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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이 건네주는 위로>

나를 데워주는 작은 기다림에 대하여

by 숨결biroso나


겨울바람은 언제나 손등부터 먼저 건드린다.

그 차가움이 한 번 스쳐 지나가면,

마음속 오래된 생각들도 함께 움츠러든다.


그런 날이면 나는 어느새
작은 붕어빵 노점 앞에서 멈춰 서 있다.


마치 불멍 하듯, 아무 생각도 없이
그 따뜻한 기운을 오래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내 마음도 데워지고 있었다.






연말이 가까워지면 마음에도 바람이 든다.

촉촉하던 시간들이 바스러지고,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던 일들이

유난히 마음 가까이 와닿는 계절.

그럴 때면 나는 늘 같은 길모퉁이로 향한다.


골목 끝에 자리한 노점은
저녁이면 불빛과 김으로 몸집을 키운다.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다.
유독 따뜻하게 흔들리는 빛이 하나 있으니까.
나는 그 빛을 향해 조용히 걸어간다.


먼저 보이는 것은 허공에 흩어지는 하얀 김이다.

차가운 공기 속 흩어지는 냄새 또한

나를 붙잡는다.




붕어빵 가게 앞에 다다라서야

나는 한 박자 숨을 고른다.


그러다 반죽이 살짝 떨리다가

달궈진 틀 위에 부어지는 순간,

노란 표면이 부풀어 오르는 그 짧은 찰나를

괜히 오래 바라본다.


기다림은 늘 내 편이다.

공기 속으로 튀어 오르는 열기와 바삭한 반죽 냄새가

서늘하게 굳어 있던 생각의 모서리를 천천히 녹인다.

말 한마디 없는 풍경인데도,

나는 이 앞에서 늘 가장 많은 위로를 받는다.


“아, 또 왔네. 또 이 자리네.”

스스로도 웃음이 난다.


이 맘 때가 되면 세상 어떤 비싼 빵보다

붕어빵이 단연 1등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줄을 설 만도 하다.

각자의 마음 어딘가를 데우러 오는 얼굴들.



팥 앙금이 흘러내리는 모습은

마치 하루 동안 굳어 있던 생각이

천천히 풀려 내려오는 것 같고

한껏 데워진 틀 사이로 피어오르는 열기는

말 대신 조용히 내 어깨의 긴장을 풀어준다.


붕어빵이 뒤집히는 순간 들리는 짧은소리,

김이 흘러내리는 모양,

반죽이 익으며 풍기는 달큼한 냄새까지.

이 풍경들은 늘 사람들을 품어주고 있었다.



마침내 붕어빵이 담긴 종이봉투를 받아 들면
그 온기가 손바닥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손난로 같다.


바람은 여전히 매섭지만
이 한 줌의 열기만으로
오늘의 마음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 든다.






집으로 걸으며 한 입 베어 물면
겉은 바삭하지만

그 속은 혀끝이 놀랄 만큼 뜨겁다.


그 뜨거움이 목과 가슴을 지나갈 때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사람을 다시 보듬는 건
이처럼 사소한 온기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걸.

꼬리가 살짝 탄 붕어빵은
바쁘게 살다 비틀린 내 하루의 모서리를 닮았고,
속이 새어 나온 붕어빵은
참다못해 흘러나온 내 진짜 마음 같아
왠지 더 정겹다.



나는 바삭한 꼬리부터 베어 먹는 걸 좋아한다.

그럴 때면 떠올린다.

이 작은 고집이 나를 나답게 만든다고

이렇게 엉뚱한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마음속에서 중얼거린다

“어쩌지? 애들도 줘야 하는데 벌써 두 개나 먹었네.”


어느새 봉투 안의 비어진 자리를 슬쩍 보면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살다 보면 이런 소소한 욕심도

괜찮은 날이 있다.





겨울의 길은 차갑지만

손 안의 열기는 기어이 방향을 만든다.


굳어 있던 마음이

조용히 풀리는 순간.

나는 매년 이 계절에서 그 힘을 다시 배운다.








얼어붙은 마음에
큰 위로가 필요한 줄 알았는데,
정작 나를 붙잡아 준 건
김이 모락 오르는 붕어빵 하나였다는 걸
문득 깨닫는 밤들이 있다.

손끝에 번져오던 그 작은 온기처럼
사람의 마음도 아주 사소한 온기에서
다시 살아나곤 하는 것 같다.
오늘의 나를 지탱해 준 것이
거창한 말이 아니라
작은 붕어빵 한 봉지의 온도였다는 사실이
왠지 오래도록 남는다.






따뜻함은 늘 가까운 곳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우리의 마음은 작은 온기 하나로 다시 일어날 수 있다.

by 숨결로 쓰는 biroso나.



말보다 먼저 전해지는 온도는 오래 남습니다.

겨울의 바람이 세차더라도 손 안에서 천천히 퍼지는 작은 온기 하나가 우리의 하루를 붙잡아 주기를 바랍니다.





#붕어빵 #겨울풍경 #마음의온기 #작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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