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느려진 마음에 머물러보는 연습
느린 오후는
기척이 없다.
문도 열리지 않았고,
음악도 틀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공기 속에서
나는 오래 앉아 있었다.
햇살은 바닥까지 내려와
그림자를 길게 끌었다.
나는 오늘,
그 길을 따라가지 않기로 했다.
움직이는 건
지금은 너무 빠른 일 같았다.
식은 커피잔이 옆에 있었고,
가끔 먼지가 빛 속에서 떠올랐다.
나는 그 작은 움직임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 안에 머물 수 있는 마음.
느린 오후는
그런 마음을 꺼내 보여준다.
의미 없는 시간을 견디는 일이 아니라,
그 시간에 나를
조금 놓아두는 일.
오늘, 나를
그렇게 놓아 본다.
책상 위의 책도 넘기지 않았고
창밖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가
그저,
그렇게 앉아 있었다.
해야만 하는 말들,
그 모든 걸
가만히 흘려보냈다.
지금은 그런 걸
붙잡지 않아도 되는 오후.
움직이지 않는 나도
지금 충분히
살아 있는 것처럼.
나는 그걸 배워가는 중이었다.
느린 오후에
머무는 법을.
by 숨결로 쓴다 ⓒbiroso나.
《마음에도, 쉼표를 찍는다》는 매주 수/토요일, 당신의 마음에 조용한 쉼표 하나를 놓아드립니다.
*<숨결로 쓰는 biroso나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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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 《엄마의 숨》
2) 월 《별을 지우는 아이》
3) 화/ 토 《78개의 마음》
4) 수/ 금 《다시, 삶에게 말을 건넨다》
5) 수/ 토 《마음에도, 쉼표를 찍는다》
6) 목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7) 금 《아무 것도 아닌 오늘은 없다》
8) 일 《말없는 안부》
9) 목/ 일 《가만히 피어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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