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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 유산을 반복 중이다.

by Zei
아이는 떠났고, 기억도 보낼 시간이다.
시누이의 출산은, 나를 그날로 되감기 했다.
지극히 타의적이었다.


지금 이 공간에선, 미음을 들이켜도 체할 것 같다.

하필 팥죽을 들고 와선, 얼른 한 그릇 퍼다 먹으란다.

원한 적 없던 호의는, 권유와 강요 그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었다.


너무 완강히 거부해서였을까.

그의 엄마의 심술보가 불룩해졌다.

뜨끈한 용기를 얼른 냉장고에 밀어 넣었다.

무심한 척 창문을 열고,

공기 속에 남아 있던 들큼한 냄새를 쫓아냈다.


회의가 길어지나 보다.

남편에게선 연락이 없다.

오전 내내 찻잔을 채워가며 잔소리를 들었다.


답답해서 냉수를 한잔 마셨다.

여자는 따뜻한 물을 마셔야 한다고 했다.

차가운 건 냉수보다, 마주 앉아 있는 이 타일 바닥이었다.

본인은 푹신한 강아지 방석을 엉덩이 밑에 깔고 앉았다.

소파 위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앞에 앉힌 사람에게 아직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시누이의 시어머니는 나더러 그만 좀 쉬라 했고,

내 시어머니는 차가 너무 뜨겁다며 찬물을 달랬다.

셋이 함께인 세 시간이, 삼일 같았다.


두 시어머니 사이에서 공통의 관심사가 터져 나왔다.

예정일이 임박한 딸 이야기였다.

나는, 불과 이틀 전 아이를 잃었다.

예우를 기대한 적은 없지만, 예의는 지켰으면 했다.


인내심이 한계에 닿았다.

예고도 없이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머님, 몇 시 기차세요?”

“응? 거시기, 두신가?”


숨 쉬듯 거짓말부터 내뱉는다.

예매도 안 한 티가 났지만, 모른 척 넘겼다.

정오 무렵이었다.

“죄송해요. 오늘은 제가 운전하기 힘들 것 같아서요.

이따 택시 불러드릴게요.”


그의 엄마는 자기 말에 스스로 발이 걸려 당황했다.

축객령 앞에 사돈의 말문도 막혔다.

나의 체념과 그들의 체면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잠시 공기가 얼어붙었다.


먼저 정신을 차린 사돈이 그의 엄마를 일으켰다.

일어나며 무슨 말을 한 것도 같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이 감정 고문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찌 보면 대단한 멘탈이다.

그렇게 쫓겨나듯 나가서, 어르신 댁에서 점심과 저녁을 다 챙겨 얻어먹었다.

퇴근한 그 집 아들이 기차역까지 모셔다 드렸다고 한다.


염치없는 건 본인이지만,

마치 당연한 내 일을 사돈총각에게 넘긴 것처럼 말했다.


저기요. 나, 그제 유산했거든요.

목구멍에 반항심이 차올랐다.




예정일이 임박한 딸 걱정은 방향을 잃고, 엉뚱한 곳에 상처를 남겼다.

하루도 빠짐없이, 본인 딸의 출산 준비 이야기를 하필 내게 물었다.

깨어 있는 모든 순간, 유산의 기억은 타인에 의해 끌려 나왔다.


내 아이를 잃은 지 5일 뒤, 시누이가 둘째를 낳았다.


“여보, 형님 둘째 낳았대. 소식 들었어?”

“...그걸 지금 나한테 말하겠냐. 넌, 어떻게 안 거야?”


그래. 우리가 모르는 게, 어쩌면 더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 5일 동안 나는 휴대전화에 묶여 지냈다.

마치, 시누이와 함께 진통이라도 한 것처럼.


출산 소식에 기뻐할 틈은 없었다.


“애기 코가 팍 깨져브렀단다.”

너무 놀라 주저앉았다.

당장이라도 올라오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이해됐다.

남편이 단호하지 않았다면, 우리 집에 모셨을 것이다.

며칠 뒤, 신생아 사진이 도착했다.

콧등에 작은 딱지가 하나 있었다.

그의 엄마는 사진 한 장만 보고, 애기 코가 깨졌다고 했다.

출산 중 사고라도 나서, 곧장 올라오려는 줄 알았다.

그의 엄마의 불안은 고스란히 내게 전염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전화도 못 하냐며 내게 물었다.

본인 연락은 받지 않으니, 대신 연락 좀 해보라고 했다.

시누이의 출산 후 사흘, 나는 그의 엄마의 걱정 안에 갇혀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연락 두절이 아니었다.

난산 직후 쏟아지는 연락이 감당되지 않아, 잠시 말을 아꼈다고 했다.


며느리의 정신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건 몰랐을까.

안다 해도 상관이 없던 걸까.


출산 후 사흘이 지나서야, 그의 엄마가 안정을 찾았다.

딸의 소식을 듣자마자, 가장 먼저 찾은 건... 또 나였다.

시누이는 난산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이제야 겨우 기운을 조금씩 되찾고 있다고 했다.


그 소식에는 나도 마음이 조금 놓였다.

걱정 끝에 안도하기도 했고, 솔직히 이제 좀 끝났나 싶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감정이 고이기 시작했다.


시누이의 출산은 끝났지만, 그의 엄마 입을 통해 반복 재생되었다.

난산의 고통, 딸 걱정, 눈물 섞인 회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유산의 순간으로 다시 끌려갔다'

원치 않는 감정 주입은 나를 서서히 메마르게 만들었다.


"오매 내 새끼. 징하니 힘들었단다.

세상에 눈물이 다 났닥하드라."


진정 울음을 삼킨 쪽은, 나였다.

딸을 향했어야 했을 주인 잃은 감정은, 고스란히 내게 쏟아졌다.

이미 한쪽 발이 빠져 있던 나는, 더 깊숙이 침잠했다.


그의 엄마는 날 딸처럼 여긴다고 했다.

나는 시어머니를 엄마처럼 대하진 못했지만,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였었다.


결혼 후 3년간 쌓았던 '내 가족'이란 울타리가 서서히 허물어져 갔다.

'가족'에게 받는 상처는 더 견디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인연을 무연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나의 방어기제는 감정을 퇴색시키는 법을 찾아내었다.

아픔이 누적되는 만큼, 우리 어머님은 점점 그의 어머니가 되어갔다.


아이를 잃은 며느리에겐 슬퍼할 여유도 없었다.


그의 엄마는 그 일을 잊은 것처럼 딸의 출산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엄마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때의 내가' 견디기엔 버거운 감정이었다.


유산 이튿날 누른 초인종은 약과였다.

이후로, 며칠만 조용했으면.

아니, 단 하루만이라도 온전히 쉬고 싶었다.


나는 아이와 작별할 시간도 가지지 못했다.

가슴에 묻지도, 떠나보내지도 못한 채로 속절없이 허물어졌다.


결국 몇 달 내내, 휴대전화에 결박당한 채로 살았다.

타의적 기억 유산이 반복되었다.

그즈음부터 우울이 찾아왔다.

지난 일들이 자꾸 솟아나 내 발목을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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