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서 선언한다.
'이 세상 어디에도 더 이상 사랑을 위한 나라는 없다.'
로맨틱과 로맨스의 시대는 말라비틀어져 죽었으며, 지금까지의 ‘사랑’이란 존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사랑’이란 단어는 구닥다리 같은 단어다.
우리는 ‘사랑’이란 것을 대체할 새로운 단어를 창조해야 한다.
사랑은 이제 사랑이 아니다.
이 ‘사랑’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는 상자의 포장지를 뜯으면, 그 안에 ‘사랑’은 없고 웬 이상한 것들로만 가득 차 있다.
구매할 때 들은 것은 분명 ‘사랑’이었기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서둘러서 그 상자 안의 내용물 중 하나를 꺼내어 뜯어본다. 그 안의 내용물 중에는 ‘사랑’이 아닌 ‘돈’이 있다.
상대와 결혼할 때, 상대의 ‘돈’을 본다. ‘돈’이 상대냐고 묻는다면, 상대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답한다.
사랑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돈’을 포함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이름 붙여줄 수 있는 행동인가.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고 있을까. 사람일까. 아니면, 돈일까.
하나만 잘못 포장되었던 것이라고, 애써 현실을 부정하며 또다시 상자 안의 내용물 중에서 하나를 꺼내 본다. 심장을 추스르며, 천천히 포장지를 뜯는다. 역시나 거기에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닌, 다른 존재이다.
‘사랑’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폭력’이란 말이 적혀 있다.
누군가 본인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상대를 미워하고 힐난한다.
거절당한 사람은 본인의 분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그 상대에게 폭력을 가한다.
사랑이라는 명목하에 상대를 아프게 한다면, 그건 사랑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본인의 사랑을 강요한다면, 그것이 상대에게도 사랑으로 느껴질까.
우리는 사랑을 하는 것은 맞을까.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하고 있진 않을까.
있는 그대로의 사랑이란, ‘사랑’이라고 적힌 상자 어딘가에 존재하고는 있을까.
고난과 역경을 ‘사랑’으로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로맨틱하고 로맨스로 가득한,
그런 꿀이 뚝뚝 떨어지는 장면을 두 눈으로 본 적이 있다.
물론, 소설에서 말이다.
현재의 현실에서 그런 소설 같은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냐는 질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답은, 묵묵부답뿐이다. 사랑이란 것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데 어찌 ‘사랑’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혹시 ‘사랑’이란 것이 있을까 하여, 그 외의 것을 포함해 모조리 포장지를 뜯어보지만,
어느 것 하나 ‘사랑’이 아니다.
‘사랑’을 위장한 무언가. 그것들로 상자 안은 가득 차 있다.
‘사랑’이라는 포장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그것들 모두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한번 선언한다. 이 세상에 더는 ‘사랑’ 다운 '사랑'은 없다.
‘사랑’이란 이제 전설이나 신화 속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천연기념물이나 다름없는 존재이다.
변한 세상은 많은 것들을 변질시켰고, 그 속에서 ‘사랑’ 또한 변질되어 버렸다.
사랑 하나만으로 세상을 나아갈 수 없어졌다.
사랑 하나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랑을 위한 나라 또한 없다.
그러기에, 사랑 하나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과 사람이 어딘가엔 있길.
책이 아닌, 현실 어딘가에 그런 곳이 있길.
조심스레 바라여 본다.