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잼뱅이의 농부 도전기
2025.08.05
필요한 손길을 다 채우지 못해도 그 나름으로 자란다. 수박도. 아이들도.
해 준 게 별로 없는 것 같은데도 어느새 이렇게 컸는지.. 어떻게 이렇게 예쁘게 잘도 크는지.
뜨겁다 못해 따가운 태양이 지구를 지지는 탓에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우와, 점점 더 뜨거워지는 여름은 매년 최고 기온을 갱신한다. 오며 가며 텃밭을 들르지만, '아,, 저거 잘라줘야 하는데", '추비(덧거름)도 줘야 하는데', '수박도 곧 따야겠는데..' 체크리스트를 비우지 못하고, 간신히 물만 주고 허덕이며 들어왔다.
그나마 우리 집엔 또 한 명의 파머가 있었으니.. 땀이 줄줄 나고 모기도 물리지만 회복이 빠른 '김파머'가 최단 시간을 목표로 나가 깻잎도 따고, 길어 난 줄기들을 쳐내고, 빨갛게 맛이 든 방울토마토를 둥글게 손에 담아 왔다. 섬세한 손길은 아니더라도 그가 아니면 폐허의 뒷마당처럼 우거졌을 터였다.
집 안에도 시급한 가지 치기가 있었다. 치우고 돌아서면 슈퍼울트라 식물처럼 쑥쑥 자라나는 집 안 일들. 빨래통에 가득한 옷들은 길어 난 줄기처럼 넘쳐나고, 아이들이 아침밥을 먹고 학교에 가면 식탁과 주방에 그릇들이 잡초처럼 퍼져있고, 자고 일어나 엉켜있는 이불, 며칠째 벌려 놓은 놀잇감으로 너저분한 거실. 잘라도 잘라도 계속 자라나는 거대한 식충식물처럼 집 안 곳곳을 점령하고 있다.
텃밭이나 집 안이나 끊임없는 손길이 필요한데, 지나고 보면 막상 해준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서 잘 자라 준 모습이 기특하고 고마워 마법에 걸린 듯 엄청 엄청 예쁘게 보이게 된다.
알아서 차근차근 속을 채운 3번 수박은 시부모님께 선물로 드릴 수 있었다. 수북이 자라는 깻잎을 따서 종종 드렸었는데, 열매다운 묵직한 수박을 드릴 수 있어서 뿌듯했다.
그리고 며칠 차이로 4번인 마지막 수박을 땄다. 더 이상 새로운 수박은 열리지 않고, 여름작물은 8월까지 끝내야 하기에 이제는 수박을 마무리할 때이다.
영상을 찾아 공부하며 주렁주렁 달리는 수박을 기대했었다.
아이들도 실컷 먹이고, 작은 수박이라 소박하지만 정성을 담아서 주변에 선물도 해야지..
기대만큼 주렁주렁은 아니었지만 잘 자란 그 하나의 열매는 여느 대왕수박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한 달을 꼬박 채워 따 낸 마지막 수박도 1번 수박보다 더 컸다. 마지막은 아이들과 함께 만끽하기로하고 깨끗이 씻어 자르는데, 역시 잘 익어 칼이 닿자마자 쩍 갈라졌다. 반가운 빠알간 속에선 달달한 수박향이 가득 흘렀다.
신기한 것이 수박의 단면을 보니 과육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이게 뭐지? 원래 이런 건가? 동글동글 회오리 모양으로 채워진 속을 보고 아이들은 "수박 속에 달팽이가 있다"고 했다.
얇은 수박 껍질을 잘라내고 아이들이 먹기 편하게 자른 수박케이크와 수박으로 하모니카를 불고 싶어 하는 신랑을 위해 껍질 채 크게 자른 두 가지 버전으로 푸짐하게 준비했다. 며칠 동안 해가 뜨거웠던 이유인지 그중 가장 달았다. 그렇게 마지막 수박을 맛보며 "엄마, 수박 대박이야!" "오예! 성공이다, 성공!" 자축을 했다.
두 개의 애플수박 모종에서 다섯 개의 수박이 자라났다. 하나는 이유를 모른 채 떨어져 있었고, 하나는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잘 자란 세 개의 수박이 뜨거운 이 여름의 시원한 이슈였다.
키우는 식물마다 일찌감치 떠나보냈던 '식물잼뱅이'였던 내가 애플수박을 길러내 달달함을 맛보았다. 작은 밭의 초록은 튼실하게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그 맛을 알게 해 주었다. 초능력 같은 칭찬도 많이 받아먹고 '김파머'라고 불릴 땐 마치 내게도 '부캐'가 생긴 듯 재미와 자신감이 있었다. 맛도 맛이지만, 그 맛난 걸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도 채우고, 마음까지 채워지는 따듯한 수박이었다. 이제 열매를 위해 주야장천 길어졌던 수박 줄기들을 정리해야 한다.
수고했어, 얘들아.
나에게 다음 수박이 있을까.
참외는 어떻게 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