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잼뱅이의 농부 도전기
2025.07.24
아파트 안내방송이 나왔다. ♪띵동동동 "최근 텃밭이 훼손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애써 키운 타인의 작물을 무단으로 가져가는 행위를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띵동동동
'아이고, 누가 그런 몰상식한 짓을 했을까..' 생각했다. 우리 수박은 동글동글 크게 자라 무겁게 늘어지길래 그 아래로 그물망을 둘러 수박에는 손을 대기가 쉽지 않다. 하교시간 아이들을 데려오며 텃밭을 한 번씩 둘러보는데, 이 날도 산책하듯 평화로운 걸음이었다. "얘들아, 우리 수박 많이 커졌지?" 그물망 사이로 수박이 보이는데, 가장자리에 있던 5번 수박이 없어졌다! 이런!! 1번은 수확했고, 2번은 떨어졌고, 3, 4, 5번 세 개의 수박이 달려있었다. 그런데 그중 작은 5번이 사라졌다. 신랑은 cctv 확인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며 열을 냈지만, 에휴.. 뭘 그렇게까지.. (속상) 떨어진 2번 수박도 누군가의 고의였을까.. 익지도 않은 작은 수박을 왜 따갔을까. 5번은 배 정도의 크기였다.
우리 단지 텃밭에는 우리 집 외에 한 집이 더 애플수박을 키우고 있었다. 그 집은 야구공만 한 수박들이 여러 개 없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경고문을 써 붙여놨더라. [제발 그만 가져가세요!] 태권도 검은띠가 있다는 아이들의 귀여운 으름장도 쓰여있었다. 텃밭에서 놀던 아이들의 장난인지, 무지한 어른의 행태인지.. 참으로 헛헛하고 속이 쓰리는 일이다. 많이 열리지 않아 하나하나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려던 귀한 수박인데.. 너무 아깝다.
방송을 보면 외국인들이 나와 우리나라의 치안이 좋다는 인터뷰를 한다. 카페에 물건을 그대로 두고 잠시 자리를 비워도 없어지는 물건이 하나도 없다고. '그렇게까지 믿을 정도는 아닌데..'
아이들이 많은 우리 동네는 킥보드와 자전거가 분실되는 일이 잦다. 건물 밖에 잠시 세워 두면 곧 사라져 며칠 뒤 주변에 버려진 채 발견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그저 눈에 보이는 데로 '잠깐 빌린다'는 생각이지만, 아무리 아이라도 분명한 잘못이고, '아이니까'하며 넘어가면 그대로 그런 어른으로 크더라.
나도 어릴 적 슈퍼에서 물건을 훔친 적이 있다. 어쩌다 그걸 엄마께 들켰고, 회초리를 맞았다. 엄마께 맞은 건 그날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빠는 나를 팬티만 남기고 옷을 벗긴 채 집 밖으로 쫓아냈다. 추운 겨울이었다. 지금 같으면 아동학대이지만, 나는 확실히 알았다. 훔치는 건 나쁜 일이라는 걸. 집 주변에서 울고 있던 나를 아빠가 찾으러 나오셨고, 나는 슈퍼에 가서 잘못을 빌었다.
옳고 그름을 알려주는 건 부모의 책임이다. 나는 그걸 알려주신 우리 부모님께 감사하다.
이른 장마가 서둘러 지나가고 닿기만 해도 따가운 해가 내리쬐더니 다시 드라마에서 살수차로 뿌리는 듯 며칠 동안 비가 내렸다. 우리 집에는 질병이 골고루 내렸다. 더위 하나만으로도 몸이 녹아내리는 듯 바닥으로 향하는데, 구토와 설사, 발열과 오한, 온몸이 쿡쿡 쑤시는 몸살에 목이 부어 삼키는 것도 고역, 위도 부은 듯 울렁거려 이 약, 저 약 먹으며 힘든 여름을 보내는 중이었다.
내 몸이 아무리 아파도 아이들 아픈 게 먼저였고, 나아질만하면 이어지는 다른 증상들로 네 식구 빠짐없이 모두 아파 '살고 보자'. 밭일은 '내 몰라라'였다.
신랑과 나란히 병원에 가 주사를 맞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텃밭 좀 보고 가자" 하는데, 신랑이 내게 "김파머, 김파머— 농부 다 됐어—" 하며 뒤를 따랐다. 여전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바람이 많이 불더라니.. 지난 장마에는 45° 마이클잭슨 춤을 추던 지지대가 이번에는 견디지 못하고 드러누워 있었다. 오 마이 갓..
보자마자 신랑이 우산을 접어 내게 주고는 지지대를 세우기 시작했다. 쓰러진 현장의 모습을 찍을 새도 없이 빠른 반응이었다. 비가 그치고 있기는 했지만, 나에게 '김파머'라고 하더니, 당신도 수박 맛을 봤구나— 소중한 머리카락이 비에 젖는데도 수박 지지대를 세워 땅으로 꾹꾹 찔러 넣었다.
하지만 흠뻑 물을 머금은 땅은 뻘처럼 푹푹 들어가 지지대가 단단히 서질 못했다. 비가 많이 오면 '산사태가 나는 게 이런 모양새겠구나..'싶었다. 물 먹은 땅은 힘을 쓰지 못한다.
가능한 바닥까지 깊게 지지대를 세우며 방울토마토는 후두두 여럿 떨어졌다. 참외 줄기도 여기저기 부러지고 바람에 나부꼈다. '제발 수박만은 떨어지지 않게..' 그러다 보니 지지대 키가 머리 하나만큼 작아져버렸다. 신랑도 나의 깨달음처럼 "비 오는 날 왜 농부들이 밭에 나가보는지 알 거 같다."고 했다.
당신도 '김파머'네, 김파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