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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은 안과 밖을 동시에 비춘다>

그 사이에서, 나는 나를 다시 알아본다

by 숨결biroso나


창문은
한쪽 면에 바깥을 담고,
다른 면에 나를 비춘다.

바람이 드나들면
먼 소리와 먼 빛이 함께 들어오고,
닫아두면
내 숨소리와 눈빛이 돌아온다.


아침에는 하루를 열고,
밤에는 하루를 닫는다.
그 사이에서
나는 나를 다시 알아본다.








비 오는 오후
창가에 앉아 빗물 자국을 바라보며
유리 한 장 사이로
세상과 내가 마주 앉아 있었다.

바깥은 회색빛이었지만,
안쪽에는 내 얼굴이 희미하게 겹쳐 있었다.
창문은 언제나 두 방향을 비춘다.
밖을 볼 때도, 나를 함께 보여준다.

어쩌면 그래서
창 앞에 서면 생각이 길어지는지도 모른다.
나와 세상을 동시에 바라보는 시간이니까.

창문을 활짝 열면
새 공기와 먼 소리가 함께 들어온다.
닫으면,
유리에 부딪혀 돌아오는 내 숨소리와 시선이 남는다.

살다 보면
어떤 날은 세상을 보고 싶고,
어떤 날은 나를 더 오래 보고 싶다.
창문은 그 둘 사이를
묵묵히 지켜주는 자리다.

오늘도 나는
창문 앞에 서서 잠시 멈춘다.
바깥의 빛과 안쪽의 나,
그 둘을 잇는 얇고 투명한 경계 위에서.







물방울이 아직 마르지 않은 창문 위로
새로운 빗줄기가 겹쳐 흐른다.
그 위에 빛이 스며들고,
나는 그 겹침을 한동안 바라본다.

늦가을의 비는 단순한 날씨가 아니다.
마음의 안쪽으로 길게 스며든다.
창문 밖의 세계가 물에 잠기듯,
내 안의 생각들도 천천히 젖어간다.


비의 냄새는 땅에서 올라오고,
그 냄새는 언제나 ‘처음’을 닮았다.
모든 것은 흘러가지만,
그 흘러감 속에서도 어떤 것은 여전히 남는다.

창문은 그 경계 위에 있다.
바깥의 세계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나를 비춘다.
유리는 투명하지만 완전히 열리지는 않는다.


그 얇은 막 하나가
세상과 나를 구분하면서도 이어주고 있다.
어쩌면 삶이란
그 경계 위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끊임없는 연습인지도 모른다.

비에 젖은 세상은 고요하다.
가로수 잎들이 흔들리며 낮은 소리를 내고,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의 바퀴가 물을 튀긴다.
그 모든 소리가 투명한 창을 거쳐 들어올 때,
세상은 조금 낯설다가 조금 가까워진다.


나는 창문을 사이에 두고
세상과 마주 앉아 있다.
가끔은 그 거리가 편안하고,
가끔은 그 거리가 답답하다.
삶은 늘 그 사이에서 움직인다.

비가 멎을 때면, 창문에 남은 자국이 눈에 들어온다.
물방울이 흘러내리던 흔적,
사라지지 않은 얼룩이 시간의 문장처럼 남아 있다.


손끝으로 그 선을 따라가다 보면
잠시, 멈춰 있던 생각이 이어진다.
어쩌면 사람의 마음도 저 자국처럼
사라지는 대신 남아 있는 무늬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창문을 연다.
차가운 공기가 방 안으로 들어오고,
바깥의 냄새와 내 숨이 섞인다.


세상은 그리 멀지 않다.
한 걸음 물러서 있을 때만
비로소 제대로 보이는 것이 있다.
거리를 둔다는 건 단절이 아니라,
사유의 공간을 남겨두는 일이다.

저녁이 내려앉고,
방 안의 불빛이 유리를 채운다.
낮에는 세상을 비추던 창이,
이제는 내 안을 비춘다.
밖을 향하던 시선이 돌아와
내 얼굴에 닿는다.


그 변화를 바라보다 보면
세상과 마음의 거리가
결국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다는 걸 느낀다.

비가 내리고, 그치고, 다시 내리는 동안
세상은 조금씩 투명해진다.
유리에 남은 마지막 물방울이
빛을 머금고 흘러내릴 때,
모든 것은 잠시 비워진다.


바라본다는 건
세상을 보는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천천히 닦아내는 일.
그 닦임의 끝에서
나는 세상이 맑아지는 것을 본다.








세상을 향한 바라봄과

나를 향한 응시가 겹쳐지는 그 순간,

경계는 의미를 잃고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바깥의 빗소리가 마음의 결을 따라 번져나가던 날의 기록






창문은 세상과 나를 함께 비춘다.

그 사이에서, 나는 나를 다시 알아본다.

by 숨결로 쓴다 ⓒbiroso나.



바깥의 소란과 안쪽의 나,

그 둘이 만나는 지점에서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며 쉬어갈 수 있기를요



그렇게

오늘을 살아갈 조용하고 단단한 힘을 얻는다.

​#창문 #경계 #성찰 #비 #삶의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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