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절,
두 달씩 강제 휴직을 하던 때가 있었다.
자연스레 나는 전업주부가 됐고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 있는 날들이 이어졌다.
처음엔 너무 행복했다.
매일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자고
아침 일어나는 얼굴에 뽀뽀도 매일 해주고.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사소한 일에 아이들을 혼내고 잔소리하는
나를 발견했다.
미간을 찌푸리고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해댔다.
왜인지 비행을 하며 집을 비웠을 때보다
아이들과 더 멀어진 느낌이었다.
시간이 지나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 정상적으로 비행이 시작됐다.
또다시 나는 한 달에 몇 날 며칠 동안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리움과 미안함으로 마음이 불편하다.
내가 왜 그랬을까
그 소중했던 시간들을 왜 그렇게 써버렸을까.
그렇게 몇 날 만에 집에 돌아오면
자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다음엔 더 안아줘야지, 더 웃어줘야지.” 생각한다.
그러다 아이가 말 안 듣는 일이 생기면
또 울컥해서 혼을 내게 되고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후회하고 쉽게 화를 내버린
나 자신에게 실망해 버린다.
어리석게도 매일 반복되는 후회와 다짐.
그래도 해 본다.
퇴근길 현관문을 열기 전
오늘은
아이들을 더 많이 안아줘야겠다고.
웃는 엄마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줘야겠다고.
25년 10월 17일
작은 아이 생일인데
시애틀에서 늦게 랜딩 하는 바람에
밤 9시 돼서야 집에 도착했다.
아이는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나는 정말 미안하고 속상했다.
딸내미 생일날 밤늦게 오는 엄마가
어딨냐며 미역국도 안 끓여주는 엄마가
어디 있냐고 (할머니가 끓여주신 거랑은 다르다고!!)
열한 살짜리 꼬맹이는
눈물 콧물 쏟아내며
무슨 말인지도 알아듣지 못할 말을 쏟아냈다.
무능한 엄마가 된 것 같았다.
딸내미 생일에 비행을 갔다니.
생일 아침, 일어나는 얼굴애 뽀뽀도 못해주고
생일 축하한다는 말도 못 해주다니.
나는 미안하다고
미안해서 할 말이 없다고
변명할 여지도 없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대신 내일 미용실 가서 염색도 하고
올영도 가고 가챠도 가고 베라도 가서
우리 재밌게 놀자 하면서 달랬지만
딸내미는 자비 없이 방문을 닫아 버렸다.
문밖에서 미안해..라고 말하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너무 피곤하기도.. 미안하기도..
한마디로 지쳐있었다.
미련하게도
더 이상 딸내미랑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엄마 마음도 몰라주는 딸내미가 야속했다.
십분 정도 지났을까?
딸내미는 방에서 나와 내 앞에서
“내일 스파게티랑 피자랑 마라탕이랑
꿔바로우 먹을 거야!!!!!!!”라고 소리치며
내 옆 자리에 앉았다. 흥!!!!! 소리까지 내고.
순간 눈물이 마구 흘렀다.
얼마나 서운했을고..
근데도 엄마한테 화낸 게 미안했는지
앙탈을 부리며 옆에 앉는 내 시키...
작은 토깽이야.
네가 엄마보다 낫다.
순간 피곤해서 미련한 생각을 한 엄마보다
네가 더 어른다워.
너라서
행복해.
고마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