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에 담은 내 이미지

이거 교환 환불 되나요?

by 프시케
※ 이 글에 등장하는 브랜드, 인물,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한 가상의 예시입니다.
감정과 이미지 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서사적 장치로 사용되었으며, 특정 인물이나 기업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블라우스를 팔에 끼우기도 전,
갸웃 짓 하는 고갯짓에 분홍색 옷자락이 목 언저리에서 살랑 흔들렸다.
(이전 회차 4화 중에서)

내가 ‘이래야 한다’고 알고 있었던 모습의 상징 같았다.
입기도 전에, 이미 그 이미지에 맞춰 행동하려는 내가 있었다.




클릭 한 번이면 주문한 물건이 집 앞에 도착하는 요즘,

손은 가볍고 마음도 덩달아 가볍다.

어쩐지,

선택조차도 가볍게 넘어가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마트를 찾는다.

양손에 물건을 들고 비교하다가,

이쪽인가 저쪽인가 한참을 망설이다가

하나를 택하고 나올 때,

손에 남는 그 묵직함이

내 감정들의 무게감처럼 느껴진다.



새로운 상품에 대한 약간의 기대감,

내려놓은 게 더 나은 건 아니었을까 하는 은근한 걱정,

그리고 혹시 꼭 필요한 걸 깜빡한 건 아닐까 싶은 묘한 불안감.



마트는 다양한 물건이 있는 만큼 말이 많은 공간이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통로 위를 걸으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수많은 이미지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게 된다.



마트는 단순히 물건을 고르는 곳이 아니라,

내 이미지가 나를 시험하는 공간이다.



이 제품, 너답잖아.

이 정도는 사줘야 너 이미지에 어울리지.

건강을 챙기는 사람이라면 이걸 택해야지.

시간을 아끼는 사람이라면 이걸 사야지.



무의식처럼 움직이던 손이

갑자기 멈춰 서는 순간들.

나는 지금 뭘 고르는 걸까.

물건일까,

아니면 ‘나’라는 이미지일까.



그 순간,

내 손에 들려 있던 건

한 팩의 우유였다.


예전부터 익숙하게 골라오던 브랜드였다.

광고에서 봤던,

깨끗하고 건강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가 떠올랐다.

왠지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이미지.

내가 늘 안심하고 골랐던 이유였다.


그런데 이번엔,

손끝에 이상한 저항감이 닿았다.

불쑥 떠오른 뉴스 한 줄.

그 배우가 최근 사회적 논란에 휩싸였다는 이야기.


우유는 그대로인데,

그 이미지는 이상하게 흐려져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 우유를 들고 있는 내 이미지도 불쾌하게 흔들렸다.


잠깐 멈춰 선 나의 시선은

카트 안의 다른 물건들을 스치듯 훑고 지나간다.



나는 착한 소비를 하는 사람이야.

윤리적인 선택을 하고 싶어.

그런 사람이고 싶었고, 그런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 더 비싸지만,

더 나은 방식으로 만든 제품을 집어넣었다.


“그래, 이게 나지.”


조금은 뿌듯하고, 조금은 안도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계산대로 걸어가던 내 발걸음이

다시 한번 멈췄다.



카드값. 잔액.

그 숫자들이 슬쩍 스쳐 지나갔다.


‘나는 합리적인 소비를 하지.’

…그리고 가격까지 착하면 더 좋지 않겠어?

마음속에서 스르르 말이 흘러나왔다.


어쩐지 나도 모르게

그 말에 조용히 수긍하고 있었다.



손에 들린 우유를 다시 선반에 놓고,

조금 더 저렴한 우유를 조심스레 카트에 담는다.


손끝에 닿는 팩의 차가움이

방금 전의 결정을 담담하게 끌어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이미지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 생기는 게 아니라,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고르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지는 때로 이렇게 바뀐다.


무언가를 내려놓는 게 아니라,

조금 느슨하게 입는 것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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