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게 마음을 단단히 쌓아 올리는 시간들
꾸준한 운동이 몸을 지키듯, 정성은 마음의 지층을 쌓는다. 그 지층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지만, 인생의 풍랑 속에서 우리를 붙잡는 마지막 바닥이 된다. 그리고 마음의 지층은, 하루의 고요한 기도로 다져진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누군가의 대화를 듣는다.
“요즘은 그냥, 뭐라도 해야 안 불안하더라.”
그 말이 낯설지 않다. 나 역시 그랬다.
우리는 해야 할 일들을 줄 세워 놓고, 그것을 지워나가는 것으로 하루를 버틴다.
오늘도 만보를 걸었고, 할 일을 마쳤고, 메일함을 비웠다. 하지만 밤이 되면, 마음의 허기가 찾아온다.
모든 지표가 ‘잘하고 있다’고 말하는데도,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어느 날, 문득 이런 문장을 적는다.
“오늘은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피곤하다.”
그 문장을 읽던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그게 바로, 마음이 일한 날이야.”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보이지 않는 일들, 그 안에도 분명한 무게가 있다는 사실.
우리가 매일 ‘괜찮아 보여야’ 하는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피로를 느끼는 것 자체가 이미 성실의 증거였다.
지구의 땅속에는 수천 년의 세월이 눌려 만들어진 층이 있다.
우리의 마음도 그렇게 시간의 퇴적물로 이루어져 있다.
어릴 적,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다.
“삶은 흙 같아. 비 오면 진흙탕이 되지만, 그게 말라야 단단한 길이 돼.”
그 말이 참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물렀다.
인생의 비는 피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비를 다 맞고 나서야 비로소 단단해지는 것.
마음의 지층을 들여다보면,
누군가에게 건넨 말 한마디, 미처 하지 못한 사과,
서랍 속 편지 한 장처럼 남아 있는 미련이 있다.
그리고 뜻밖에 누군가의 따뜻한 시선에 녹아내렸던 순간들도 있다.
그 모든 감정들이 겹겹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그것이 나의 바닥이고, 내 뿌리다.
그곳엔 나를 살게 한 무수한 ‘작은 견딤’들이 눌려 있다.
삶의 대부분은 화려한 결심보다, 작은 반복으로 세워진다. 그 반복이 지루할 때조차, 사실은 나를 살리고 있었다.
매일 아침, 커피를 내리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뜨거운 물이 천천히 내려가는 그 시간만큼은 세상이 멈춘 것 같다.
그 짧은 정적이 하루를 정돈한다.
“엄마, 왜 그렇게 조용히 커피를 내려?”
딸이 묻는다.
“그래야 마음이 깨어나거든.”
내 대답에 딸아이는 고개를 갸웃하지만,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삶은 이런 ‘의식’ 같은 순간들로 버텨진다는 걸.
또 어떤 날엔, 오해로 멀어진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그땐 나도 마음이 복잡했어. 미안.”
잠시 침묵이 흐르고, 친구가 말한다.
“나도 그랬어.”
그 한마디로, 긴 시간의 앙금이 녹아내린다.
그리고 가장 잔인한 밤엔,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그래, 오늘은 힘들었지.”
그 말 한 줄이, 다음 날의 나를 일으켜 세운다.
이렇듯 사소한 루틴들이 마음의 근육을 만든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성실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가장 깊은 기도.
밤이 깊을수록 세상은 조용해지고, 그 고요 속에서 마음의 소리가 커진다.
“괜찮을까?” “이게 맞을까?”
끝없이 밀려드는 생각들 속에서,
나는 오늘 하루를 다시 돌아본다.
거창한 성공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건,
작은 선의, 한 줌의 따뜻함이었다.
오늘 문득 눈을 마주친 낯선 사람의 미소,
길 위에서 할머니에게 건넨 인사, 그런 순간들이 내 마음의 한 귀퉁이에 조용히 쌓여있다.
하루의 끝에 불을 끄기 전, 창밖의 달을 바라본다.
‘오늘도 이만해서 다행이야.’
그 짧은 문장이 나의 기도다.
마음의 기도는 교회나 절에서만 있는 게 아니다.
저녁밥을 짓는 손,
아이를 재우며 덮어주는 이불,
스스로를 탓하지 않고 조용히 쓰다듬는 마음.
이 모두가 마음의 기도이다.
삶은 그런 사소한 기도 위에서 겨우 균형을 잡는다.
보이는 성과는 사라져도, 보이지 않는 정성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살다 보면 아무 말도 하기 싫은 날이 있다.
그럴 땐 그냥 창문을 연다.
바람이 스치고, 먼지가 일고, 마음이 조금 느려진다.
그 순간이 바로 ‘견딤’의 시간이다.
“나는 왜 이렇게 약하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약하다는 건, 여전히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무너짐을 알아채는 마음은 이미 단단하다.
어느 날, 공부에 지친 딸이 말했다.
“엄마, 인생이 왜 이렇게 어려워?”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웃었다.
“쉽기만 한 게 어딨어. 어렵지만 하루 하루 쌓아가며 단단해진 자신을 찾아가는 게 인생이야.”
그때 딸이 대답했다.
“그러면 나도 언젠가 단단해지겠네?”
그런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그래, 단단해지는 건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게 아니다. 오늘의 눈물과 내일의 웃음이 겹겹이 눌려 만들어지는 것. 그 모든 시간이 나의 지층을 만든다.
결국,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건 아침의 계획이 아니라, 밤마다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그 마음의 성실함이다.
그건 자기 자신을 향한 가장 오래된 약속이자 기도다. 하루의 무게는 결국,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사랑의 무게였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눈물,
말하지 못한 위로,
그 모든 침묵들이 결국 나를 살리고 있었다.
성취가 아니라, 정성의 무게로 살아가는 하루
조용히 견뎌온 날들,
그 고요한 시간들이 오늘의 나를 지탱한다.
결과보다 과정을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이 우리를 가장 단단하게 만든다.
"하루의 무게는 오늘도, 고요한 기도가 되어 쌓인다"
by 숨결로 쓰는 biroso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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