지만,

모르는 분도 아니고, 티타임 한 번쯤은 별일 아니라 여겼다.


두 분은 김치며 쌀을 나누셨다.

그걸 가져다주는 건 자연스럽게 우리 몫이 되었다.

심부름을 가면, 차 한 잔, 과일 한쪽을 받았다.

자주 보다 보니 친밀하게 여기셨나 보다.

간혹 전화하시기도 했다.


감사와 어색함 사이를 오래 서성였다.

그 명확지 않던 선이 밟혔고, 결국 침범당했다.




수술하고 돌아오던 그제.

마취가 덜 깬 건지, 입안이 텅 빈 듯했다.

그 고요는 서서히 발끝부터 차올랐다.


그런 내게, 남편도 위로를 쉽게 건네지 못했다.

차 안의 공기는 짭짤하고 눅눅했다.

숨이 가슴께에 자꾸 걸렸다.


이번에는 느낌이 좋았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두 번째 유산이었다.


불현듯, 습한 공기를 가르고 진동이 밀려들었다.

발신자를 보고, 손가락이 잠시 멈칫했다.

어렵사리 숨을 고르고, 목소리를 정돈했다.


“안녕하세요?”


높은 톤으로 받은 인사가 밝게 들리길 바랐다.


그분은 언제나처럼 다정했다.

시어머니와는 다른, 정제된 사람이다.

평소에도 이것저것 챙겨주셨지만, 예고 없이 찾아오실 분은 아니었다.

예의와 경우가 분명한 분이다.


“네? 저희 아파트 근처요? ...저 외출했다가 돌아가는 길인데요. 거의 다 왔어요.”


당황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통화음이 주변까지 흘렀던 모양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의 목덜미가 벌게졌다.


아파트 정문으로 우회전하는 순간, 작달막한 어르신이 눈에 띄었다.

다리가 불편하셔서 걸음이 반듯하지 않다.

그 걸음으로 장바구니 카트를 끌고, 힘겹게 오르막길을 오르고 계셨다.


급히 내려 인사드렸다.

땡땡이 장바구니에서 스테인리스 반찬통이 먼저 나왔다.

뜨끈한 반찬통 속에서 묵직한 출렁거림이 느껴졌다.


이어서 뜯지 않은 구이용 소고기와 로메인 상추 한 봉지가 나왔다.

그리고도 몇 가지 더.

모두 코스트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급히 냉장고에 있는 것들을 쓸어 담으신 티가 역력했다.


한사코 마다하는 어르신을 차에 태워 모셔드리고 집에 왔다.

큼직한 반찬통에는 따뜻한 미역국이 들어 있었다.

유산한 당일에 받는 미역국은 너무나 노골적이지 않은가.

고마움보다 먼저 올라온 건, 낯선 감정이었다.


내 유산 소식을 시누이의 시어머니가 알고 있다.

출처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아니, 알려지는 건 상관없다.


다만, 이 미역국은 분명 그의 엄마가 시킨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알은 티를 내실 분이 아니다.

양말 속에서 발가락이 잔뜩 오그라들었다.




"아나, 팥죽이다."


그의 엄마가 사돈의 손을 가리켰다.

건네받은 팥죽 가방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직 아침 안 묵었지야? 언능 한 그릇 퍼서 먹어라."


다급히 침을 삼켰다.

넘기는 침보다 고이는 침이 더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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