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 아이에 의한, 아이를 위한 동화 (下)

by 아니아즈


인연은 붉은 실로 이어져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동화와 나는 붉은 실로 이어진 운명의 인연이다.


문득 떠오른 한 생각 덕분에, 동화와 연을 맺었다.

연을 맺은 순간, 마치 운명처럼, 동화와 관련된 세상이 하나둘 내게로 다가왔다.

책장에서 우연히 동화책을 발견하였다. 집에서 멀지 않은 장소에서 동화책 도서관을 발견하였다.

동화와 어떠한 접점도 없던 나의 세상이 동화로 채워져 갔다.

우연이란 인연 속에서, 동화와 나 사이를 연결하는 가느다란 운명의 실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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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이전까지는 동화에 관심이 없었기에, 책장 안의 동화책과 동화책 도서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그림책 도서관은 '나타난 것'이 아니라,

관심을 준 지금에서야, 내 눈앞에 '보인 것'이다.

그림책 도서관은 항상 그 자리, 그곳에 있었다.

단지, 내 시선이 그곳에 있지 않았을 뿐.


관심을 주기에 눈에 들어오고, 눈에 들어오기에 볼 수 있다.

내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세상을 볼 수 없다.

그런 상황인 것이다. 운명과 붉은 실 같은 거창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닌, 칙칙하고도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그러기에 더는 눈을 돌리지 않고, 내 눈에 들어온 세상을 확실하게 담기로 했다.

'미지'가 '무지'로 끝날지, '이지'로 끝날지는 본인에게 달렸다.

동화와 나 사이에 이어진 실을 따라서 동화가 있는 곳, 동화책 도서관으로 향하였다.


도서관 안으로 입장하자, 좌측은 동화책이 책꽂이에 빼곡히 꽂혀 있었고,

우측엔 탁자와 함께 성인들을 위한 책과 잡지가 있었다.

우측은 아이를 데려온 부모가 쉬는 쉼터의 느낌이었다.

도서관엔 나 혼자였기에, 부담감 없이 도서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음미할 수 있었다.

쉼터 쪽은 시선만 한번 툭 던져주고선, 내 목표인 좌측의 동화책 부분으로 쫄래쫄래 갔다.


책꽂이의 코앞에 도착하자, 이런 것도 있구나, 싶어서 내심 피식 웃었다.

그곳엔 플러스 사이즈의 그림책이 있었다. 책의 크기가 가히, 아이 한 명이 뒤에 숨을 수 있을 크기였다.

플러스 사이즈 동화책 중에서 내 눈에 쏙 들어온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강아지똥’이었다.



'강아지똥'은 어린 시절에 읽기도 했고,

저학년 시절 교과서에서 접했던 기억도 어렴풋 남아있어 친근하게 다가왔다.

흐릿해져 버린 기억 속의 장면과 현재의 다른 점이라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 몸과 함께 '강아지똥' 책 또한 어른처럼 커졌다는 점이었다.

플러스 사이즈 ‘강아지똥’을 이리저리 둘러본 후, 다시 책장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동화를 꺼내 들었다. ‘강아지똥’을 집어 들기 전에, 다음번에 너다,라고 정해둔 동화였다.

‘끼인 날’.


표지부터 이 책은 내 시선을 강탈해 갔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겼다.

구름에 끼인 강아지, 노인의 주름에 끼인 모기, 여기저기에 끼인 무언가 들.

그리고 싸우고 계신 부모님 사이에 끼어있는 싸움 요정.

이곳저곳에 끼어있는 것에 대한 동화. 그런 내용이었다.


책장을 덮었을 때, 분했다. 내가 동화를 읽고 피식 웃었다는 사실에.

그리고 반성했다. 분했다고 생각한 것에 대한 반성이었다.

이 또한 하나의 편견이었다. 동화라고 아이들만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동화는 누가 읽어도 상관없다.

아이를 위한 이야기지만, 어른인 내가 보아도 피식 웃음을 흘릴 수 있는 이야기가 동화이다.

동화란 아이가 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아이가 아이가 될 수 있는 책.

동화를 읽는 순간만큼은, 어른도 아이가 될 수 있는 책.


그러기에, 기분이 착잡했다. 이런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내 눈앞에 잔뜩 있는데,

왜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로 ‘오만과 편견’ ‘탈무드’ ‘제인 에어’를 건네줄까.

아이가 아이일 수 있는 책이 아닌, 아이가 어른이어야 하는 책을 쥐어줄까.


교훈과 모범에 관한 이야기로만 가득 찬 책,

어른들의 시선에서 아이들에게 유익하고 재밌어 보이는 책,

그런 책. 책. 책.

왜 그런 책을 아이의 손에 꼭 쥐어주는 걸까.


‘오만과 편견’ ‘탈무드’ ‘제인 에어’는 어른이 된 후에 읽어도 늦지 않다.

조기 교육, 조기 교육, 입에 닳도록 외치지만, 모든 것은 때가 있다.

달리기를 배우려면 걷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하는 것처럼, 순서와 단계를 거쳐 나아가는 것이다.


아이는 아이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


동화도 그렇다. 동화는 동화다워야 하는 것이다. 그 뿌리를 망각해선 안 된다.

과연 동화는 누구를 위한 이야기일까. 어른을 위한 이야기일까. 아이를 위한 이야기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어른들의 자기만족을 위한 이야기일까.


어른인 우리는 더는 아이가 될 수 없지만, 아이는 어른이 될 수 있다.

그런 자라나는 아이의 이야기가 아이다울 수 있게 지켜줄 수 있는 건, 우리다.


아이의, 아이에 의한, 아이를 위한 동화.

그것이, 언젠간 어른이 될 아이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며, 해줄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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