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낙엽을 보내는 마음으로
가을이 끝나가는 어느 저녁이었다.
바람이 잠시 멈춘 골목, 나는 발끝에 걸린 낙엽 한 장을 오래 내려다보고 있었다.
금빛이 거의 다 빠지고 가장자리가 부스러져 있는 오래된 잎.
누군가 밟고 지나가면 그대로 가루처럼 흩어질 것만 같은 몸.
한때는 나무 꼭대기에서 햇빛을 듬뿍 머금던 존재였을 텐데,
지금은 바닥 가까이, 거의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자리에서 마지막 무늬를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리 삶의 비슷한 장면이 떠올랐다.
빛나는 시절이 지나고, 힘이 빠지고,
어떤 기대도 더는 나에게 닿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남은 힘을 어디에 쓸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들 말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었을 뿐인데
그 늦가을의 정적은
내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고 있었다.
우리가 ‘끝났다’고 느끼는 순간들
살아가다 보면 몸과 마음의 힘이 동시에 빠지는 날이 있다.
달력은 계속 넘어가고 하루는 저절로 지나가는데,
정작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지금 무엇을 향해 걷고 있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날들.
어떤 관계는 오래전에 균열이 갔고,
기대했던 일들은 연이어 어긋나며, 붙잡고 있던 의미들마저 희미해지는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이제 쓸모가 없나 보다”
그 말이 마음속에서 은근히 스며들어온다.
마치 가을 끝의 낙엽처럼
더는 어떤 자리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하지만,
인생은 묘하게도 그 지점에서 뜻하지 않은 감각을 건네기도 한다.
아주 사소한 멈춤의 힘
얼마 전, 길을 걷다가 아슬아슬하게 미끄러질 뻔한 적이 있다.
발목이 휘청거릴뻔한 순간, 내 발아래에서 ‘바스락’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낙엽 몇 장이 내 몸의 중심을 아주 짧게 붙들어준 것이다.
엉겁결에 살았다는 안도감이 마음을 덮으면서
나는 문득, 그 작고 약한 존재들에 대해 생각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고,
누가 일부러 거기에 올려둔 것도 아닌 낙엽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한 걸음을 절묘하게 붙들어준 그 순간.
사라지기 직전의 존재가
종종 가장 중요한 멈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끝에 가까운 존재들이 건네는 조용한 힘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다.
힘이 남아도는 시절에는
에너지가 크고 움직임이 넓으니
내 역할과 의미가 쉽게 느껴진다.
그러나 삶의 가장 다정한 힘은
이상하게도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을 때’
조용히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어떤 관계는 끝나가는 시점에서야
우리는 비로소 상대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오래 잡고 있던 꿈을 포기해야 하는 자리에 선 순간
그동안 놓쳤던 내 마음의 음영들을 똑바로 바라보게 되기도 한다.
혹은,
누군가에게 더는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날
그저 잠시 내어준 한마디의 말,
한 번의 따뜻한 눈길이,
그 사람에게는 오랫동안 기억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마치 떨어진 낙엽이
마지막 남은 무게와 결을
가장 필요한 순간에 건네주듯.
무너지는 순간에 드러나는 마음의 구조
한 번은
오랜 시간을 함께한 지인이
큰 상실을 겪고 난 후에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너무 무너져 있어서 이젠
도와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줄 알았어.
그런데 그 시간들이 지나고 나니까
사람들의 마음을 더 잘 보게 되더라.”
그 말은
내 마음 어딘가에 오래 정좌했다.
때론 낮아지고 약해져야만 보이는 마음의 결들이 있다.
내가 흔들려봐야
다른 사람의 흔들림을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
내가 무너져본 적 있어야
누군가 조용히 무너져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니 약함이란,
단순한 무능의 표지가 아니라
마음의 감각이 더 미세해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약하다’고 부르는 상태는
오히려 어떤 다정함이 스며들 준비가 되는 순간이 아닐까.
마지막에 남는 빛의 방향
낙엽을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나뭇잎은 나무에서 떨어진 후
더는 자기를 유지해야 할 의무가 없다.
누구의 기준에 맞추어 빛날 필요도 없고,
어떤 모양을 지키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다.
대신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향해 기울어질까’를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자유가 생긴다
바람 속으로 훨씬 가볍게 떠오를 수도 있고,
누군가의 발을 딛는 순간에 작은 멈춤을 선물할 수도 있고,
혹은 조용히 흙 속으로 스며드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사람도 그렇다.
인생의 후반부,
혹은 어떤 관계의 끝,
어떤 고비의 끝에서야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이 생긴다.
누군가를 탓하는 대신
자신의 온기를 남기는 방향.
모든 것이 무너진 자리에서
다정함 하나만은 버리지 않는 방향.
그 방향성은
처음의 힘보다 훨씬 더 깊은 울림을 남기곤 한다.
사라짐 속에서 드러나는 다정함의 온도
나는 이제
사라지는 것들을 볼 때마다
그 안에 숨어 있는 ‘마지막 결심’을 떠올린다.
낙엽이 흙으로 돌아가기 전
가장 따뜻한 빛을 품는 순간.
해가 넘어가기 직전
세상이 가장 오랜 노을을 머금는 순간.
관계가 다 닳아 헤어지기 직전
서로에게 마지막 다정함을 건네는 순간.
모든 ‘사라짐’에는
그저 사라지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그 안에는 종종
새로운 온기를 선택하는 누군가의 결심이 있다.
그 결심은 소리도 없고
드러나는 모습도 작지만
그 끝의 움직임은
우리 삶을 더 깊고 다정하게 만든다.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약함을 말할까
우리가 흔히 약하다고 부르는 것들은
정말 약해서가 아니라
아직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감각을 품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약함은
손에 쥔 힘이 적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그 힘을 어디에 쓸지 더 고르게 바라볼 여유가 생겼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리고 사라짐은
종말의 이름이 아니라
새로운 결을 선택하는 시작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정말
어떤 기준으로 약함을 말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내 삶의 끝자락에서
어떤 다정함을 마지막으로 남길 수 있을까.
그 마지막 결심을
나는 언제쯤 온전히 이해하게 될 수 있을까.
이 글은 며칠 전, 늦가을의 마지막 빛이 스치던 자리에서 쓴 글입니다.
첫눈이 내리고, 이제 계절은 조용히 다른 장을 펼치고 있네요.
가을은 늘 그렇게, 붙잡을 틈도 주지 않고
흩어지는 빛과 낙엽의 여운만 남긴 채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갑니다.
이제는 조용히 보내주려 합니다.
저 멀리 사라지는 계절의 뒷모습을 바라보듯,
남겨진 온기만 마음 한쪽에 접어 두고.
겨울의 첫 숨이 문 앞에 닿은 지금,
그리움도 조금은 따뜻해지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
by 《내 마음의 풍경》 ⓒbiroso나.
무너지는 자리에서야 들리는 마음이 있다.
낮은 곳에서 가장 오래 남는 빛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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