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점에 동화는 얼마나 많을까.
동화는 큰 범주로 본다면 이야기이며, 세상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3. 이 단순해 보이는 숫자에도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3’이라는 숫자는 매우 중요하다.
가위바위보도 삼세판. 삼국지도 삼.
조선시대의 삼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삼족오의 다리 개수 3개, 삼두일족응의 머리 세 개.
음양론에 의하면 ‘3’이란 숫자는 홀수가 양의 성질을 나타내고 짝수가 음의 성질을 나타내는데,
각각 최소의 홀수와 짝수인 1과 2가 합쳐짐으로 인해 조화로움, 완전함을 내포한다.
‘3’이라는 숫자에도 이런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고, 이런 중요한 이야기들은 내게 영감과 영향을 주었다.
그런 연유로, 표본을 하나만 잡는 것보단, 세 개 정도가 적당하다는 합리적인 생각이 들었다.
서점을 세 군데를 돌아보며 동화의 현 상황에 대한 조사 아닌 조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첫 서점에 방문했다. 정확히는 방문하려고 했다. 내 원초의 계획이 시작부터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그 이유가 충격적이었던 나머지, 그 자리에서 서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서점이 사라졌다.
내 동네에서는 몸집이 가장 비대했던 서점이었다.
그런 서점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웬 피트니스 센터가 생겼다. 머리를 긁적였다.
책 사업은 블루 오션 아닐까 싶다. 이제는 사람들이 쉬쉬하는 그런 사업이 되어버린 듯했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골똘히 자리에서 생각한다고 사라진 도서관이 다시 솟아나는 것도 아니기에,
빠르게 발걸음을 돌려 다른 서점 세 군데로 바꾸기로 실천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서점 세 곳의 순찰을 마치고 일지를 작성했다.
세 개의 서점의 공통점 중 하나는, 서점의 가장 많은 영역을 차지한 부분은, 문제집이었다.
학창 시절에도 문제집을 자진해서 사본 기억이 그리 없었던 탓인지,
아니면 내가 모르던 사이 세상이 바뀌어 문제집들이 늘어난 것인지 긴가민가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서점의 역할 중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문제집이었다.
두 번째 공통점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화’는 가장 좁은 영역을 차지했다.
아이들을 위한 영역이 적었던 건 아니다. 학습만화, 그림책 등 서점에서 아이를 위한 영역은 넓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동화’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였다.
동화는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라고 한다. 우리의 관념 속에서도 은연중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 또한 그러한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동화를 사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과거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왔겠지만,
현재는 책 혹은 유튜브 등으로 전해진다.
과거에는 대가족 사회였지만, 현재는 핵가족 사회로 넘어온 것도 한몫하였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아이를 위한 이야기인 동화를 사기 위한 경제력이 아이들에겐 없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다.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이지만, 그 이야기를 아이들은 살 수 없다.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를 살 수 있는 건 어른들이다.
어른들의 허락이 떨어진 후에야, 이야기는 아이들에게로 전해진다.
1차 서류 면접에서 탈락한다면, 이야기들은 실업 상태로 서점의 책꽂이에 꽂혀있어야 한다.
서점의 아이들을 위한 영역 중 큰 부분은 두 부류로 나뉘어 있었다.
전자는, 단순 재미를 위한 어린이 만화.
후자는, 어른들을 혹하게 만드는 서류 면접 만점 스펙의 어린이용을 가장한 책이었다.
후자의 상황을 증명하듯이, 어른들도 질색하는 고전 소설을 동화로 제작하여 출판하고 있다.
고전 소설은 이미 서류 면접에서 만점을 받을 수 있는 스펙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두루뭉술하게 고전 소설을 읽으면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오만과 편견’ ‘제인 에어’ ‘탈무드’ 과연 이 책을 본인의 자녀를 위해 구매한 사람 중 몇이 이 책을 읽었을까. 본인도 싫어하는 것을, 아이는 좋아할까.
아이가 이런 책을 좋아할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말할 수는 없다.
나의 부분 중 ‘아이’였던 부분은 색이 다 바래버린 필름 사진과 다를 바가 없어 알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과 관련된 일화를 어머니께 들은 바 있다.
어머니께서는 과거, 그림 동화 관련 업종에 종사하셨다.
그림 동화 제작, 그림 동화 구현 등의 관련 일을 하셨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본인이 겪은 한 일화를 얘기해 주셨다.
어린이집에서 동화를 구현하던 날이었다. 구현하신 동화는 저명도가 있는 작품이었다.
나는 어머니께 물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이야기니,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았냐고.
어머니는 그것에 대한 답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정받는 것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는 별개의 얘기라고 못 박으셨다.
우리도 달고 짠 것을 좋아하고 심심한 맛을 좋아하지 않듯이,
애들도 달고 짠 것을 좋아하고 심심한 맛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똑같다.
아이도 한 명의 사람이다.
재미없으면 안 듣는다. 딴청을 피우고, 심한 경우엔 큰소리로 재미없다고 외치기도 한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라고 어른들이 인정해 주는 동화고, 교훈적이고, 모범적이기까지 하다.
그런 동화지만, 아이들은 싫어한다.
왜냐, 인정하는 건,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다.
아이를 위한 이야기인데, 어른들이 인정하는 상황이,
한편으론 웃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서글펐다.
-(下)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